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앞서 상주 나들이 갔다가 구미로 돌아가던 길에 의성 서제리 마을을 지날 때, 굉장히 남다른 건물을 보고 차를 되돌려 둘러보고 갔던 적이 있답니다.
그때 이야기를 티스토리에도 썼는데 아래에 링크해 놓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역사인물 한 분을 찾다가 이 마을을 다시 찾게 되었답니다.
조선시대, 연산군에 간언 했다가 파직당하고 중종반정 이후 다시 상주 목사로 부임되어 좋은 정치를 폈던, 그 뒤에 청백리에 올랐던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찾아가려고 합니다.
어찌 하다보니, 앞서 소개했던 허백당(虛白堂) 홍귀달(洪貴達) 선생과 함께 연산군 때문에 파직당하고 유배를 간 역사 인물을 살펴보게 되었네요. 그것도 같은 지역에서 이런 훌륭한 분들이 계셨다는 게 퍽 놀랍습니다.
우재 손중돈 선생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선생의 '생사당'이 있었다는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 마을 이야기와 풍경을 중심으로 먼저 펼쳐 봅니다.
서제리 마을에는 이런 선돌이 두 개가 있습니다. 지금 보는 것은 서제리 마을 큰 선돌입니다.
예전에 갔을 때는 이 큰 선돌이 있다는 건 몰랐답니다. 이번에 손중돈 선생 이야기를 찾다가 이 마을이 관련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또 그때 몰랐던 큰 선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이래서 한 번 가본 곳도 다시 찾아가 보는 게 퍽이나 뜻깊은 일이라는 걸 또 깨닫습니다.
서제 2리 버스 정류장
혹시 기억 나시나요?
바로 <서제리 당집>입니다. 서제리 성황당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예전에 이 앞 찻길을 지나가다가 저 당집을 보고 차를 되돌려 이 멋진 문화유산을 보게 되었던 게지요.
서제리 마을 들머리에는 큰 당나무도 있습니다.
본디부터 있던 동제 지내던 '당나무'가 있었는데 태풍 때문에 쓰러져서 베었다는 글도 봤는데 앞에 보이는 이 나무 역시 엄청나게 큽니다.
산 아래 있는 이 두 시골집이 무척 인상 깊었답니다.
와~!!! 그때는 없었던 넓은 주차장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풀숲이었답니다.
서제리 동제 - 집집이 1만 5천 원씩 '제비'를 낸다
서제리 마을에는 해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서제리 동제'를 지낸답니다.
당집에 금줄을 친 모습이 보이네요.
정월 초삼일이 되면 제관 3명을 뽑는답니다. 이때부터 각 제관들은 행동을 조심하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는다고 해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를 지낼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또 마을 사람들이 각 가정마다 1만 5천 원씩 제비를 내서 80만 원 정도를 들여 동제를 지낸다고 하네요. 행여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에는 동제가 끝난 뒤에 제비를 낸다고 합니다.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는데 지금도 '제비'가 같은 값인 지는 모르겠네요. 아마도 조금씩 더 오르지는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이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정월 열 사흗날 아침에는 당목과 당집, 선돌, 거북 바위, 그리고 제관의 집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며, 마을 입구에도 황토를 뿌린다고 합니다.
서제리 당목인데요. 여기도 금줄을 둘렀네요.
나무가 아마도 왕버들 같기도 하고 회화나무인 듯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쓴 글에는 회화나무라고 했더군요.
나뭇가지 뻗은 것 좀 보세요.
한쪽은 날개가 꺾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쪽은 팔을 길게 뻗어 마을 정자 위로 드리웠네요.
이 당목도 꽤 오랜 세월이 느껴집니다.
당목 앞 경운기가 쉬고 있습니다.
당목 그늘이 매우 시원하더라고요. 하하하
저 두 집은 어느 쪽에서 봐도 꽤 운치 있더군요.
서제리 마을 가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저 나무도 꽤 크네요.
이 마을도 들판이 싱그럽습니다. 찻길 앞쪽에는 정말 너른 평야이거든요.
