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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상주 수암종택] 서애 류성룡의 아들이 지은 옛집, 국가민속문화재로 승격되다!

by 한빛(hanbit) 202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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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수암종택 안채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 마을에는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셋째 아들 수암 류진(柳袗, 1582~1635) 선생이 터를 잡고 지은 종택이 있답니다. 바로 <상주 수암종택>입니다.

아주 오래전, 15~6 년 전에 자전거를 탈 때 여기에 와 봤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잘 기억에 나지는 않았는데 와서 보니, 바로 알겠네요.

풍산 류씨 우천파 종택으로 경북 민속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곳이 지난 8월 22일에 <국가 민속문화재 제303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역사 문화재로 값어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솟을삼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오른쪽으로는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옛집에서 보는 정원, 참 좋네요.

수암종택 사랑채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은 수암종택의 사랑채입니다.

사랑채에는 쪽마루를 두었군요.

사랑방에는 우천세가(愚川世家)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풍산 류씨 우천파 종택이라는 뜻이겠지요.

수암종택 녹사청

위 건물은 솟을삼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데 <녹사청>이라고 합니다.

이 녹사청은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낸 매산 류후조(1798~1876)가 1872년 봉조하(奉朝賀)를 제수받은 후 녹봉을 지고 오는 관리들을 맞이하거나 묵게 하는 쓰임으로 지은 집입니다.

 

매산 류후조 선생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8대손인데, 매우 청렴결백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벼슬에서 퇴직한 뒤에도 나라에서 <봉조하>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합니다. 봉조하(奉朝賀)는 70세 내외 2품관 이상의 퇴직관료에게 특별히 내린 벼슬입니다. 조선시대에 이 벼슬에 제수된 분이 딱 68명이라고 하네요.

 

수암종택 녹사청은 봉조하에 제수된 매산 류후조 선생의 녹봉(월급)을 지고 오는 관리들이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한 집이랍니다. 그 옛날에는 월급을 쌀이나 보리, 명주, 베, 돈 따위로 주었다고 하더니 월급을 이고 지고 가져왔겠네요. 그러니 먼 길 떠나온 사람들 하룻밤 쉬어 보내야 했겠네요. 

녹사청 뒤쪽으로는 텃밭이 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잘 가꾸고 있네요.

텃밭 옆에 있는 장독대

우와~!!! 이 맷돌은 언제부터 쓰여왔던 걸까요?

보기에도 꽤 오래되어 보이네요.

녹사청 뒷모습

장독대 옆으로 초가 건물이 있습니다.

방앗간으로도 썼다고 하던데 지금은 농기구나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을 보관하고 있네요.

흙돌담 사이로 지은 초가가 매우 정겹네요.

오늘은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더니, 덕분에 옛집 분위기가 더욱 근사합니다.

자, 이제 안채로 들어가 볼까요?

아까 본 사랑채인데요.

오른쪽 세 칸은 방으로 되어 있고요. 왼쪽으로 3칸은 사랑채 부엌과 안채로 드나드는 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돌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다가 올린 집인데 마치 누마루 같은 느낌이 듭니다. 

참 잘 지은 건물이네요.

이 문으로 안채로 들어갑니다.

예전에 제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에는 안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방해할까 걱정되어 바깥에 있는 녹사청과 사랑채, 그리고 저 초가만 보고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도 혹시나 몰라 조심스레 들여다봤습니다.

아하, 사랑채 부엌이 있다더니,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옆에는 부엌이네요.

수암종택 안채

안채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사람이 살던 흔적은 보이기는 한데 아무리 봐도 지금 현재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듯합니다. 아마도 집을 관리하는 분이 한 번씩 다녀가는 듯해 보입니다.

안채와 사랑채가 통으로 이어져있는 'ㅁ' 자 형태입니다. 

바깥 사랑채에서는 안채를 절대로 볼 수 없도록 만들었네요.

그리고 안채에서는 하늘만 볼 수 있네요.

안채는 툇마루와 쪽마루가 함께 이어져있어 마루를 통해서 모든 방으로 다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네요.

참, 툇마루와 쪽마루 차이를 아세요?

수암종택 안채 사진을 보면, 왼쪽에는 기둥(평주)이 있고 그 안에 마루가 있지요? 이런 마루를 바로 '툇마루'라고 합니다.

