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당'을 아시나요? 우재 손중돈 생사당
'생사당'을 아시나요?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생사당'은 좋은 정치를 베풀고 어진 행정을 펼친 고을 수령의 선정을 기리려고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사당을 세워 백성들이 축원하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조선 전기 때에는 생사당을 세우는 일이 많았나 봅니다. 그러나 부당하거나 마구잡이로 세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숙종 때에 금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계속 세우자 1862년(철종 13년) 5월에 완전히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선생은 조선 전기 때에 이조판서, 대사헌, 대사간 등을 지낸 문신이었습니다. 오늘은 선생을 기리는 생사당과 속수서원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재 선생의 본디 앞서 소개했던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 마을에 처음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졌던 것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 2015년에 상주시 사벌국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옆에다가 복원했다고 합니다.
상주박물관 전통의례관 바로 옆에 <의우총>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따라가면 <우재 생사당>이 있습니다.
'의우총'이 뭘까요?
네 맞습니다. <義牛塚>은 의로운 소 무덤이랍니다. 제가 사는 구미에도 의우총이 있는데, 구미는 조선 인조 때 만들어진 의로운 소무덤이지만, 여기 상주 의우총은 지난 1993년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된 누렁이의 무덤이랍니다.
짧게 소개하자면, 늘 외양간에 매여있던 누렁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는데 찾아보니, 3km 떨어진 이웃 할머니(김보배)의 무덤 앞에 가서 고개 숙이고 눈물을 흘리더랍니다. 그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이틑날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가 평소에 누렁이를 쓰다듬어주고 주인이 없을 땐 먹이도 챙겨주곤 했다는데 그 후에 소가 죽자 상주시에서 의로운 소를 기리며 여기 상주박물관 손중돈 생사당 아래에 묻어주었답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던 청백리 우재 손중돈
어찌하다 보니, 지난번에 소개했던 허백당 홍귀달 선생도 폭군 연산군한테 '바른말'을 하다가 유배를 가고 또 살해당한 분이신데, 우재 선생도 연산군에 '바른말'을 한 충신이었지요.
조선시대 언론기관이었던 사간원의 종 5품 헌납이었을 때, 연산군의 악행과 패륜적인 행동을 부추긴 간신의 대명사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인 임사홍과 신수근의 악행을 탄핵하며 거듭하여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끝내 갑자사화 때에 그 사건을 빌미로 당시 김해도호부사로 있던 선생은 파직당하였고 의금부로 압송되어 장 100대를 맞는 처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우재 손중돈 선생은 경주 양동마을에서 나신 분이랍니다. 월성(경주) 손 씨이고 회재 이언적이 선생의 외조카랍니다. 선생은 아버지의 동무였던 사림의 영수인 김종직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연산군 때 파직당했다가 중종반정 이후 상주목사로 부임해서 선정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경주 손 가인데 울 할아버지시네요. 왠지 어깨가 으쓱~!!!
상주에서 좋은 정치를 하셨다고 하는데, 상주에 흉년이 들었을때엔 경주 본가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상주 백성들을 구휼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답니다.
우재 선생의 말씀 중에 "백성이 곧 나라의 근본이라" 했는데 선생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분이랍니다.
생사당은 상주 박물관 전통의례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런 선생의 '애민사상'은 2년 9개월 동안 상주목사로 있었는데 백성들한테도 인정받은 수령이어서 선생이 떠난 뒤, 생사당을 세웠다고 합니다.
의성군 단밀면(당시에는 상주 땅) 서제리 마을에 세웠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그동안 복원을 못했다고 하네요. 지난 2015년에 이곳에 복원을 했답니다.
그런데 직접 찾아가서 보니, 복원이라기는 하지만 삼문에 모두 유리를 붙여놓았네요. 어쨌든 본디 모양대로 복원한 건 아니지만 선생의 뜻을 기린다는 본뜻은 그대로 살아 있을 거라 믿습니다.
바른 정치, 올곧은 정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정치...
오늘날 수많은 공직자들한테도 귀한 모범이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은 상주 목사를 마친 뒤에도 승정원 좌승지, 사헌부 대사헌, 경상.전라.충청.함경도 관찰사, 공조.예조참판, 공조.이조판서, 의정부 우참찬 등을 지냈습니다.
중종 때에 청백리에도 오르고 1592년(중종24) 선생이 67세로 돌아가신 뒤 선생의 청렴결백함을 높이 사서 '경절(景節)'이란 시호를 내렸다.
손중돈 선생 선정비 (상주 박물관 야외 전시장)
마침 상주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손중돈 선생의 선정비가 있어 보러 갑니다.
바로 이 빗돌인데요. 빗돌 하나에 손중돈 선생과 권기 선생 두 분의 선정을 기념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권기라는 분도 '상주 목사'로 재임했던 것 말고는 자료가 많이 없어서 잘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상주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푼 분이었군요.
앗~! 그런데 이 선정비가 조선시대(1545년)에 세워진 거라 했는데, 알림판에는 아뿔싸! 1945년이라고 나왔네요.
우리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알림판을 세울 때는 정말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 다녀와서 <상주박물관>에 전화를 해서 알아봤습니다. 혹시 모른다면 알려주고 잘못된 건 바꿔야겠지요.
다행히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더군요. 이 알림판을 작년(2023년) 4분기 때에 새로 바꿔서 세웠는데 최근에 야외 전시장을 다시 조사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번 장마가 끝나고 나면 바로 고쳐 세울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잘 알고 계시니...
손중돈 선생은 경주의 동강서원(東江書院)과, 상주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모시고 배향한다고 합니다.
우재 손중돈 선생을 배향하는 <속수서원>
속수서원은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에 있습니다.
애고~! 속수서원에 왔는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이런, 실망스럽네요.
속수서원 사적비만 우리를 맞아줍니다.
다행스럽게도 담장이 낮아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네요.
뒤쪽에 사당이 있고 앞에는 강당인 명륜당이 있는 '전학후묘' 구조로 된 서원이군요.
역시나~! 문 닫힌 문화유산을 참 많이도 봤는데...
어김없이 잡풀이 마당 안을 가득 메웠네요.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 제발 사람 숨결을 먹고 살게 할 수는 없을까요?
속수서원과 속수명륜당 현판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습니다.
안쪽에 이런저런 편액들이 많이 걸려있는데 알아볼 수는 없네요.
어머나! 아마도 중수기인 듯한데 반갑게도 한글로 쓰여있네요. 하지만 멀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어요. ㅠㅠ
오늘은 임금(연산군)한테 '바른말'로 간언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갑자사화 때 그 일로 파직 당하였고 중종반정 후 복귀되어 '상주 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래서 '생사당'까지 세워주었던 청백리 우재 손중돈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습니다. 상주에 있는 <우재 손중돈 생사당>과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의성 <속수서원>까지 둘러봤습니다.
이다음에는 우재 선생의 고향인 경주 양동마을에도 다시 가봐야겠네요. 선생이 낙향하여 지은 집인 <관가정>과 선생과 외조카인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나신 집인 <서백당>도 꼼꼼하게 다시 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동강서원>도 놓치지 말아야지요.
※ 한 해 넘도록 잘(?) 쉬었다가 이번에 글쓰기와 함께 다시 시작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도 바로 손중돈 선생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도 함께 봐주세요. ^^
https://youtu.be/fHvxK_fxQdU?si=OCg2cyCtigJaJXN_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78
경북 의성군 단밀면 속암리 78
※ 맨 처음 우재 손중돈 선생 생사당을 세웠다는 의성 서제리 마을 이야기도 함께 보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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