올해에도 태풍이나 비 피해 없이 풍년이 들기를 저도 함께 기원합니다.
이런 감성 사진 참 좋아합니다. ^^
논둑에 핀 개망초꽃은 수수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나지요. 6월이 되면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소박해서 더 예쁜 개망초꽃입니다.
주차장을 이렇게나 넓게 해 놨는데 차는 한 대도 안 보여요.
운동기구도 몇 개 보이네요.
아마도 동제를 지낼 때면 이 너른 터에 마을 사람들이 큰 잔치를 벌이겠네요. 그 풍경이 상상됩니다.
괜히 흥겨워지고 신명이 나네요. 대동굿도 하지 않을까요? 막 어깨도 들썩여지네요. 하하하~!!!
서제리 큰 선돌 작은 선돌 - 할매바위 할배바위
서제리 당집 양쪽으로는 선돌이 하나씩 있습니다. 큰 선돌은 당집 왼쪽(팔등리 쪽)에 있고요. 작은 선돌은 당집 오른쪽(속암리)에 있답니다.
이 선돌이 당집 왼쪽 50~1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큰 선돌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할매바위라고도 한다네요.
이 선돌은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정기가 앞 들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할매바위 뒤로 고속도로가 보입니다. 당진영덕 고속도로인데 상주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입니다.
할매바위에도 금줄을 둘렀습니다.
이 넓고 풍요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는 선돌이 이 마을을 진짜 지킬 듯합니다.
자, 이번에는 작은 선돌을 보러 갑니다.
당집 오른쪽으로 50~100m쯤 떨어진 찻길 가에 있습니다.
작은 선돌은 할배바위라고도 합니다.
키가 큰 선돌을 할매라고 하고 작은 걸 할배라고 하고... 거꾸로 된 건 아닐까? 하하하
아무튼 할배바위가 더 작습니다.
할배바위는 키가 작은 대신에 좀 더 우직한 면이 있네요.
저기 뒤에 아까 보았던 당집이 보이지요?
이렇게 선돌 두 개가 당집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서제리 거북바위 - '구서당 마을', '구서 마을'
서제리 작은 선돌(할배바위) 곁에는 펜스를 친 집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에는 거북바위가 있답니다.
예부터 서제리 마을을 '구서당' 마을이라고도 하고 '구서'라고도 했답니다. 실제로 옛날에 마을 안쪽에 서당이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오늘 이 마을을 다시 찾은 것도 그 옛날 이 마을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우재 손중돈 선생의 '생사당'이 있었다고 해서 오게 되었거든요.
또 '구서'라고 한 건 바로 이 거북바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땅에 묻혀 있었던 거북바위가 마을 앞 찻길 공사할 때 땅에서 드러나 길 위에 두었던 걸 지금처럼 펜스를 치고 집을 지어 그 안에 모셨다고 하네요.
해마다 정월 열나흘 날이면 동제를 지내는데 이 큰 선돌, 작은 선돌, 거북바위, 당집, 당나무에 흙을 뿌리고 금줄을 둘러서 지낸다고 합니다.
찻길을 건너 당집 앞으로 가는 고양이를 봅니다. ^^
경북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 마을, 동제를 지낼 때 예를 다 하며 마을 사람들이 똑같이 거둔 제비를 가지고 준비하고 또 금기사항도 잘 지키면서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잘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현대에 와서 이런 전통을 올곧이 잘 지켜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잘 보존되고 이어지는 게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선돌, 거북바위, 당집, 당목 등은 크게 보면 '국가유산'이고 작게 보면 이 마을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자연유산'입니다. 또 전통을 잘 보존하며 동제를 지내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무형유산'입니다. 우리네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며 소개하는 저로서는 이런 마을이 무척 고맙게 느껴집니다. ^^
서제리 당집(성황당) 경북 의성군 단밀면 서제리 467-2
※ 지난 2022년 10월에 쓴 서제리 마을 이야기도 함께 보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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