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온집안이 임진왜란 의병이었다! [의병창의마을 배덕문 의병장, 배설장군, 도남재, 도남서당, 도천서원, 등암영각, 도남리배롱나무]

by 한빛(hanbit) 2025. 3. 2.
728x90
반응형

성주군 대가면 도남2리 마을 왕버들나무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자리섬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의병창의마을'이랍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들이 모두 임진왜란 때 의병이 되었다고 하면 믿어지십니까?

오늘은 이 분들의 의롭고 충절어린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도남리 뒷개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는 이렇게 넓은 터에 예사롭지 않은 옛 집들이 있습니다.

도남리 자리섬마을은 성주 의병 창의마을입니다.

창의문(倡義門)이라 쓴 홍살문을 지나 도남재로 들어갑니다.

들머리에 재미난 표정으로 웃으며 맞이하는 항아리들이 정겹습니다.

도남재 - 등암 배상룡, 괴재 배상호 형제를 기리는 재실

이곳은 도남재인데요. 

등암(藤庵) 배상룡(裵尙龍)(1574~1655) 선생과 괴재(愧齋) 배상호(裵尙虎)(1594~1630) 선생 형제를 모시는 재실이랍니다.

등암 배상룡은 한강 정구 선생과 여헌 장현광 선생의 제자로 문장이 좋고 글을 잘 썼지만 평생 벼슬에 나서지 않고 학문에만 몰두하셨다고 합니다.

또 스승인 한강 선생을 모시는 회연서원을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아우인 괴재 배상호 선생도 임금이 감탄할 만큼 능숙한 문법과 학문을 갖춘 분이라는데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며 맏형인 등암 배상룡 선생을 섬기기를 마치 아버지처럼 하여 형제의 우애가 그 어떤 것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지극하였다고 합니다.

 

도남재 안내판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이 집안이 모두 대단한 분들이시네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투에 나가신 의병장도 있고요.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영화 <명량>에 나온 배설 장군도 있습니다.

마을 안내판

도남재 뒤쪽으로 언덕을 한바퀴 둘러볼 수 있는 산책길도 있습니다.

앗~! 우리가 찾아간 날(1월12일)은 진짜 엄청 추운 날이었지요.

맷돌에 물이 꽁꽁 얼어버렸네요. 이런 풍경도 진짜 오랜만에 봅니다.

재실 옆에 관리사입니다. 아마 최근에 새로 지었나 봅니다.

의병 창의마을 자리섬 마을 - 의병장 배덕문, 그리고 배설장군

의병 창의마을이라서 그럴까요? 말 두 마리가 재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도남리 마을은 배상룡, 배상호 형제의 할아버지인 서암(書巖) 배덕문(裵德文)[1525~1603] 선생이 처음 터를 잡은 곳이랍니다.

배덕문은 칠봉 김희삼의 제자로 1553년 문과에 올라 한성부윤을 지내는 등 여러 관직을 거쳤고 나이 들어 고향에 돌아와 성주향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지요.

이때 의병장이 되어 성주군을 지키던 군수가 도망을 가자 남아있던 병사들과 함께 바로 여기 자리섬 마을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김천 부상고개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그렇게 성주읍성을 되찾고 관군도 없는 성을 지켜낸 의병장이었습니다.

 

배덕문 의병장과 함께 그의 아들들인 배설, 배건, 배즙, 배력이 모두 의병으로 왜적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참으로 온집안이 의병으로 나서 왜적에 맞서 싸웠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도남재 재실은 앞면이 5칸이나 되는 제법 큰 건물이랍니다.

현판도 세 개나 걸려 있네요.

도천서원, 도남재, 도남서당 이렇게 걸려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배설장군(한빛국가유산TV)

그런데 이 도남재를 이야기하자면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사로 공을 세운 '배설 장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이야기가 있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당파싸움으로 자기 사람 챙기는 데에 바빴고 조정 대신들은 12척의 배를 천신만고 끝에 살려 이순신 장군한테 인계하고 청야작전으로 한산도 주민들을 전쟁에서 살려낸 배설 장군을 오히려 처형했습니다.

 

* 청야작전 - 방어군이 후퇴하기 전에 적군의 손에 들어간다면 유용하게 쓰일 만한 모든 물자를 없애 버리면서, 적군한테 보급이 끊기게 하는 작전

 

배설 장군은 이렇게 칠천량 패전의 책임과 반역 모의라는 죄목으로 1599년 3월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딱 11년 만에 그의 공적이 인정되어 1610년(광해군 2)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 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증직 되었고 1873년(고종 10)에는 유림의 소청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 병조판서(兵曹判書) 겸 지의금부(知義禁府) 훈련원사(訓練院事)로 추가로 증직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배설 장군이 보여준 행적과 공은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생각해봐야 할 일이지 싶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설 장군은 굉장히 나쁘고 전쟁에서 비겁하게 도망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명량> 영화가 상영된 뒤에는 장군의 후손들이 '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구미 금오산성 대혜문

참,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 선산부사였던 배설 장군이 제가 사는 구미에 있는 금오산 금오산성을 중수한 분이기도 하더군요. 

구미 금오산 대혜폭포

금오산 대혜폭포 아래 자연바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선조 병신(宣祖 丙申) 선산부사 배설(善山府使 裵楔) 축 금오성 천 구정칠택(築 金烏城 穿 九井七澤)’

이라고 말이지요.

1596년(선조 29)에 선산부사 배설이 중수한 금오산성 안에 샘 아홉 개와 못 일곱 개를 팠다는 기록이라고 하네요.

