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제가 <한빛국가유산TV> 기획 영상으로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웠다는 18개 서당을 하나하나 찾아가 보기로 하였답니다.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공부를 해가며 찾아가서 답사를 하고 촬영을 하여 유튜브 영상으로 담아 소개를 했습니다.
영상과 함께 티스토리에 우리가 찾아낸 서당 한 곳 한 곳을 글로 담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당 11곳과 터만 남은 서당 3곳, 그리고 정확하게 어디인지 어떤 자료도 없고 정보도 없어 알 수 없는 곳이 4곳이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아래 링크로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IoCr0lCvpmQZWg42KjmsrGjSC4MTRdRu
상주 목사 신잠 선생께서 세운 서당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바로 상주시 외서면 관동개곡길 94-12에 있는 <송암서당(松巖書堂)>이야기랍니다.
송암서당은 사실 지난해 3월 끄트머리에 티스토리로 소개를 한 적이 있는 곳이지요.
이번에 18개 서당을 찾는 가운데에 다시 한번 찾아가서 더 꼼꼼하게 보고 왔지요.
송암서당이 있는 마을은 '안깃골' 북쪽 관동리 마을 가장 끝자락 산밑에 자리 잡은 곳에 있답니다.
서당 건물은 한 채인데 바깥으로 담장을 빙 둘러놓고 가운데에 일각문을 하나 둔 모습입니다.
계단을 올라서면 일각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일각문 편액에는 숭덕문(崇德門)이라 적혀 있습니다.
빗장은 걸려있지만 자물쇠는 열려있습니다. 열쇠도 달려있는 채로 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찾아오는 발걸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송암서당은 신잠 목사께서 처음 '서당골'이라는 곳에 세웠다는데 정확하게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더군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06년(선조 39)에 다시 세우고, 그 뒤 1856년에 중수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자리로 옮겨온 건 1946년이었다고 합니다. 해방되고 바로 다음 해이네요.
앞면 3칸, 옆면 2칸인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입니다.
지금 보는 이 건물은 지난 2017년에 새로 고쳐 지은 거랍니다. 상량문에 2017년(丁酉) 11월 22일에 상량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송암서당(松巖書堂)이라 쓴 편액을 걸고 있습니다.
새로 고쳐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으니 건물이 모두 깨끗합니다.
예전에 우리가 서당을 둘러보고 있을 때, 후손인 어르신이 오셔서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상주시에서 3억을 들여 새로 고쳐지었다고 했어요.
또 거기에 따른 세금을 한 해에 10만 원쯤 낸다고도 했고요.
뜨거운 한여름이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여기도 어김없이 잡풀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일각문 너머로는 대숲이 있네요.
송암서당 오른쪽 담장 너머로 보는 과수원
서당 뒤쪽 모습은 이렇습니다.
예전에 후손이던 정재춘 어르신(23년 당시 77세)께 들은 이야기로는 이 송암서당이 7개 문중에서 함께 꾸리고 있다고 하셨지요.
그중에 진양(진주) 정 씨 후손이라고 하셨고요.
그때 정기룡 장군과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선생과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선생의 후손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모두 상주에서 이름난 분들이지요.
정기룡 장군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 할 만큼 뛰어난 장군이었고요. 상주 땅에는 정기룡 장군의 유적이 꽤나 많이 있습니다.
우복 정경세 선생은 서애 류성룡의 문하인 대학자이면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나아가 싸운 분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예조판서,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상주 땅뿐 아니라 온 나라에서 매우 이름을 떨친 분이지요.
또 입재 정종로 선생 또한 우복 선생의 6대손인데 조선 후기에, 광릉참봉, 의금부도사, 사포서별제 등을 역임하였으며, 『입재집』, 『소대명신언행록』 등을 저술하며 영남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인 분이랍니다.
그때 그 어르신께 일곱 문중이 어디 어디인지 자세하게 여쭤보지 못한 게 무척 아쉽네요.
처음 갔을 때에 이 송암서당에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우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정말 서당에 얽힌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그날 그 후손 어르신을 만난 덕분에 이렇게라도 알고 있는 게 참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번에 영상을 만들면서 다시 꼼꼼하게 자료를 찾아보고 했지만 그 어디에도 서당의 내력을 알 수 있는 건 없더라고요.
그저 아주 짤막하게 어디에 있고 언제 처음 세웠고 또 중수를 했는지까지만 나와 있더라고요.
송암서당은 한 해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다만 다시 찾아간 때가 한여름 8월 초라서 잡풀이 더 많이 자라 있다는 것만 빼고요.
그래도 강아지풀이라서 손끝에 닿는 촉감이 참 좋아서 한참 만지며 놀았네요.
송암서당은 가운데 한 칸을 대청으로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는데 오른쪽은 옆면 두 칸을 모두 방으로 했고 왼쪽은 한 칸 반만 방이고 나머지 반칸은 대청 툇마루와 이어지도록 했더군요.
그래도 이만하면 깨끗한 서당입니다. 나름대로 관리도 잘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마루 밑 아궁이
송암서당 앞 대나무숲입니다.
선비들의 절개를 살짝 엿볼 수 있네요.
★ 지난 2023년 3월에 처음 송암서당을 다녀왔을 때 이야기를 쓴 티스토리 글입니다. 함께 참고하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300
오늘은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 마을에 있는 <송암서당> 이야기였고요. 이다음 여섯 번째 이야기는 이번 서당 나들이 가운데에 가장 가슴 아프고 아렸던 서당 <하곡서당>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제가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서 소개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WoB1bZWTxc?si=Dtxdvuoij3UqRav9
상주시 외서면 관동리 407
https://sunnyhanbit.tistory.com/368
https://sunnyhanbit.tistory.com/369
https://sunnyhanbit.tistory.com/370
https://sunnyhanbit.tistory.com/372
https://sunnyhanbit.tistory.com/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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