이번에 제가 <한빛국가유산TV> 기획 영상으로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웠다는 18개 서당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기로 하였답니다.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공부를 해가며 찾아가서 답사를 하고 촬영을 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담아 소개를 했습니다.
영상과 함께 티스토리에 우리가 찾아낸 서당 한 곳 한 곳을 글로 담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당 11곳과 터만 남은 서당 3곳, 그리고 정확하게 어디인지 어떤 자료도 없고 정보도 없어 알 수 없는 곳이 4곳이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아래 링크로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IoCr0lCvpmQZWg42KjmsrGjSC4MTRdRu&si=gTqzG52DVKm5440R
남아있는 서당 11곳 중 마지막 영빈서당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운 서당 열한 번째 이야기는 문경시 산양면 포내5길 30-13에 있는 영빈서당(瀛濱書堂)입니다.
여기도 옛날에는 상주 땅이었던 곳이랍니다.
영빈서당은 산양면 반곡리 마을에 있는데요. 한 농가 뒤쪽에 있답니다. 서당 앞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보이네요.
영빈서당을 소개하려니 서당이 지닌 이야기가 꽤 많더군요. 영빈서당을 이야기하려고 두 번에 걸쳐 여러 곳을 다녀왔지요. 가장 먼저 그 옛날 신잠 선생이 처음 세웠던 곳을 찾아가 봅니다. 여기가 어디냐고요?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입니다. 그보다 더 오래된 마을 이름으로는 '곰우챙이'인데 조선시대에 백성들한테 거둬들인 곡식을 보관했던 곰[熊]과 같이 큰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이곳 웅창마을에는 배 모양을 닮은 바위 위에 있는 정자, <주암정>이 있고, 또 얼마 앞서 제가 소개한 우암정도 있지요. 금천을 서로 마주 보며 주암정, 경체정, 우암정, 농청정 등 여러 정자가 꽤 많이 있답니다.
https://sunnyhanbit.tistory.com/357
영빈서당의 뿌리는 옛 죽림서당
영빈서당의 뿌리가 되는 첫 서당의 이름은 죽림서당이었습니다.
그 죽림서당이 있던 터를 찾아서 웅창마을 뒷산을 찾아가고 있지요.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얕은 산이 옛 죽림서당이 있던 곳이랍니다. 그 옛날에는 저곳이 '영원사' 절터였다고 합니다.
1544년(성종때나 인종 때) 서당을 처음으로 세웠는데 당시에 이 둘레에 대밭과 죽림사라는 절집이 있어 <죽림서당>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앞서 제가 소개했던 은척면에 있는 <죽림서당>과 같은 이름이지만 다른 서당입니다.
처음에는 산양현의 향약 공간이었던 <산양 수계소>가 있었는데 그 안에다가 서당을 세워 학문을 펼쳤다고 합니다. 향약시설과 서당이 함께 했던 첫 더부살이였답니다.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 앞에는 금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지요.
1574년에는 백담 구봉령 선생이 지역 유림의 청으로 <산양서당>이란 시를 남기고 강당에다가 존성당(存省堂)이란 당호를 걸고 산양서당이라고도 했답니다.
1593년 임진왜란 때에 이 서당도 그 피해를 피할 수 없었지요. 산양수계소뿐 아니라 서당까지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합니다.
더부살이 신세인 서당
1604년에 웅암촌 남쪽에다가 복원을 하여 산양수계소와 서당이 함께 있었지요. 그러나 향약소와 서당은 하는 일이 서로 다르고 운영 방식 또한 다르다 보니, 함께 있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당이 이사를 하게 되지요.
1614년부터 에 수계소 안에 있던 서당을 근암촌 수개곡(현 서중리 남쪽)으로 옮기게 되는데 공사하는 기간만 9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마침내 1623년에 큰 서당을 새로 짓고 <근암서당>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향현사(鄕賢祠) 사당을 지어 우암 홍언충(洪彦忠) 선생을 배향하게 됩니다.
