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가 <한빛국가유산TV> 기획 영상으로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웠다는 18개 서당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기로 하였답니다.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공부를 해가며 찾아가서 답사를 하고 촬영을 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담아 소개를 했습니다.
영상과 함께 티스토리에 우리가 찾아낸 서당 한 곳 한 곳을 글로 담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당 11곳과 터만 남은 서당 3곳, 그리고 정확하게 어디인지 어떤 자료도 없고 정보도 없어 알 수 없는 곳이 4곳이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아래 링크로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IoCr0lCvpmQZWg42KjmsrGjSC4MTRdRu&si=Aph2OvZA2VncT-Qg
의성군 단밀면의 충효, 그리고 글향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운 서당 열 번째 이야기는 의성군 단밀면 주선1길 56-10에 있는 봉성서당(鳳城書堂)입니다.
상주에 세운 서당이라 했는데 왜 의성군에 있느냐고요?
북쪽으로는 지금의 문경시 영순면과 산양면 지역, 또 동쪽으로는 의성군 단밀면까지 옛 상주 땅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봉성서당도 옛 상주목에 들어있던 곳이 됩니다.
단밀면 주선리 마을에 들어서서 봉성서당을 찾아가는 길에 본 정려각이 하나 있답니다. <김형성 정려각>인데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온마음을 다해 모셨다고 합니다. 자기를 돌볼 줄 모르고 오로지 어머님만 챙겨 드리며 살았다고 하네요. 김형석 공의 효행에는 따뜻한 이야기가 무척 많더라고요. 나중에 따로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하게...
그뿐만 아니라 충신으로도 아주 이름난 분이 있지요.
퇴재 (退齋) 신우(申祐)라는 분인데, 고려 충혜왕 때 여러 벼슬을 지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를 때 정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대나무 두 그루가 자라났다고 하네요. 어사 박문수가 조정에 사실을 알려 정려를 내리고 이 마을 이름을 '효자리'라고 했다고 하네요.
선생의 효심뿐 아니라,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에게 영향을 받아 고려 멸망 후 고려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조카사위인 길재(吉再)와 고향에 은거하였고 이성계가 등극하여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제수하였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행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 실려 있다고 하네요.
이뿐만이 아니라 이날 단밀면 지역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찾아간 정려각이 무려 네 곳이나 되는데 모두 효자, 효부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었지요. 그만큼 의성군 단밀면에는 예부터 충신과 효자, 효부가 많았다고 합니다.
봉성서당의 뿌리는 옛 속수서당
봉성서당은 주선리 마을 뒷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답니다.
블록 담장을 둘러싸인 안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밖에서 봐도 소박한 건물입니다.
아하........... 대문이 닫혀 있군요.
다행인 것은 빗장만 걸려 있었답니다.
애고 고맙습니다. ^^
앞면이 4칸, 옆면이 2칸인 홑처마 팔작지붕입니다.
마당은 시멘트를 발라서 풀이 덜 자라네요.
한 여름 땡볕에 찾아가는 서당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탓에 애를 먹었는데 여기는 그런 걱정은 없습니다.
봉성서당(鳳城書堂) 편액이 처마 밑에 걸려있고 대청 안쪽에도 여러 현판이 보입니다.
상량문이 적혀있네요.
단기 4323년 10월 초1일에 상량했다고 하네요.
1990년에 새로 고쳐지었나 봅니다.
이 봉성서당은 처음 신잠 목사가 세울 때에는 속수서당(涑水書堂)이란 이름이었답니다.
처음 세웠던 곳도 이곳이 아닌 속수촌이었다고 하는데요. 아마도 여러 달 앞서 제가 소개했던 우재 손중돈 선생을 모시는 속수서원이 있던 마을이었지 싶습니다.
1506년에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세웠는데, 1656년에는 생사당을 다시 '경현사'로 고치고 손중돈 선생과 신잠 목사를 함께 배향했다고 하네요.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속수서당이 속수서원으로 승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당의 옛 이름이었던 '속수'를 내어주고 마침내 1703년에 봉성서당(鳳城書堂) 편액을 걸게 된 것이지요.
