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나? 구미시에 야은 길재 선생 유적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걸

이번에는 고려삼은 가운데 한 분이신 야은 길재 선생을 톺아보려 합니다. 길재 선생은 제가 사는 구미시가 고향인 분이랍니다. 선생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조선 초 성리학자입니다.
고려가 이성계에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구미 선산에 내려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살다 가신 분이지요.
구미시에는 길재 선생의 유적이 생각보다 많이 있답니다.
생가 터를 시작으로 지주중류비, 채미정, 길재선생 묘소, 야은영당, 금오서원, 그리고 금산에 있는 청풍서원까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도 한 번씩 가본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한 달 동안 유튜브(한빛국가유산TV) 영상과 티스토리 글쓰기를 위해 모든 유적에 다시 찾아가서 보고 왔답니다. 앞으로 하나씩 다 소개할까 합니다.
아, 유튜브 영상은 지난 (7/25일) 오랜 시간 정성들여 편집해서 33분짜리 영상으로 업로드를 했습니다. 이 글 아래에 영상 링크를 해 놓겠습니다.

오늘 첫번째로 소개할 곳은 야은 길재 선생이 태어나신 생가터입니다. 죽림사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생가터 주소는 경북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522입니다.
지난 2020년에 길재 선생 생가터와 길재 선생 묘소를 처음 다녀왔는데, 지도에서조차 나오지 않아서 길 찾는데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다녀온 뒤 카카오맵에 등록신청을 해서 지금은 정확한 주소에 정확하게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녀온 길에 좋은 발자국이 되었으리라 생각하고 뿌듯하고 보람찹니다.

지금은 길을 정확하게 아니까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생각지도 못했던 고생길이 시작됩니다.ㅠㅠ

죽림사 옆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이렇게 갈림길이 나옵니다.
왼쪽은 어느 문중의 묘소가 있는 곳입니다. 들어오지 말라고 나무로 막아놓았습니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풀이 종아리까지 자라 있습니다. 한여름이라서 풀이 많이 자라기도 하지만 이건 너무 하네요. 야은 길재 선생님 생가터로 가는 길에 풀 정리를 전혀 안 했네요.
이거 어떡하지요? 가지 말까?
진짜 잠깐 망설였어요.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는 풀이 죽지도 않을 테고 갈수록 더 무성 해질 테니 잡풀을 헤치고 가야 합니다.

한여름에 이렇게 잡풀이 우거진 길을 가는 건 진짜 모험이에요. 혹시라도 이 무성한 잡풀 사이에 뱀이라도 있을까 봐 그게 가장 겁나네요. 또 이렇게 덥고 습한 날에는 모기와 초파리가 엄청나게 많답니다. 눈앞에서 윙윙~ 아른거리며 귀찮게 하는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랍니다. 이번 한 달여 동안 모기한테 내 단 피를 얼마나 바쳤는지 모른답니다. ㅠㅠㅠ

생가터로 가는 내내 이런 길이 이어집니다.


그래도 웬만큼 올라가니 길이 좀 보이네요.

죽림사에서 약 4~500여 미터 올라가면 이 소나무를 만나면 생가터에 다 온 겁니다.

칡넝쿨까지 합세해서 온 산을 뒤덮었네요.

여기가 바로 야은 길재 선생 생가터입니다.
왼쪽으로 바위가 하나 보이고 앞쪽에 유허비 머릿돌이 보입니다. 그 양쪽으로 키 큰 향나무가 두 그루 서 있습니다.

지난 2020년 12월에 가서 찍은 사진인데요.
이때는 겨울철이라서 둘레에 풀이 다 죽어서 훤히 잘 보입니다.
저 위에 있는 사진과 견주면 바로 확인할 수 있지요?

왼쪽에 있는 바위에는 길재 선생이 쓴 시구를 새겨놓았습니다.
<술지(述志)>라고 하는 시인데 길재 선생이 열여섯 살 때 지은 시라고 하는데...