아.............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군요.

대혜폭포에 여러 번 가봤지만 한 번도 이 글귀를 본 적이 없습니다. 허허 참나원.

성균진사 성산배공 보사단비(成均進士 星山裵公 報祀壇碑)

 

1396년 성균진사에 합격해서 덕을 세우고 학문을 크게 이룬 배현 선생을 기리는 보사단비입니다.

배현 선생의 묘를 알 수가 없어 이곳에 단을 두고서 해마다 10월 9일에 향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빗돌이 선생의 묘를 대신하는 단소인 것이었어요.

얼마 앞서 소개했던 홍성 성삼문 선생 유허지에서 본 노은단처럼 봉분과 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빗돌을 놓고도 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답니다.

 

등암 배상룡과 아우 괴재 배상호

등암영각

도남재에서 왼쪽으로 언덕 위에 올라오면 '등암영각'이 있습니다.

등암 배상룡 선생의 영정과 두 형제의 문집인 <등암문집>과 <괴재문집>이 있다고 합니다.

등암과 괴재 선생의 아버지가 바로 큰 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처형되어 돌아가신 배설 장군입니다.

등암선생문집-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사진)
괴재집-국립중앙박물관 (사진)

등암 배상룡 선생은 한강 정구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며 학문을 닦았고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도 제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절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문집도 교정하고 한강 정구 선생을 기리는 <회연서원>을 세우는데 앞장섭니다.

또 스승이 돌아가신 뒤 그 허전함을 채우려 이번에는 여헌 장현광 선생을 모셔서 배움을 끊임없이 이어갑니다.

그때 나이가 53세였다고 합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53세 나이에 또다시 스승을 찾아 나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이런 선생의 뛰어난 인품과 학식을 탐낸 조정에서도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모두 마다했답니다. 아마도 배상룡 선생이 벼슬을 마다한 가장 큰 까닭은 아버지인 배설 장군의 죽음이었습니다.

1599년(선조 32)에 처형을 당하고 딱 11년 뒤인 1610년(광해군 2)에 신원이 회복되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요.

아우인 괴재 배상호 선생 또한 형과 마찬가지로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의 문인인데요. 문장이 뛰어나 과거에 합격한 뒤 여러 직책을 맡았다고 합니다.

괴재 선생은 단정하고 엄격한 성격이면서도 호쾌한 성품인데 남의 선행을 들으면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기뻐하고 또 옳지 못한 걸 보면 참지 못하고 엄했다고 합니다.

도남리 배롱나무

등암 영각 앞에는 수령이 300년이 넘은 배롱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지가 6개, 하나는 가지가 3개로 솟아올랐습니다. 마치 두 형제의 지극하고 남다른 형제애를 자랑하듯이 서로 마주 보며 서 있습니다.

8월에 오면 예쁘게 핀 배롱나무꽃도 볼 수 있겠네요.

https://youtube.com/shorts/ndb1fhn1gh4?si=6jLdo3WDZtx7qKqE

성산 배 씨유적지인 숭조대

성주 숭조대

도남재를 보러 가는 길에 먼저 봤던 곳이 있답니다.

신도비와 유허비가 무려 7기나 나란히 서있는 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고 둘러봤답니다.

모두 성산 배씨 가문의 빗돌이었는데 한자 까막눈으로 떠듬떠듬 읽어봤지만 자세하게는 잘 몰랐지요.

서암 배덕문 의병장 신도비

알고 보니, 가장 오른쪽에 오래되어 보이는 빗돌이 바로 아까 저기 위에서 이야기한 등암과 괴재 선생의 할아버지인 의병장 서암 배덕문 선생 신도비입니다.

숭조대 성산 배씨 신도비와 유허비

 

증 이조판서 서암공(贈吏曹判書書巖公) 신도비(神道碑). 서암 배덕문 신도비

증 병조판서(贈兵曹判書 諱 楔)공 신도비(神道碑). 서강 배설 신도비

증 병조참의(贈兵曹參議 諱 楗)공 유허비(遺墟碑). 고암 배건 유허비

증 병조참판(贈兵曹參判 諱 楫)공 유허비(遺墟碑). 명암 배즙 유허비

숭정처사(崇禎處士 諱 尙龍)공 유허비(遺墟碑). 등암 배상룡 유허비

증 승정원 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諱 尙虎)공 유허비(遺墟碑). 괴재 배상호 유허비

 

이렇게 앞서 소개한 의병장 배덕문 할아버지와 그의 아들인 배설, 배건, 배즙과 손자인 배상룡, 배상호 선생을 기리는 신도비와 유허비였답니다.

안 보고 지나쳤더라면 어땠을까요? ^^

 

숭조대 - 경북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109-7

경상 우수사 서강 배설 장군 묘
도남리 자리섬 마을

 

이곳 도남재 둘레에서는 해마다 10월에 <경모제>와 함께 <의병예술제>를 열어 행사를 치렀는데 지난 2023년부터는 함께 <성주 임진의병예술제>로 통합해서 열린다고 합니다.

오늘은 임진왜란 때에 온 집안 식구가 나아가 의병이 되어 나아가 왜적들과 맞서 싸운 분들과 한강 정구 선생과 여헌 장현광 선생의 문하에서 배움을 익히며 실천하며 살았던 형제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했습니다.

 

도남재- 성주군 대가면 도남리 123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제작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

https://youtu.be/fN1E8bfr5-M?si=b_-dLBA_yy3oQB7I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