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삼은 가운데 한 분이신 야은 길재 선생을 톺아보려 합니다.
길재 선생은 제가 사는 구미시가 고향인 분이랍니다. 선생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조선 초 성리학자입니다.
고려가 이성계에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구미 선산에 내려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살다 가신 분이지요.
구미시에는 길재 선생의 유적이 생각보다 많이 있답니다. 생가 터를 시작으로 지주중류비, 채미정, 길재선생 묘소, 야은영당, 금오서원, 그리고 금산에 있는 청풍서원까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도 한 번씩 가본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한 달 동안 유튜브(한빛국가유산TV) 영상과 티스토리 글쓰기를 위해 모든 유적에 다시 찾아가서 보고 왔답니다. 앞으로 하나씩 다 소개할까 합니다.
아, 유튜브 영상은 지난 (7/25일) 오랜 시간 정성들여 편집해서 33분짜리 영상으로 업로드를 했습니다. 이 글 아래에 영상 링크를 해 놓겠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 유적을 찾아서> 오늘 그 마지막인 7편은 선생을 배향하는 구미 금오서원을 소개합니다.
금오서원 사진은 몇 해 앞선 가을에 찍은 거랍니다.
황금들판과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 흐르는 멋진 곳에 자리 잡은 금오서원은 처음부터 여기에 세워진 게 아니었답니다.
1545년(명종 22)에 최응룡(崔應龍), 김취문(金就文)이 주창하여, 고려말 길재(吉再)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랍니다.
길재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금오산 밑에 오두막을 짓고 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곤 하셨지요. 그 자리가 바로 앞서 소개했던 채미정(菜薇亭)이었답니다.
아마도 처음 금오서원을 세웠던 곳도 그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자리가 좁아서 옮겨 다시 세운 곳이 지금 이 자리 선산읍 원리 마을이랍니다.
금오서원에는 지금 부속 건물이 여러 채 있답니다.
여러 해 앞서 오랫동안 공사를 하더니, 이렇게 멋진 건물들을 많이 세웠더군요.
서원 옆으로 난 쪽문이 있어 이쪽으로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서원 앞쪽 모습입니다. 높다란 계단으로 올라가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언덕 위에 세워서 그 자체 만으로도 무척 위엄있어 보이고 권위가 한껏 살아나네요.
금오서원 들머리이자 정문인 <읍청루(邑淸樓)>입니다.
누각이 굉장히 멋스럽습니다.
금오서원 안내판이 있고 그 곁에는 ‘부백김공사철송공비(府伯金公思轍頌功碑)’가 있습니다.
부백(府伯) 김사철(金思轍, 1847~1935)의 송덕비입니다. 구한말 때 선산부사를 지낸 김사철을 말하는 거랍니다. 금오서원이 퇴락해 가는 걸 보고 새로 중수할 수 있도록 했기에 선산 사람들이 그의 공을 기려 송덕비를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에 조선의 귀족으로 '수화동 부자'로 불리우며 살았다는데 일본 정부한테 남작 작위를 수작하고 2만 5천원의 은사공채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자신의 작위를 습작받은 장남 김석기와 함께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2009년 친일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고...
금오서원 안쪽으로 들어가려면 이 읍청루 아래로 지나가야 합니다.
안쪽에서 본 읍청루입니다.
금오서원의 강당인 정학당(正學堂)입니다.
정학당은 지난 2020년 12월에 보물 2102호로 지정되었답니다.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과 함께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이 배향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랍니다.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士林)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으로 선현에 대한 제자와 학문 연구, 그리고 유생들을 길러낸 곳이지요.
정학당에서 바라본 읍청루와 유생들이 함께 숙식하던 기숙사인 동재 서재입니다.
왼쪽에 있는 동재는 시민재(時敏齋) 현판을 걸었고, 서재는 일건재(日乾齎) 현판이 걸려 있답니다.
금오서원 원계칠조 (院戒七條)
汚穢窓壁(오예창벽: 서원 주위는 더럽히지 말 것)
損傷書冊(손상서책: 서책이나 기물을 손상하지 말 것)
遊戱廢業(유희폐업: 서원에서 노래하고 춤추지 말 것)
群居無禮(군거무례: 떼 지어 무례한 짓 하지 말 것)
干索酒食(간색주식: 술과 고기는 삼갈 것)
說話亂雜(설화난잡: 대화는 조용하고 음담패설을 하지 말 것)
衣冠不正(의관부정: 의관은 부정하게 하지 말 것)
犯此七禁者(기래칠금자) 己來卽歸(기래즉귀) 未來卽莫來(미래즉막래)
등 금오서원에 오면 삼가야 할 것 7가지를 정해 놓았지요. 그리고
“이 칠금을 범한 자는 이미 왔으면 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를 말라”라는 뜻입니다.
강당인 정학당 뒤쪽 모습인데요.
가운데 내삼문이 있고 그 위에 묘우인 상현묘(尙賢廟)가 있습니다.
상현묘도 정학당과 함께 지난 2020년 12월에 보물 2103호로 지정되었답니다.
길재 선생의 유적으로 <선산 삼강정려>가 있습니다.
선생이 태어나신 고향 마을인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마을에 있는데 충신과 효자, 열부 이 셋을 기리는 정려와 빗돌이 있는 정려각이랍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빗돌이 야은 길재 선생 정려 빗돌이랍니다.
세 정려 중 하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고려를 향한 충절을 기려서 나라에서 내린 정려이고,
다른 하나는 야은에게서 감화를 입은 열녀(烈女) 약가(藥哥)가 그의 남편 조을생(趙乙生)이 왜구에 잡혀간 뒤 8년을 하루같이 하늘에 치성으로 빌어 정절을 지킨 것을 기려 내린 정려이며,
마지막 하나는 부모님을 지성으로 봉양하여 자식의 도리를 다한 효자 배숙기의 효행을 기려서 세운 정려랍니다.
지금까지 여러 날에 걸쳐 제가 사는 구미시의 역사 인물인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글과 영상으로 함께 소개를 했습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갈무리를 합니다.
곳곳마다 돌아보면서 몇몇 곳은 구미시에서 조금 더 마음을 써서 관리하고 정비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답니다.
또 요즘 나라를 위해 애쓰고 희생하며 온 삶을 바친, 오로지 독립을 위해 살았던 독립운동가들이 너무나 홀대받고 있는 걸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러움 없도록 제대로 대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보탭니다.
★ 아래는 예전에 금오서원과 삼강정려를 소개했던 유튜브 영상입니다. ★
https://youtu.be/-_8Jk4ILI8Q?si=mt4YwC3E-zYj8-8r
https://youtu.be/-k5CJT_CLCI?si=E2j2EpJkWNZJUKE2
경북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593-31
★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8nLvfgzkvhs?si=Dwn18vNOVL3Svsdk
★야은 길재 선생 유적을 찾아서 다른 글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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