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익산 왕궁리 유적지 & 백제 왕궁박물관] 백제 시대에 정화조를 갖춘 화장실이 있었다고요?

by 한빛(hanbit) 2022. 11. 2.
728x90
반응형

익산 왕궁리 유적지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유적지가 있습니다. 백제 말기, 제30대 무왕(재위 600~641년)이 사비(부여) 시대, 두 번째 백제의 수도였던 곳이랍니다. 

백제 왕궁이었던 익산!

지난 1989년에 발굴조사를 시작했답니다. 그 결과 이곳이 백제의 왕궁이었고 궁궐 담장, 정원, 후원, 화장실, 공방 등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왕궁리 유적지가 있는 이곳, 예전에는 <왕궁리 유적전시관>이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제왕궁박물관>으로 새롭게 거듭났네요.

이 왕궁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이 기왓장에 쓴 글자 때문에 이곳이 진짜 백제 왕궁이 있었던 수도였다는 걸 증명해준다고 합니다.

수부(首府)는 왕실과 중앙 관청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바로 이곳 익산이 백제 말기의 수도라는 증거가 되겠지요.

백제 무왕

백제 말기, 무왕(재위 600~641년) 때에 세운 왕궁이랍니다.

이건 왕궁의 <와적기단>인데요.

와적기단은 지붕에 올렸던 기왓장을 재활용해서 쌓은 기단을 말하는 거랍니다.

부여와 익산의 백제 도성 관련 유적과 정림사지, 군수리사지 등 사찰 유적, 또 경주와 7~8세기 일본 사찰 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와적기단이 있어 백제와 신라, 일본과의 문화 교류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왕궁리 유적지 와적기단

이게 바로 그 와적기단이랍니다.

백제 왕궁의 담장

백제 사람들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왕궁 곳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발굴된 와적기단

익산 왕궁리 유적은 길고 네모 반듯한 모양이라는데 축구장 크기보다 더 큰 듯했어요.

왕이 나랏일을 보는 공간과 왕과 그 가족들의 휴식 공간을 따로 두었다고 합니다. 가장 북쪽에는 정원과 후원이 있던 흔적이 발견되었고요. 또 궁에 물을 댈 수 있는 수로가 U자로 있었다고 하네요.

왕궁의 공방

또 왕실에서 쓰이는 귀중품을 전문으로 만들었던 공방 터도 확인이 되었답니다. 불에 탄 흙, 숫돌, 또 금속과 유리 원료를 녹이는 도가니 300여 점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왕궁이 있던 이곳은 나중에 백제의 사찰이 들어서게 됩니다.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국보 제289호)

탑은 절집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곳인데, 익산 미륵사지에 있는 석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 석탑입니다.

바로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입니다.

이 왕궁리 오층석탑도 1965년~1966년에 해체와 보수를 했는데, 그때 1층 지붕돌과 기단에서 금강경판 19장, 금동제 사리함, 사리병 등 사리장엄구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 발굴된 유물들입니다.

왕궁리 유적지는 발굴조사를 하면서 발견된 건물터가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당대의 최신 위생시설을 갖춘 화장실 터도 있었다네요. 예전에 갔을 때 발굴조사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본 기억으로는 화장실 아래로 구덩이가 있고 그 구덩이 안에 오수가 모였다가 수로를 통해서 궁 밖으로 빠져나가게끔 되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위 그림처럼 화장실 아래로 구덩이를 파놓았기 때문에 거기에 모든 오물이 모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높이로 오물이 차면, 자연스럽게 수로를 따라 흘러나가 궁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겁니다. 오늘날 정화조처럼 말이지요. 당시로서는 굉장히 최첨단이자 위생적인 시설이었지요.

가운데에 저 긴 막대기가 무얼까요?

하하하~!!! 저건 바로 큰일 보고 난 뒤에 뒤처리를 하는 막대기랍니다. 이 왕궁리 유적지에서 6개가 나왔는데, 오늘날 화장지처럼 뒤처리를 하고 저걸 다시 깨끗하게 씻어서 재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리고 그 옆 길쭉한 토기는 바로 '변기모양 토기'입니다.

오층석탑 옆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가 무척 인상 깊네요.

이렇게 돋우어놓은 곳이 모두 건물 터랍니다.

익산 왕궁리 유적지 금당터

오층석탑 뒤쪽에는 금당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백제 시대에는 보통 탑과 금당(사찰의 본존불을 모신 법당)이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탑이 하나면, 금당도 하나, 탑이 세 개이면 금당도 셋이라는 말이지요.(익산 미륵사지는 3 탑 3 금당이었다고 합니다.)

백제의 왕도가 있던 익산!

이 왕궁리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익산이 백제의 수도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백제 말기 지금의 부여인 사비 시대에 두 번째 수도를 익산에 세웠다는 걸 확신시켜주는 왕궁리 유적지는 <세계유산 백제 역사 유적지구>에도 올랐습니다. 매우 뜻깊은 일이지요.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