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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김천 조마면 정일 부부 충정각(정려각)] 부부의 애틋한 죽음도 놀랍고 충성스런 노비의 죽음도 숭고하다!

by 한빛(hanbit)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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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조마면 정일 부부 충정각(정려각)

이곳이 도대체 어딜까?

자세한 정보가 없다 보니, 정확한 위치도 모르고 대략 그 언저리겠거니~ 하면서 덮어놓고 찾아갔어요.

여기는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도암 마을이랍니다.

 

그나마 주소가 하나 있어 거기로 찾아갔지요. 지도로 보니, 바로 위 사진에 있는 자동차들이 있는 자리로 나오더군요.

그런데 여기에 오니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찾는 건 바로 어떤 부부의 애틋한 사연이 있는 정려각이랍니다.

하는 수 없이 이 마을을 구석구석 찾아다녀볼까 합니다.

아~! 저긴가?

길 모퉁이 끝을 돌아나오니 옛집 하나가 보입니다. 그 앞에 <충효당>이란 큰 빗돌이 있네요.

그러고 보니, 여기는 재실이군요. <김해 김씨 판서공파> 재실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여기도 우리가 찾는 건 없군요.

그런데 이 재실 앞에 때마침 마을 어르신이 밭일을 하고 계시네요.

여쭈었지요.

 

"엄니~! 이 마을에 정려각이 있다는데 혹시 어디에 있는 지 아세요?

어머나~! 고맙게도 우리가 찾던 그 정려각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어요. 밭에서 일을 하다가 바로 나와서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셨답니다. 알고 보니, 이 엄니가 바로 그 정려각의 주인공의 집안 후손이라고 하시더군요. 덕분에 더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갔답니다.

우리가 찾던 정려각은 산길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답니다.

여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찾아 헤맸던 <정일 부부 충정각(정려각)>입니다. 

 

영일 사람이던 진사 정일 선생은 이름난 효자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슬픔에 3년동안 죽만 먹으며 애도하며 시묘살이를 했지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일은 움직일 수도 없이 앓고 있었는데, 왜병이 몰려왔을 때 부인 덕산 윤씨가 혼자 남편을 이불에 싸서 엎고 몸을 숨겨 왜병을 다른 데로 유인하였답니다.

 

“당신만이라도 사셔야 합니다.”라고 하고 자신은 도암 연못에 몸을 던져 정절을 보전하였다.

 

정일 부부 정려각은 이렇게 문이 열려 있었어요. 참 고맙더군요.

정려각 둘레도 나름대로 깔끔했답니다. 풀이 생각보다 많이 자라지는 않았더군요. 누군가 가끔이라도 손을 보는 듯했답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정려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작은 빗돌 두 개랍니다.

정려각 앞 양쪽에 있는 작은 빗돌입니다.

이건 바로 정일 선생 부부를 모시던 두 종을 기리는 빗돌이랍니다.

정일 부부의 충성스러운 종 막개와 계화 부부의 빗돌

왼쪽과 오른쪽 어느 것이 어떤 분의 것인 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걸 알려주는 안내글은 없었거든요.

이 빗돌의 주인공은 정일 선생 부부를 모시던 노비 부부의 빗돌이랍니다.

 

도암 연못에 몸을 던진 윤씨 부인을 보고 그의 종 막개(莫介)도

 

“내 어찌 주인을 따르지 않으랴.”

하며 못으로 뛰어들어 주인의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다. 아내의 희생으로 살아난 정일 선생은 임진년 겨울에 결국 왜병에게 잡혀 가게 되었는데,

 

“내 이 나라 백성이 되어 어찌 너희를 따를 수 있겠느냐.”

고 준엄히 꾸짖으니 적이 노하여 정일을 칼로 베었다고 합니다. 그때 종 계화(戒花)는 정일의 세 살 난 아들을 업고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 그때 정일 부부의 나이가 36살이었다고 하네요.

 

주인을 뒤따라 죽은 종 막개와 주인의 아들 목숨을 구한 계화는 부부라고 하네요. 정말 충성스러운 종이군요.

 

천행으로 목숨을 건진 정일의 아들은 외가에서 계화의 지극한 보호로 훌륭히 성장하여 대를 이었다. 남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부와 충절을 지킨 정일, 주인을 위해 몸 바친 노비를 함께 삼강세가(三綱世家)로 칭송하고, 1635년(인조 13) 정일은 지평(持平)에 추증되었으며 정려가 내려졌다. 부인 덕산 윤씨의 정려는 1707년(숙종 33)에 내려졌다.

 ‘효열 송암 처사 성균관 진사 오천정공 지려(孝烈松岩處士成均館進士烏天鄭公之閭)’

왼쪽은  1635년(인조 13)에 정일 선생한테 내려진 정려이고요.

‘절부 성균관 진사 효열 정일 처의인 덕산 윤씨 지려(節婦成均館進士孝烈鄭鎰妻宜人德山尹氏之閭)’

오른쪽은 1707년(숙종 33) 그의 부인인 덕산 윤 씨한테 내려진 정려입니다.

정일 부부 충정각 앞에서 내려다보는 도암 마을 들판입니다. 굉장히 풍요로워 보이네요.

정려각은 이렇게 바깥으로 담장을 따로 둘렀네요.

정려각 뒤쪽으로는 담장이 무너져 있어서 그게 좀 아쉽네요.

정려각 옆에서 자라고 있는 튼실한 호박이 매우 탐스럽네요.

하하하! 쌍둥이 호박이에요. 무척 먹음직스럽기도 합니다. ^^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언덕 위에 정일 부부 충정각(정려각)이 있습니다.

정려각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정일 부부의 효심과 애틋한 죽음, 그리고 그의 종 막개와 계화 부부의 삶까지도 돌아볼 수 있었네요. 

 

이게 다 자세한 위치를 몰라서 헤맸는데, 자세하게 알려주신 저 어르신 덕분에 잘 둘러볼 수 있었네요. 이 글을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엄니~! 고마워요. ^^"

 

제가 둘러본 정일 부부 정려각의 정확한 주소는요.

 

경북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606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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