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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근심은 잊고 살라'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예천 우망리 마을 <낙빈정>

by 한빛(hanbit)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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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망리 마을 낙빈정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마을!

회화나무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곳 삼수정(三樹亭)이 있는 마을!

마을 앞 야트막한 청룡산에 오래 앞서부터 백로가 깃들어 함께 살아가는 마을!

입향조인 동래 정 씨 삼수정 정귀령(鄭龜齡) 선생이 터 잡은 뒤로 그 후손한테서 정승이 열셋이나 나온 마을!

 

이 마을 이름에는 유래가 있는대요. 

그 옛날 용궁현 낙동강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용궁포내 (龍宮浦內) '라고 했다고 하네요.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망'(牛望)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서 낙동강 위에 있는 달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라는 '서우망월형'(犀牛望月形) 명당이었대요. 실제로 마을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또 많은 곡식을 내며 풍요롭게 살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마을 이름이 근심을 잊고 살 만한 마을'을 뜻하는 '우망'(憂忘)으로 바뀌었답니다.

이 마을에는 어디에서 보아도 훤히 보이는 정자가 하나 있답니다. 바로 '낙빈정 (洛濱亭)'이랍니다.

낙빈(洛濱) 정지(鄭沚) 선생을 기리는 정자로 후손인 정현모라는 분이 1900년에 세웠다고 합니다.

 

선생은 1563년에 이 마을에서 나셨는데, 자는 청원(淸源), 호는 낙빈(洛濱), 본관은 동래, '낙동강 물가에서 살겠다'라는 뜻의 낙빈을 호로 삼았다고 합니다. 일찍이 학문을 닦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강과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고 합니다.

낙빈 선생은 임진왜란 때에도 식구들을 피란시키면서도 선조들의 제사를 거르지 않고 챙겼다고 합니다.

동래정씨영모재

마을 한쪽에는 <동래정씨영모재>가 있답니다.

여기도 가봤는데, 영모재 재실과 함께 '우망누리마당'이란 공원으로 꾸며놓았어요. 화장실도 잘 마련되어 있고요.

낙빈정 구경하러 가는데 예쁜 개 한 마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네요. 아이가 어찌나 순한지 몰라요.

낙빈정

높다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 들판을 내려다볼 수 있답니다.

올려다본 정자가 꽤 멋스럽습니다.

낙빈정은 좁은 문을 지나 들어가게 되어 있네요.

낙빈 선생은 일가친척들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형수를 어머니처럼 모시며 조카들을 건사하며 모두 훌륭한 선비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뒷바라지를 했다네요. 또 임진왜란 때에는 모든 식구들을 이끌고 대동산으로 들어가서 피란시켰는데, 이때 앞서 소개했던 쌍절암의 주인공인 두 여인이 쌍절암에서 뛰어내린 일이 있었답니다. 바로 낙빈 선생의 조카 중 한 분이 매오 정영후 선생이고 그의 부인이 청주 한 씨였 이고 여동생 정소저입니다. 

조카들과 집안 사람들을 이끌고 왜군들을 피해서 강물을 건너는데, 적병들이 따라오다가 강물에 빠져 죽는 바람에 간신히 빠져나와서 용문면 용문산으로 피란시켜 가문을 잘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앞서 소개한 쌍절각 이야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

https://sunnyhanbit.tistory.com/336 

 

왜군을 피해 절벽에서 뛰어내린 두 여인을 기리는 예천 우망리 <쌍절각>

우망리 마을 들머리, 마을회관 앞에는 임진왜란 때 대동산으로 피란 갔다가 임진년 음력 5월 2일, 왜병을 피해 절개를 지키려 바위에서 낙동강으로 몸을 던진 두 여인을 기려 세운 정려각인 입니

sunnyhanbit.tistory.com

 

 

이 낙빈정은 선생의 후손이 선생을 기리려고 1900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다른 기록에 보면 낙빈 선생도 이곳에다가 정자를 짓고 글동무들과 시를 짓고 술을 나누며 여생을 보냈다고 하니 아마도 후대에 와서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 같네요.

낙동강 물을 벗삼아 사셨던 낙빈 정지 선생을 기리는 <낙빈정>

낙빈정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얕은 동산이 하나 있는데 저곳이 바로 청룡산이고 앞서 소개한 <우망리 백로 서식지>입니다.

그리고 왼쪽에 보이는 나무숲 넘어가 입향조 정귀령 선생이 세웠다는 <삼수정>이 있답니다. 아마도 선생은 언제나 삼수정을 바라보면서 선조들의 뜻을 되새기며 살았겠지요?

지금도 이렇게 우망리 마을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백로들

 

삼수정

낙빈정에서 바라보며 얕은 나무숲 뒤로 삼수정이 있습니다.

낙빈정에서 우리를 맞아준 친구~ 안녕~

사실은 이 녀석 잘 쉬고있는데 우리가 방해를 한 거지요. 미안미안~~

낙빈정은 앞쪽은 4칸, 옆은 2칸입니다.

앞에는 난간을 두고 뒤쪽으로는 쪽마루를 빙 둘렀네요.

운곡재(雲谷齋)

언젠가 운곡재라는 이름도 걸었나 봅니다.

낙빈정과 운곡재라는 편액을 서로 마주 보며 걸었습니다.

낙빈공종택

낙빈정에서 내려오면 선생의 종가인 <낙빈공종택>도 있답니다.

종택에는 지금도 후손이 살고 있습니다. 대문도 없는 너른 터에 지은 집인데 참 멋스럽더군요.

 

삼수정, 낙빈정, 백로서식지, 동래정씨 영모재, 쌍절암, 쌍절각, 낙빈 정지 선생의 종가인 낙빈종택, 그리고 독립운동가 추산 정훈모 선생 기념비, 온종일 걸어도 덥지 않고 힘들지 않은 쌍절암 생태숲길이 있는 우망리 마을!

낙빈정은 어디에서 봐도 참 멋스럽습니다.

 

낙동강과 들판이 풍요로운 마을 우망리 마을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곳이었답니다.

무척이나 예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어요.

낙빈정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울 초롱이는 아까 보았던 순한 강아지를 보고 몹시 좋아합니다. ^^

 

오늘 이야기를 끝으로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마을> 이야기 다섯 꼭지를 마무리합니다. 이 글을 보는 분들 모두 즐거웠다면 한빛은 무척 행복할 겁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길 288-3

 

※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 마을 이야기> 모두 아래에 링크합니다.

 

https://sunnyhanbit.tistory.com/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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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unnyhanbit.tistory.com/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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