우암 홍언충 선생은 지난여름 제가 소개했던 허백당 홍귀달 선생의 넷째 아드님이고 또 청산재의 주인공인 분이시지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43
세월이 흐르면서 서당의 이름이 여러 번 바뀝니다. 처음 '죽림서당'에서 '산양서당'으로 그리고 다시 '근암서당'으로 바뀌었지요. 그러면서 서당에 향현사 사당까지 지어 나라에 서원으로 승격시켜 주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664년 현종 5년 때에 근암서당 안에 있는 '향현사'만 인가를 해주었다고 하네요.
또다시 1669년 현종 10년에 한음 이덕형(李德馨)을 추가로 배향하면서 마침내 <근암서원>으로 승인을 받았지요. 그러면서 서당은 자연스럽게 서원 안에서 얹혀사는 더부살이 신세가 되고 맙니다.
애고 이듬해(1670년)에 또다시 예전에 서당이 있던 곳, 그러니까 산양수계소가 있던 웅창마을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또다시 '수계서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지요.
몇 번이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더부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는 서당의 신세가 참으로 안타깝네요. 그러다가 끝내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했나 봅니다.
1687년 부훤당 김해 선생과 낭옹 고세장 선생 등의 제안으로 산양면 반곡리 마을에 있던 집을 사들이고 둘레에 있던 초가집도 기부를 받기도 하면서 서당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제가 소개하는 영빈서당(瀛濱書堂)입니다.
더부살이 끝에 자리 잡은 영빈서당... 그러나
지금 현재 영빈서당의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서당 앞에는 한 농가가 있고요. 그 뒤로 입구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풀에 뒤덮여 있습니다.
영빈서당과 함께 했을 소나무가 담벼락 앞에 서 있네요.
출입문인 일각문에 들어서니 사람 키보다도 더 높이 자란 잡풀이 가로막습니다.
일각문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해서 정말 조심조심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옛 영빈서당은 이것보다 훨씬 규모도 더 크고 건물도 더 번듯했을 듯한데 지금 모습은 초라하기 이루 말할 수 없네요.
툇마루는 움푹 꺼져있고 부서져있습니다.
뒤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당을 보호하는 담장도 무너졌는지 잡풀에 점령당한 채로 있습니다.
옛 산양서당일 때에 당호로 쓰였다던 존성당 편액이 <존성재>란 이름으로 걸려 있네요.
서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짜리 건물인데 가운데 대청이 한 칸입니다.
보기에도 굉장히 좁아 보이네요.
진수재(進修齋)
방안을 들여다보니, 문짝이 떨어져나간 것도 있습니다.
부훤당 김해 선생의 '영빈서당이설기'입니다.
이 영빈서당 이설기에 서당의 역사가 다 적혀 있다고 합니다.
존성재 안에는 송조7대 현유상이 걸려있네요.
좁은 문틈으로 찍었는데 그나마 비스듬히 걸려있어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네요.
보통 송조4현을 모시는 걸로 아는데 일곱 분은 어떤 분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죽림서당 - 산양서당 - 근암서당 - 수계서당 - 영빈서당
이렇게 이름이 무려 다섯 번이나 바뀐 곳이 바로 이 영빈서당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바뀐 수만큼이나 번듯한 내 집이 하나 없어 내내 더부살이를 했던 서당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 영빈서당이 지니고있는 이야기들을 찾아서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 명맥을 잘 이어왔는데 이곳 또한 우리 세대에 와서 저렇게 곧 허물어질 듯보여서 내내 안타까웠답니다.
오늘은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운 18개 서당 가운데 하나인 '영빈서당'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저희가 찾아낸 서당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마지막 서당 이야기였답니다.
이렇게 해서 모두 11개 서당을 찾아냈고요. 나머지는 터만 남아있는 곳이 3곳이 있지요. 그리고 그 어떤 정보도 없어서 4곳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이랍니다.
이다음 이야기로는 한빛국가유산TV에서 기획으로 촬영한 서당 이야기에서 마지막 터만 남은 3곳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 소개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DFqRrSdMyms?si=VSg-r2QDb8cHWxGo
문경시 산양면 포내5길 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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