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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2] 구미 지주중류비에 새긴 불사이군의 충절

by 한빛(hanbit)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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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삼은 가운데 한 분이신 야은 길재 선생을 톺아보려 합니다. 길재 선생은 제가 사는 구미시가 고향인 분이랍니다.
선생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조선 초 성리학자입니다. 고려가 이성계에 망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구미 선산에 내려와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길러내며 살다 가신 분이지요.
 
구미시에는 길재 선생의 유적이 생각보다 많이 있답니다.
생가 터를 시작으로 지주중류비, 채미정, 길재선생 묘소, 야은영당, 금오서원, 그리고 금산에 있는 청풍서원까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도 한 번씩 가본 곳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한 달 동안 유튜브(한빛국가유산TV) 영상과 티스토리 글쓰기를 위해 모든 유적에 다시 찾아가서 보고 왔답니다. 앞으로 하나씩 다 소개할까 합니다. 
아, 유튜브 영상은 지난 (7/25일) 오랜 시간 정성들여 편집해서 33분짜리 영상으로 업로드를 했습니다. 이 글 아래에 영상 링크를 해 놓겠습니다.

 

길재 선생께서 태어나신 고향 구미에 있는 <야은 길재선생 생가터>에 이어서 이번에는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선생의 충절을 잘 나타내주는 <지주중류비>가 있는 구미시 오태동으로 갑니다.

경북 구미시 오태동1

주소는 이렇습니다.

저의 집과도 아주 가까운 곳인 데다가 예전에 회사생활을 할 때 일터가 이쪽이어서 날마다 지나가던 곳이지요. 요즘은 그때와 달리 좀 더 깨끗하게 가꾸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비가 후드득 떨어집니다. 더 많이 오지만 말기를...

비가 오는데도 지주중류비 앞 잔디밭에 잡풀을 뜯고 솎아내고 계시네요.

남모르는 이런 손길 때문에 이렇듯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이게 바로 지주중류비입니다.

잔디밭을 따라가서 보이는 건 뒷면이랍니다.

이쪽이 앞면입니다.

앞쪽에는 한자로 <지주중류비각(砥柱中流碑閣)>이라 쓴 편액이 걸려있습니다. 

지주중류 앞쪽은 왕산로 찻길이 있어 나무 계단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대신에 여기엔 차를 세울 수가 없습니다.

지주중류(砥柱中流)

빗돌이 엄청 크지요?

비의 높이는 320cm, 너비는 109cm입니다.

 

 

중국 북쪽에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데요. 그 강은 '황허'강이고 길이는 무려 5.464km나 된답니다.

이 황허강의 중류에 '지주'라는 바위산이 있는데 돌기둥처럼 생긴 산이랍니다.

이 지주산은 강 물살이 아무리 거칠게 부딪혀도 끄떡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그 오랜 세월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마치 중국의 백이와 숙제의 충절과도 같다고 하네요. 

 

백이와 숙제는 중국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섰을 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면서 충절을 지킨 형제입니다. 

야은 길재 선생도 바로 이 백이와 숙제와 같은 충절을 높이 사지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었을 때 임금이 '태상박사' 벼슬까지 내리고 한양으로 올라오라고 했지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거절을 합니다. 

그런 선생의 충절을 기리려고 세운 게 바로 이 지주중류비랍니다.

앞면에 쓴 지주중류 이 네 글자는 중국의 명필가로 이름난 양청천이 쓴 글자라고 합니다. 백이와 숙제의 무덤 앞에 있는 글자와 같은 거라고 합니다.

구미에 있는 지주중류비 글자는 바로 양청천이 쓴 글자를 모사해서 새긴 거라고도 하고 또 종이에 탁본을 해와서 새긴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떤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빗돌에도 양청천의 이름을 새겼네요.

 

이 빗돌의 뒷면에는 지주중류의 뜻과 길재 선생의 삶을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글은 서애 (西) 류성룡 (柳成龍) 선생이 쓴 글이라고 합니다. 

처음 이 비를 세운 건 당시에 인동(구미) 현감이었던 겸암(謙) 류운용(龍) 선생이라고 합니다. 서애 선생의 형이지요.

형이 비를 세우고 동생이 비문을 쓴 셈이네요. 아주 멋집니다. 

비각 둘레에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를 심어놨네요.

지주중류 빗돌을 비각 안에 두어서 잘 보호하고 았습니다.

비각의 단청도 매우 예쁘고 화려합니다.

지주중류비각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을 나타내는 대나무에 빗방울이 맺혔습니다.

지주중류비 앞에 서서 둘러보면 길재 선생의 충절이 잘 느껴집니다.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을 되새겨봅니다.

이색과 정몽주의 학풍을 이어받은 야은 길재 선생,

선생의 성리학 학풍은 고향에 돌아와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면서 이어지고 또 전해집니다.

선생께 학문을 배우려고 찾아오는 이들이 그렇게나 많았다고 합니다.

 

길재 선생한테서 이어진 학문이 강호 김숙자 선생한테로...

또 그의 아들 점필재 김종직한테로... 그렇게 사림파의 학맥으로 이어갑니다.

 

지주중류비 앞 

예전에는 이 건물이 <오태슈퍼>였는데 지금은 그냥 가정집이네요. 

 

오늘은 이렇게 야은 길재 선생님의 불사이군 충절을 기리는 구미시 오태동 <지주중류비>를 소개했습니다.

구미의 지주중류비와 아주 똑 닮은 빗돌이 또 하나 있는데 그건 충남 금산에 있답니다. 다음 3편에서는 금산에 있는 지주중류비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경북 구미시 오태동 1

 

 

★ 야은 길재 선생의 유적을 찾아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8nLvfgzkvhs

 

★야은 길재 선생 유적을 찾아서 다른 글 보기 ↓★

 

https://sunnyhanbit.tistory.com/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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