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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3] 구미와 똑같은 지주중류비가 금산 청풍서원에 있다!

by 한빛(hanbit) 2024.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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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삼은 가운데 한 분이신 야은 길재 선생을 톺아보려 합니다. 
길재 선생은 제가 사는 구미시가 고향인 분이랍니다. 선생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조선 초 성리학자입니다. 
고려가 이성계에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구미 선산에 내려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살다 가신 분이지요.   구미시에는 길재 선생의 유적이 생각보다 많이 있답니다. 
생가 터를 시작으로 지주중류비, 채미정, 길재선생 묘소, 야은영당, 금오서원, 그리고 금산에 있는 청풍서원까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도 한 번씩 가본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한 달 동안 유튜브(한빛국가유산TV) 영상과 티스토리 글쓰기를 위해 모든 유적에 다시 찾아가서 보고 왔답니다. 앞으로 하나씩 다 소개할까 합니다.  
아, 유튜브 영상은 지난 (7/25일) 오랜 시간 정성들여 편집해서 33분짜리 영상으로 업로드를 했습니다. 이 글 아래에 영상 링크를 해 놓겠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 유적을 찾아 이번에는 세 번째 이야기는 금산군 부리면 불이 마을로 갑니다. 앞서 소개한 구미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와 똑같은 또 다른 지주중류비를 찾아갑니다.

여기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마을에 있는 <청풍서원>입니다.

딱 봐도 굉장히 웅장해 보입니다. 크고 웅장한 보호각 안에 큰 빗돌이 있고 또 그 옆에는 비각도 없고 머릿돌도 없는 빗돌 하나가 딱 서 있습니다. 많이 보던 겁니다. 하하하! 네 바로 구미에 있는 <지주중류비>와 똑같은 빗돌이네요.

지주산이 있다는 중국 황허강은 아니지만, 장마철에 불어난 흙탕물이 흐르는 하천이 마치 황허강처럼 여겨지기도 하네요. 하하하!

 

금산 청풍서원은 야은 길재 선생을 기리는 서원이랍니다. 

선생의 아버지인 길원진이 여기 금산 땅에 금주(금산)지사로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곳 부리면 마을에 장사를 지내고 정성을 다해 시묘살이를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 마을의 부유한 집의 딸인 중랑장 신면의 딸 아주 신 씨(鵝州申氏)와 혼인을 했답니다. 그러니 이 마을이 바로 처가인 셈이지요.

이런 까닭으로 여기에 <청풍사>란 사당을 세워 야은 길재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배향하게 된 거랍니다.

 

이곳 청풍서원을 처음 찾았을 때가 생각나네요.

구미에서 여기까지 찾아온 게 바로 이 <지주중류비>를 보려고 왔던 거였거든요. 구미에 있는 거랑 똑같이 생겼다고 해서 보러 왔었지요.

구미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

어떤 가요? 빗돌 두 개가 똑같이 생겼지요?

다만 금산 청풍서원 빗돌은 글씨 빛깔이 붉은 색이네요.

글자의 생김새도 똑같고 크기도 거의 똑같습니다.

청풍서원 지주중류비는 구미에 있는 걸 탁본해서 새긴 거라고 합니다.

 

 

황허강 지주 바위가 천만년 거친 물살 속에서도 굳건하게 그 위용이 변함없는 것이 바로 백이와 숙제의 충절과도 같다 했으니, 길재 선생의 그 충절 또한 그에 못지않다 하겠지요. 그런 뜻으로 여기에도 똑같은 <지주중류비>를 세운 것입니다.

 

또 그 곁에는 따로 보호각을 두고 그 안에 백세청풍비와 길재 선생 유허비가 있습니다.

백세청풍비

 

 

백세청풍이란 뜻은 은나라 충신 백이와 숙제의 청풍은 백세에 영원하라는 뜻으로 백이숙제 사당 앞에 세워진 것을 모사하여 조선 영조 37년(1761)에 금산군수 민백홍이 군내의 유림과 후손들의 힘을 모아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백세청풍 네 글자도 무척이나 힘 있게 보입니다.

