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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문경 청산재>우암 홍언충, 그 아버지의 그 아들! 홍귀달 선생의 넷째 아들

by 한빛(hanbit)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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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마을

 

이번에 홍귀달 선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날동안 참 많은 곳을 다녀왔답니다. 선생의 신도비가 있는 문경 영순면 율곡리 마을을 세 번이나 다녀왔고요. 처음 갈 때는 신도비만 알고 갔기에 바로 건너편 마을에 선생의 종택이 있다는 걸 몰랐지요. 

홍귀달 선생 종택 <애경당>
홍귀달 종택 사당

홍귀달 선생 종택인 <애경당>과 사당을 가까이 가서 다시 보고 왔지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28

 

<허백당 홍귀달 선생 종택 애경당> 선생의 신도비와 무덤을 마주보다! <문경 영순면 율곡리>

지난번에 홍귀달 선생 신도비를 찾아가서 잘 보고 왔는데, 뒤늦게 바로 맞은편 마을에 선생의 종택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바로 한 주 뒤에 다시 찾아갔습니다.종택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

sunnyhanbit.tistory.com

또 영상도 제대로 찍어야겠다 생각하고 세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게 선생의 넷째 아들의 재실이 종택과 신도비에서 10분쯤 떨어진 문경시 영순면 의곡리 마을에 있다는 걸 알았답니다. 

홍귀달 선생의 네째 아들인 우암(寓菴) 홍언충(洪彦忠) 선생에 대해 알아보니, 아버지의 성품과 재능을 굉장히 많이 닮았더군요. 

청산재(홍언충 재사)

 

질정관(質正官), 부수찬, 이조좌랑, 교리(敎理) 등 여러 벼슬을 지낸 분이신데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글을 올려 임금한테 간언 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벼슬과 품계를 빼앗기고 한양 밖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진안에 유배되었고 잇달아 아버지 홍귀달 선생이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될 적에 또다시 해도(海島)로 유배지가 옮겨졌다고 합니다.

 

아버지인 홍귀달 선생처럼 이 아들 또한 연산군에 '바른말'을 서슴지 않고 한 분이었어요.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입니다.

 

또 문장에도 뛰어났고 글씨도 무척 잘 쓰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안이 모두 글씨에 소질이 있는 가 봅니다. 앞서 소개한 <홍귀달 선생 신도비>의 비문 글씨도 또 다른 아들이자 홍언충 선생의 아우인 홍언국 선생이 썼다고 했지요. 

<청산재>는 앞면이 3칸, 옆면은 2칸인 맞배지붕 구조를 한 건물입니다.

안내판에 보니, 처음부터 재실로 쓴 건 아니고 아마도 서당이나 정자로 쓰였을 거라고 하더군요.

 

 

홍언충(1473년(성종 4년) ~ 1508년(중종 3년))  선생이 진안으로 유배 갔을때, 집안사람들이 도망하기를 권하였으나 '임금의 명령인데 어찌 도망가겠는가?' 하면서 그 말에 따르지 않고 기꺼이 유배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다시 신원이 회복되어 임금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병을 얻어 34세 나이로 그만 돌아가시고 맙니다. 그 때문에 선생한테는 후손이 끊기고 말지요.

 

청산재(靑山齋)는 외손인 검간(黔澗) 조정(趙靖,1555~1636) 선생이 세웠다고 합니다. 검간 선생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나간 분이고 <상주 양진당>이 선생의 종가이기도 합니다. 아, 앞서 소개했던 의성 속수서원에 배향된 분이기도 하시지요. 아무튼 이 분이 우암 홍언충 선생의 재사를 처음 세웠다고 하니, 직계 자손이 없어 외손이 대신 모시는  '외손봉사(外孫奉祀)'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이네요.

옛집 건물을 볼 때 건물 맨 밑바닥을 잘 살펴보는데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것도 있는데, 바깥쪽으로 나무 기둥만을 세워서 받친 것도 꽤 많이 있네요. 

청산재 대청에 오르려면 이 좁은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너무 좁아서 오르내릴 때 많이 불편했을 듯하네요.

청산재 뒤쪽으로는 관리사로 보이는 건물이 있더군요. 지금은 비어있는 집인데, 마당이나 건물이 굉장히 깨끗합니다.

이 청산재의 특징 중에 하나 눈여겨 볼 게 있는데요. 바로 저 문이랍니다. 

 

문과 문 사이에 기둥을 세운 '영쌍창'이랍니다.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을 보면 가운데에 기둥을 세운 게 보입니다. 이런 건축 형태는 옛 방식이라고 하는데 18세기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이런 형태가 많다고 하네요.

 

청산재를 둘러보는데 푸드득 푸드득 소리가 많이 나더군요.

아까부터 제비들이 많이 날아들더니, 한 마리가 꼼짝없이 저기 앉아서 낯선 우리를 경계하듯 바라보고 있더군요.

애고애고~~~ 미안하다. ^^

제비를 만난 건 진짜 오랜만이네요. 

청산재 뒤로 가서 이렇게 관리사로 보이는 집 마당으로 나올 수 있네요.

옆쪽에 아궁이가 나란히 두 개가 있네요.

 

앗! 그런데 여기도 또 잘못된 부분이 있네요. 왜 제 눈에는 이런 것만 보이지요? 애고애고...

문경 청산재 안내판에 쓴 주소와 실제 집주소와 다릅니다.

안내판에는 문경시 영순면 청산재길 225(의곡리 942)라고 나와있는데...

 

실제 청산재 건물에는 청산재길 217-6이라 쓴 주소판이 붙었네요.

카카오맵을 열어 찾아서 로드뷰로 보니, 역시 집에 붙어있는 주소판의 주소가 정확합니다.

아, 여기도 역시 카카오맵에 등록이 안 되어있어 제가 등록신청을 했답니다. 

청산재는 대문이 따로 있지않고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당은 꽤 넓지요?

문경 근암서원

 

우암 홍언충 선생은 문경 근암서원과 군위 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습니다.

군위 양산서원

 

군위 양산서원은 지금까지 서너번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문이 닫혀있더군요. 이번 글을 쓰면서 지난주에도 다녀왔는데 서원 둘레를 빙 돌아가며 담장 너머로만 둘러보고 왔지요. 그런데 어떤 분들이 굳게 닫힌 문 옆으로 난 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더군요. 우리도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관광객은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하더군요.

 

양산서원은 군위 부계면 한밤마을과 삼존석굴 옆에 있는데 부계면은 '부림 홍씨' 세거지랍니다. 홍귀달 선생과 그의 아들인 홍언충 선생을 모시고 배향하는 곳이라 해서 일부러 또 찾아왔는데 들어오지 말라고 하니 돌아설 수밖에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저 '읍청루'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며 구경하더군요.

 

경북 문경시 영순면 청산재길 217-6

 

 

 

※ 홍귀달 선생 발자취를 따라가며 촬영한 영상을 담아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담았습니다.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dEQq3NFgrp4?si=wlYxfW2xVMujTlXA

 

※ 홍귀달 선생 이야기를 담은 글도 함께 보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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