술지 (述志) (야은 길재)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시내 옆 초가집에 홀로 한가로이 살아가도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달 밝고 바람 맑아 흥취 남음이 있네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불래산조어) 속세사람 오지 않고 산새만 지저귈 때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을 본다 |
마치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느껴본 중년이 쓴 글처럼 느껴집니다.
정말 놀랍네요.

여기 보이는 빗돌은 길재선생 유허비입니다.
그런데 이 유허비 앞으로도 잡풀이 엄청 많이 우거졌네요. 가까이 가기가 겁이 날 정도입니다. 그나마 저 풀들을 헤치고 옆으로는 갔는데, 빗돌 정면으로는 갈 수가 없더군요.


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오다가 그치면 무덥고 습하고 애고애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데 무거운 장비 들고 이런 산길을 찾으려니 울 남편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잡풀을 헤치고 옆에 가서 최대한 가까이 찍어봅니다.
고려문하주서 야은 길선생 유허비(高麗門下注書冶隱吉先生遺墟碑)라고 쓴 빗돌입니다.
문하주서는 고려 때 길재 선생이 지낸 벼슬을 말하는 거랍니다.

유허비 뒷면에는 선생이 살아온 연보가 적혀 있답니다.
선생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낸 곳, 또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 구미 선산 봉계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에도 조선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사양했고, 또 '태상박사' 벼슬까지 내렸으나 글을 올려 거절했다고 합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였사온데 이제 다시 조정에 봉사한다면 명분교화에 누를 끼치는 일이옵니다."
라 하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킨 분입니다.
고향에 내려오자 많은 이들이 길재 선생을 찾아와서 함께 배우고 토론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색과 정몽주의 학풍이 길재 선생을 거쳐 김숙자 - 김종직 - 정여창 - 김굉필 - 조광조 - 이황 - 이이 등으로 이어져 '사림파'의 학맥으로 계승됩니다.
2020년 12월 18일 겨울, 길재 선생 생가터
지금부터 아래 사진들은 모두 2020년 12월 18일에 촬영한 것입니다.
잡풀이 없으니 좀 더 또렷하게 보여서 좋네요.





야은 길재 선생 연보 1353년(공민 2) 1세 선산 봉계리에서 태어남 자는 재보(再父), 호는 야은(冶隱) 또는 금오산인(金烏山人) 1362년(공민11) 10세 냉산 도리사에 들어가 글을 배움 1370년(공민19) 18세 상산(현 상주)사록 박분에게서 수학 1374년(공민23) 22세 국자감에 들어가 생원시에 합격 1383년(우왕 9) 31세 사마감시에 합격. 중랑장 신면의 딸과 결혼 1384년(우왕10) 32세 부친 지금주사로 금산에서 별세 1386년(우왕12) 34세 진사시 급제. 청주목사록에 임명하나 사양 1387년(우왕13) 35세 성균학정, 순유박사, 성균박사(정7품) 1388년(우왕14) 36세 이성계 위화도회군 1389년(창왕 1) 37세 종사랑 문하주서(정7품) 1390년(공양 2) 38세 모친 봉양 이유로 선산 봉계리로 귀향 1394년(태조 3) 42세 공주 동학사에 단을 쌓고 정몽주의 제사를 지냄 1400년(정종 2) 48세 태상박사(정6품)에 임명하나 사양함 1419년(세종 1) 67세 5월 선산 봉계리에서 돌아가심 |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들을 찾아서!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선생이 태어나신 고향 생가터를 소개했습니다.
야은 길재 선생의 생가터에 잡풀이 우거지고 관리가 전혀 안 되는 걸 보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고려삼은으로 불리는 목은 이색 선생과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가터는 각각 영덕과 영천에 아주 번듯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니, 길재 선생의 생가터가 너무나 초라해서 제가 다 죄송하기까지 합니다.
이 부끄러움은 제 몫일까요? 아니, 이건 구미시를 탓해야 할까요?
애고~ 하다못해 안내판 하나도 없고, 이정표 하나도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네요.
다음 2편에서는 구미시 오태동에 있는 <지주중류비>를 소개할게요.
경북 구미시 고아읍 봉한리 522
★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8nLvfgzkvhs?si=8WLuo5ChMMUeCj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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