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정구와 창녕 8제(八齊)
창녕에 온 148 명이나 되는 현감들 가운데에 가장 뛰어난 현감으로 뽑히는 분이 바로 한강 정구(鄭逑, 1543년 7월 9일~1620년 1월 5일)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백성들한테 선정을 베푼 분이라서 백성들이 삶터를 가꾸면서 살아가는데 즐거웠고 풍속이나 문화 또한 아름답게 바로잡는 일을 많이 하셨다고 하네요.

사실은 오늘 창녕에 있는 관산서당을 보러 갔는데 애고..............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쪽을 구경할 수 없어 겉만 돌다가 사진 몇 컷 남기고 돌아섰네요.
이 관산서당도 한강 정구 선생이 창녕 현감으로 있을 때에 서당 8곳을 정하여(세우기도 하고 있던 곳을 정하기도 하여) 창녕 8제(八齊)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창녕 8제(八齊)는 술정 · 옥천정 · 만진정 · 물계정 · 팔락정, 관산서당 · 백암정 · 부용정 이렇게 8곳이랍니다.
헉! 사라졌다! 이럴 수가!

관산서당은 문이 닫혀서 겉핥기만 하고 돌아서서 유어면 미구리 마을에 있는 정자를 보러 갑니다. 한강 정구 선생이 8개의 서당을 정하여 '흥학교민(興學敎民)' 그러니까 지역 백성들을 교화하고 인재양성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팔락정'이 있는 유어면 미구리 마을에 왔습니다.

창녕군 유어면 미구리 491-2
팔락정이 있는 곳입니다.

키가 큰 회화나무가 있는 저 언덕이 바로 팔락정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들머리 담장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네요.

이런.......................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바로 앞에 팔락정 정자를 알리는 안내판은 그대로 있네요.

선조 13년(1580) 한강 정구 창녕 현감이 흥학을 위하여 본 정을 신창(新創)하였다
이후 철종 3년(1852년) 지방 유림들이 갹금(醵金)으로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헐~! 그런데 도대체 팔락정은 어디로 갔단 말인 가요?
안내판이 있는 걸 보면 틀림없이 여기가 맞는데 말이에요.
빙 둘러 담장만 남아있고 팔락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세상에나! 무너져버렸군요.
초석(주춧돌)으로 쓴 것인지 기단으로 쓴 것인지 커다란 돌무더기가 한데 모여 있고요.

커다란 나무 밑둥치만 남아있고 불에 탄 흔적만 있습니다.

둘레에 은행 열매가 많은 것으로 보아 이 나무는 틀림없이 은행나무입니다.
그런데 불에 탄 흔적은 뭘까?
불이 났었나?

은행 열매...
은행 열매가 이렇게 남아있는 걸 보면, 아마 지난가을에 떨어진 게 아닐까 싶은데 은행나무 또한 싹둑 베어버렸네요.
은행나무는 양쪽에 한 그루씩 베어낸 그루터기만 남아 있더군요.

이 키 큰 나무는 회화나무입니다.

나뭇가지 뻗어나간 게 이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담장 너머에는 어느 집 정원 너머로 팔락늪이 보입니다.
팔락정(八樂亭)은 정자 둘레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8경으로 선정하여 그 풍경을 즐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저 너머 보이는 팔락늪도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 여덟 가지 즐거움은 이렇다고 합니다.
맹호도강(猛虎渡江) - 정자 앞 낙동강 건너 지형이 범이 건너오는 듯한 형세를 보는 즐거움
원포귀범(遠浦歸帆) 강 멀리서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를 보는 즐거움.
평사낙안(平沙落雁) 평평한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보는 즐거움.
북지홍련(北池紅蓮) 정자 북쪽 팔락 호수에 피어 있는 홍련을 보는 즐거움.
역수십리(逆水十里) 정자 앞개울물이 강의 흐름과 반대로 십 리를 흐르는 것을 보는 즐거움.
전정괴수(前庭槐樹) 정자 앞뜰의 회화나무를 보는 즐거움.
후원오죽(後園烏竹) 정자 후원에 있는 오죽을 보는 즐거움.
서교황맥(西郊黃麥) 정자 앞 서쪽들에 보리가 누렇게 익은 풍경을 보는 즐거움.

그런데 어쩌다가 정자의 아름다운 풍경과 즐거움을 8개씩이나 즐겼다는 이곳이 빈 터만 남은 채 사라졌을까요?


