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현감 한강 정구 선생이 세운 8개 서당
앞서 창녕 팔락정 이야기에서 소개한 대로 창녕에는 조선 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鄭逑, 1543년 7월 9일~1620년 1월 5일) 선생이 창녕 현감으로 있을 때 지역의 미풍양속과 인재들을 길러내려고 서당 8곳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것을 창녕 8제(八齊)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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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사라졌다! 한강 정구 선생이 세웠다는 8개 서당 가운데 하나인데 ... [창녕 팔락정]
한강 정구와 창녕 8제(八齊) 창녕에 온 148 명이나 되는 현감들 가운데에 가장 뛰어난 현감으로 뽑히는 분이 바로 한강 정구(鄭逑, 1543년 7월 9일~1620년 1월 5일) 선생이었다고 합니다.그만큼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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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8제(八齊)는 술정 · 옥천정 · 만진정 · 물계정 · 팔락정, 관산서당 · 백암정 · 부용정 이렇게 8곳이랍니다.
지금 현재 남아있는 곳은 딱 3곳인데 관산서당, 백암정, 부용정 이렇게 3곳만 남았다고 합니다.(이번에 창녕을 다녀와서 알게 되었네요. )
그 가운데 한 곳이던 팔락정을 보러 갔는데 아뿔싸! 안타깝게도 지난해(2024년)에 무너지고 사라진 채 빈 터만 보고 돌아왔었지요.
아쉬운 마음 뒤로 하고 이번에는 창녕 관산서당을 찾아갔습니다.
제발 문 좀 열어 놓으면 안 될까요?
관산서당(冠山書堂)은 한강 정구 선생이 서당 8곳 가운데 하나인 <관산재>가 있던 자리에다가 세운 건물이랍니다.
또 지금은 서당 편액을 걸었지만, 한강 정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기리는 서원이었고 창녕의 하나뿐인 사액서원이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서당인데도 외삼문, 내삼문, 동재, 서재, 강당과 사당까지 다 갖춘 꽤 크고 서원의 구조와 똑같았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이 굳게 닫혀 있더라고요.
관산서당은 앞에는 강학 공간인 강당이 있고 뒤쪽은 제향 공간인 사당이 있는 전학 후묘 구조로 되어 있답니다.
바깥에 빙 둘러 흙돌담으로 쌓고 그 위에 기와를 얹은 담장이 있습니다.
그나마 담장이 그리 높지 않아 볼 수 있으려나? 하고 다가갔는데 이궁..................... 이번에는 앞에 수로가 가로막고 있더군요.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답니다.
혹시나 옆으로 좁은 문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둘러봤는데 그것도 없었어요. 겉만 빙빙 돌면서 보고 사진 몇 컷만 찍고 왔네요.
우리 문화유산으로 지정까지 된 서당인데 찾아오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문 좀 열어 놓으면 안 될까요?
이렇게나 꾹꾹 닫아 놓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면서 늘 하는 이야기지만 건물도 사람냄새 맡고 사람의 온기를 먹으며 살아야 더 오래오래 가는 법이라고요.
앞서 보았던 팔락정이 무너진 것도 굉장히 가슴 아픈 일인데... 아무튼 네. 그렇습니다.
문을 열어 놓으면 관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네.
멀리서 찾아간 이들은 맥 빠지고 속상하답니다.
서당 옆에 대나무가 아주 울창하더군요.
그런데 건물이 매우 남다릅니다.
강당 뒤쪽으로 사당이 있는데 기단을 굉장히 높다랗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다가 건물을 세웠네요.
그 위엄이 어마어마합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도 겉에서 보기에 이층으로 된 기단을 높게 쌓고 계단을 놓았네요.
관산서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어서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서당 건물은 정말 여느 곳과 달라서 볼거리가 매우 많은 곳인데 속상하네요.
그래서 글도 안 쓰려고 했고, 영상도 아예 촬영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랬는데...
헐~! 그런데 이곳에 아주 놀라운 숨은 이야기가 있더군요.
서원철폐령에 따라 묻은(철원매주) 한강 정구의 신주가 처음으로 발굴되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1868년과 1871년 서원철폐령을 내렸지요.
온 나라에 있는 서원들을 사액 서원이거나 미사액 서원이거나 할 것 없이 1700여 곳을 47개만 남겨놓고 모두 없애버렸지요.
그런데 여기 관산서당에서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발굴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릴 때에 ‘철원매주(撤院埋主 - 서원을 철폐하고 사당에 모신 위패인 신주를 묻어라)하라’고 명을 함께 내렸다고 합니다. 이 철원매주의 실체가 처음으로 발굴된 곳이 바로 여기 관산서당이라는 게지요.
1871년에 관산서원이었는데 한강 정구 선생을 기려 선생이 돌아가신 바로 그 해(1620년 광해군 12)에 세운 창녕에 하나뿐인 사액서원이었습니다.
지난 2009년에 관산서당의 사당을 복원하려고 터파기 공사를 했답니다.
사당이 있던 자리의 한가운데에서 그때 바로 서원철폐령 때 묻은 신주가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위에 있는 2009년 7월 21일 자 연합뉴스 사진에 보면 관산서당 강당 뒤쪽에 땅에서 발견된 옹기가 있습니다.
마치 옹관처럼 항아리를 맞붙여 세우고 옹기 둘레에는 기와로 겹겹이 감싸고 흙으로 단단하게 덮어서 봉안을 한 거라고 합니다. 이 옹기 안에서 옻칠을 한 나무 위패 1점을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한강 정구 선생의 신주(위패)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실체가 되는 유물이 발굴되었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를 알고 나니, 문이 굳게 잠겨있어 제대로 못 보고 온 게 내내 아쉽고 속상하네요.
우리가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까닭은 이런 자체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그곳에 담긴 역사나 인물을 돌아보려는 까닭이지요.
또 그 이야기들을 오늘날에 견줘보며 당시의 시대상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많은 배움과 깨달음도 얻게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문 좀 열어둡시다!
창녕 관산서당 -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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