비의 높이가 343cm 너비는 81cm입니다. 앞뒤 두께는 67cm로 제법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옆에는 또 길재 선생유허비가 있습니다.

생가터에서도 봤던 유허비입니다.

고려문하주서 야은길선생 유허비 (高麗門下注書冶隱吉先生遺墟碑)라고 쓰여있습니다.

문하주서는 고려 때 길재 선생의 벼슬을 말하는 거랍니다. 

 

비각의 단청이 몹시 화려합니다. 봉황에 용, 구름 문양까지 총 천연 빛깔로 매우 아름답네요.

 

청풍서원은 그 옛날 길재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후손들과 고을 선비들이 함께 뜻을 모았습니다.

 

처음에 '불이사' 사당으로 시작해서 1678년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청풍사'가 되었답니다.

 

백세청풍 비각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청풍서원 안에 청풍사 사당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야은 길재 선생이 쓴 시 <회고가>입니다.

이 시는 태종 이방원이 길재 선생한테 태상박사 벼슬을 내릴 때 한양으로 올라오게 했는데, 그 벼슬을 사양하고 옛 도읍지인 개성에 갔을 때 쓴 시라고 합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청풍서원 편액인데요.

 

丁巳菊秋(정사국추) 朴正熙(박정희) 

 

이 글씨를 정사년 1977년 가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하네요.

 

아아~! 아쉽게도 청풍서원은 문이 굳게 잠겨 있습니다.

안쪽을 구경할 수가 없네요. 문틈으로라도 보려고 했는데 그것 또한 틈이 없더라고요.

 

담장도 높아서 쉽지 않은데, 이 사진은 바깥으로 다시 나가서 옆 담장너머로 찍은 사진들이랍니다.

이렇게 보니, 여기는 좌묘우학 배치구조로 된 서원이군요.

사당이 왼쪽에 있고 강학공간인 강당과 동.서재가 오른쪽에 있는데, 이렇게 봐서는 동재와 서재는 잘 구분되지 않네요. 동재만 있고 서재는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안에 들어갈 수 없으니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네요. 쩝!

 

어쨌거나 저기 사당 이름은 <청풍사>입니다. 처음엔 길재 선생의 불사이군 정신에서 따온 <불이사>였다지요.

저 안에 선생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아 참, 이 마을 이름도 '불이마을'인데요. 처음에는 부리 마을이었다가 선생의 그 정신을 나타내려고 마을 이름까지 바꾸었다고 합니다.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마을입니다.

 

이곳 청풍서원도 서원철폐령 등으로 네 차례나 철폐되는 운명을 거듭했다고 하네요.  지금 건물은 1928년에 중수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음력 9월 15일에 경모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코앞에서 서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몹시 아쉽네요.

 

서원 담장 앞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요. 바로 백송입니다.

백송

백송은 자라면서 껍질이 벗겨져 나가고 하얀 줄기가 나타납니다. 흰색은 태양의 빛으로 숭고하고 때가 묻지 않아 순결함을 뜻하는 빛깔이랍니다. 

선생의 충절을 나타내는 또 하나의 상징물이네요.  

이 백송은 2018년에 50년생 소나무를 심은 거라고 합니다. 

 

백송 옆에 네모난 바위에다가 글자를 써놓은 게 있습니다.

바로 이건 데요.

白日節義 松賴千秋(백일절의 송뢰천추)

여덟 글자를 새겼습니다.

'밝은 태양 같은 절의, 솔바람처럼 천추에(오래도록) 전하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서원에 있는 모든 곳에 길재 선생의 충절이 스며있네요.

청풍서원 하마비

 

 

오늘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지를 찾아서> 세 번째 이야기는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와 똑같은 빗돌과 백세청풍비가 있는 또 다른 유적지인 충남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마을에 있는 청풍서원을 둘러봤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구미시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으로 만날게요.

 

충남 금산군 부리면 무금로 1688

 

★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8nLvfgzkvhs?si=0emVyi6Ra26MB8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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