그 까닭을 급하게 찾아보니, 올해(2025년) 2월 21일에 쓴 기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팔락정에 찾아간 날이 23일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틀 앞서 쓴 이런 뉴스가 있었네요.

애고...... 안타깝습니다.
팔락정 지붕 한쪽이 저렇게 무너졌던 거였군요. 기가 막히네요.
아래는 2025년 2월 21일 자 비사벌 뉴스 기사입니다. 참고하세요.
http://www.gnn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403
「창녕」 한강 정구 정문목 현감 얼이 깃든 팔락정 복원해야 - 비사벌뉴스
1580(선조 13년) 한강 정문목공이 창녕현감으로 재직 시 풍속을 아름답게 하고 현민 교육에 힘쓰는 흥학교민(興學敎民)을 목표로 삼은 8제(서...
www.gnnl.co.kr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팔락정이 최근에 무너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인지는 나와있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지난해 2024년 5월에 다녀온 분의 글 속에 나오는 팔락정 모습이 마지막이더군요.
아까 저기 위에서 베어낸 은행나무 그루터기 둘레에 은행 열매가 많이 떨어진 걸 보면, 나무도 지난가을까지는 잘 지낸 게 맞는 것 같고요.

애고........... 한 발 늦었네요.
세월의 풍상에 무너지고 만 팔락정!
기사에 따르면 지역 유림들과 문중에서 복원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그 뜻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도 있더군요.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언제 이렇게 무너졌는지...

팔락정과 함께 오랜 세월 지켜왔을 은행나무 그루터기는 왜 불에 탄 흔적이 있는 건지...

궁금증만 가득 안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짓누르네요.

아쉬운 마음 뒤로 하며 휑하니 남은 빈 터만 오랫동안 눈에 담고 돌아왔답니다.
부디 유림들과 지역민들의 뜻이 한데 잘 모아져 잘 복원되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바라며 함께 기원합니다.
아! 위에서 소개한 창녕 8제(八齊) 가운데에 술정 · 옥천정 · 만진정 · 물계정과 지금 소개한 팔락정은 무너져버렸고 남아있는 곳이 관산서당 · 백암정 · 부용정 이렇게 3곳이 있다고 합니다.
관산서당은 문이 잠겨 못 둘러봤고 이다음에 백암정과 부용정도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창녕군 유어면 미구리 491-2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제작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
https://youtu.be/8wowDqdFMIk?si=LsH9BrGZW8I9T2pf
★ 덧붙이는 글 (3월 14일) 글을 쓴 뒤, 오늘(3월14일) 창녕군청 국가유산 담당자와 전화 통화를 해서 알아봤습니다. 팔락정은 안타깝게도 지난해 태풍 때 피해를 입어 무너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해체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복원 계획은 있느냐고 물었더니, "현재까지는 복원 계획은 없고 차후에 장기적으로 검토할 생각입니다." 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태풍 피해를 입기 전부터 지붕 일부가 무너졌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그건 비지정 문화유산이라서 마을에서 관리하는 거라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많이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잘 복원해서 국가유산으로 지정도 하고 제대로 관리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발 문 좀 열어 놓으면 안 될까요? 서원철폐령의 실체가 처음으로 발굴된 곳이라는데... [창녕 관산서당] (36) | 2025.03.13 |
---|---|
머리 풀어헤치고 무릎 꿇은 남장 여인은 도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문랑 효랑의 조선시대 묘지소송, 김천 이효각과 청현사] (39) | 2025.03.11 |
온집안이 임진왜란 의병이었다! [의병창의마을 배덕문 의병장, 배설장군, 도남재, 도남서당, 도천서원, 등암영각, 도남리배롱나무] (30) | 2025.03.02 |
'시장이 반찬이라, 기다리게 하여 나물밥을 대접했다'는 청렴 정신[홍성 최영장군 사당] (18) | 2025.02.25 |
여기가 정말 성삼문 선생이 태어난 집일까? [홍성 노은리 고택 옛 엄찬고택] (40) | 2025.02.20 |
한빛(hanbit)님의
글이 좋았다면 응원을 보내주세요!
이 글이 도움이 됐다면, 응원 댓글을 써보세요. 블로거에게 지급되는 응원금은 새로운 창작의 큰 힘이 됩니다.
응원 댓글은 만 14세 이상 카카오계정 이용자라면 누구나 편하게 작성, 결제할 수 있습니다.
글 본문, 댓글 목록 등을 통해 응원한 팬과 응원 댓글, 응원금을 강조해 보여줍니다.
응원금은 앱에서는 인앱결제, 웹에서는 카카오페이 및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