'봉성(鳳城)'이라고 편액을 하게된 건 ' 봉황(鳳凰)은 단혈(丹穴)에서 난다 '라는 고사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중국의 동쪽에 있는 가상의 산인 '단혈산'이 바로 봉황의 고향이라고 일컫는다고 합니다.
의성 단밀(丹密)에서 봉황과 같은 출중한 인물이 많이 나라는 바람을 담아서 서당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40
글향이 드높았던 봉성서당
선비들의 글향이 널리널리 퍼지던 이곳에도 임진왜란을 피해 갈 수 없었답니다. 서당은 불타버리고 유생들이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으니 참 딱한 일이었지요.
때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인 1595년(선조 28) 9월에 역락재(亦樂齋) 고빙운(高聘雲), 호은(湖隱) 신복성(申福誠), 초은(樵隱) 조기원(趙基遠), 수암(修巖) 유진(柳袗), 평해(平海) 구미리(丘美履) 등 여러 선비들이 뜻을 모아 서당을 복원했습니다.
봉성서당중건기(鳳城書堂重建記)
단기4324년(1991년 신미(辛未))에 풍산(豐山) 유용우(柳龍佑)가 짓고, 선산(善山) 김만조(金萬祚)가 썼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이 봉성서당은 지난 1991년에 새롭게 고쳐서 중건했다고 합니다.
봉성서당을 중건할 때 각 문중에서 내놓은 성금을 문중의 명단과 금액을 적어놓았네요.
‘풍양 조씨 남파, 화산(花山) 고씨, 영양 남씨, 고령 신씨, 풍양 조씨 북파 등 무려 20개 문중에서 성금을 냈다고 합니다.
강당 방 위에 걸린 태극기가 눈에 띕니다.
현록중수기(縣錄重修記)는 1595년[만력(萬曆) 23 을미(乙未)] 9월(月) 일(日)에 화산후인(花山後人) 고빙운(高騁雲)이 짓고, 함안(咸安) 조양제(趙良濟)가 썼다고 합니다.
1595년이면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졌다가 여러 선비들의 정성으로 다시 중건된 때이네요.
그 옛날에는 단밀이 단밀현이었습니다.
봉성서당은 대청과 온돌방 앞에다가 쪽마루를 두었네요.
겨울철에도 저기 앉아 있으면 해가 들어와서 따뜻할 듯합니다.
어릴 적에는 저런 마루턱에 많이 걸터앉아봤었지요.
서당 뒷모습인데요.
뒤쪽에도 한쪽에는 쪽마루를 놓았고 또 한쪽에는 연탄 아궁이를 놓았네요.
아마도 근대에도 이 서당에 사람이 살았었나 봅니다.
지붕 처마끝에다가 양철을 덧대어 빗물이 나무를 타고 흐르지 않도록 했는데 옛 서당 건물에 어울리지는 않네요.
이 봉성서당에서 언제까지 글 읽는 소리가 들렸을까요?
갑자기 그게 궁금해집니다. 하하하!
지금은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지난날에는 문과 급제자가 30명, 무과 급제자가 6명이나 나왔다고 합니다.
한적하고 조용한 '단밀' 마을에서 그만큼 많은 급제자가 나왔다는 건 무척 뜻깊은 일이고 그만큼 글향을 드높인 곳이었겠지요?
봉성서당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바로 옆에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있어 잠깐 눈길을 빼앗겼네요. ^^
충신과 효자, 효부가 많았던 의성 단밀면, 글향 또한 남달라서 나랏일에 큰 보탬이 되는 인재가 많이 나왔다는 건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오늘날엔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단순히 '옛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훌륭한 정신들은 높이 사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운 18개 서당 가운데 하나인 '봉성서당'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18개 서당 이야기 가운데 다음 편에서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서당으로는 마지막인 '영빈서당'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제가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 소개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np55w9OhqHA?si=JoalB6jPQs3aFjU8
경북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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