반대로 '쪽마루'는 오른쪽에 보이는 것처럼 기둥(평주)이 없고 따로 내놓은 마루를 말하는 거랍니다.

안채에는 이강정사(二江精舍)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네요.

수암종택을 우천세가, 또는 이강정사라고 한답니다.

이 집이 있는 자리에는 낙동강과 위천이 합류하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길지라고 하네요. 아마도 그런 뜻이 담겨있는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안채 안쪽에서 아까 들어온 안채 출입문을 봅니다.

안채에서도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바깥에서도 안채를 들여다볼 수 없답니다. 

안채 마당 좀 보세요.

징검다리가 놓여있습니다.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신발을 버리기 십상이지요. 징검다리를 놓아서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했네요.

그런데 땅바닥에서 자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하하하~!!! 바로 와송입니다.

와송은 보통 기와지붕 위에 자라는 건데 이렇게 땅바닥에서 싹을 틔워 꽃도 피었네요.

사랑채 쪽에서 바라보는 안채의 모습인데요. 쪽마루를 통해서 신을 신지 않고도 건너 다닐 수 있도록 했네요.

안채 정지문(부엌문)입니다.

여기도 아래쪽으로 두 군데에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작은 창을 두었네요.

부엌 옆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광 같아 보이네요.

수암종택에 지금은 사람이 살고있지 않는 건 확실하네요. 덕분에 안채까지 아주 꼼꼼하게 구경할 수 있었네요.

다시 바깥으로 나왔어요.

잠깐 저 위에 본문에서 이야기 한 거 복습해볼까요?

사랑채 바깥쪽에 있는 저 마루는 툇마루일까요? 아니면 쪽마루일까요?

 

 

 

하하하~!!!

네. 기둥이 없이 바깥으로 따로 들어낸 마루는 바로 '쪽마루'랍니다.

이젠 확실히 아시겠지요?

뭐 아무려면 어떻겠냐만은 이건 간단하니까 알고 있으면 나중에 옛집에 갔을 때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녹사청은 완전한 'ㄱ'자 건물이네요. 

흙돌담이 참 정겹습니다. 

이번에는 사당으로 갑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협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안쪽에도 흙돌담을 쌓고 그 위로 기와를 얹었네요. 매우 아름답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면 높다란 곳에 내삼문이 보입니다. 여기도 왼쪽에 작은 쪽문을 두어 열어놓았더군요.

수암종택 사당은 '불천위 사당'입니다.

'불천위'는 덕망이 높고, 나라에 큰 공로를 세운 인물을 영원히 사당에 모시도록 나라에서 허가한 신위를 말하는 거랍니다. 

바로 가장 처음 이곳에 터를 잡으셨던 서애 류성룡 선생의 셋째 아드님인 수암 류진 선생을 배향하는 사당입니다.

사당에는 단청을 칠하지 않고 매우 소박한 모습입니다.

 

풍산 류씨 우천파 종택인 이 수암종택에는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나왔는데, 앞서 소개했던 수암 류진 선생을 비롯하여 청렴결백하게 살다 가신 수암 선생의 7대손인 매산 류후조 선생, 그리고 11대손인 류우국(柳佑國, 1895~1928) 선생은 1920년 상해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였고, 1923년 조선의열단에서 김지섭 등과 함께 활동하였으며, 북경에서 ‘혁명도보’, ‘혈조’와 같은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뒤, 1926년 독립운동 자금 조달 차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중 1928년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고,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 되었다고 합니다.

수암종택 담장

안개에 싸인 황금들판도 매우 아름답네요.

안채 뒷모습

오늘은 지난 8월에 <국가 민속문화재>로 승격되어 앞으로 더욱더 잘 보존되고 관리가 될 수암종택을 둘러봤습니다.

우리가 옛집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르신 서너 분이 차에서 내리더군요. 처음엔 우리처럼 구경하러 오신 분들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암종택을 깨끗하게 청소하실 분들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궁금해서 여쭤봤어요.)

공공근로하시는 분들이라고 했어요. 나라의 귀한 문화재로 더 높이 올랐으니 한층 더 깨끗하게 관리가 되겠네요.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

 

★ 상주 수암종택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감상하세요. ★

 

https://youtu.be/QIBehV-yF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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