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8월 한여름에 처음 들렀던 의산서당입니다.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 마을 끝에 있는 서당인데 이때는 풀이 무릎 가까이까지 자라나서 도저히 발을 들여놓기가 겁이 나더라고요.
이 무렵 영동 어느 재실에 갔는데, 그때도 이렇게 풀이 웃자라있는데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발밑에 있던 뱀을 코앞에서 알아보고 기겁을 한 일이 있었지요.
그 뒤로는 풀이 자라있으면 발 들이기가 정말 겁나더라고요. 그 바람에 여기도 멀찍이 서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지요. 겨울에 다시 오리라! 하고요.
겨울에 오리라~ 한 곳을 4년 뒤에야 다시 찾았네요.
겨울철이니 풀이 죽어있어 둘러보기에 편하겠습니다.
의산서당은 꽤 너른 터를 가지고 있네요.
서당 앞에 관리사 건물이 있는데 꽤 큽니다. 6칸짜리 건물이네요.
그 곁에 서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그 옛날에는 담장으로 둘러져 있었던 것 같으나 지금은 다 무너진 듯합니다.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출입문인 명지문(明智門)이 있습니다. 문이 활짝 열려있어 참으로 고맙네요.
밝은 지혜를 배우러 들어가는 문입니다.
의산서당(義山書堂)
작은 마당이 있고 기단을 쌓은 위에다가 서당을 세웠습니다. 조선 후기에 세운 서당인데 앞면 4칸, 옆면은 한 칸 반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의산서당은 관란재 김여권 선생을 기리는 곳이랍니다.
관란재(觀瀾齋) 김여권(金汝權) 선생은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고 글재주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나이 서른 살에 김천 지례향교 교임을 맡게 됩니다.
향교 교임은 운영을 하기도 하고 봄가을에 한 번씩 올리는 석전제나 기타 제향을 할 때 제례관이 되어 주관을 하기도 합니다.
선생이 교임으로 있을 때에 임진왜란이 일어났지요. 왜놈들이 쳐들어와 지례향교에도 불을 질러 큰 해를 입힙니다. 이때 대성전도 그 불길을 피할 수 없었는데 선생이 불길에 뛰어들어 오성의 위패를 비롯해 동방 18현의 위판들을 업어서 건져내어 구해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목숨도 생각지 않고 불길에 뛰어들어 위패와 위판을 구해내온 일이 널리 알려져 뒷날 흥선대원군이 김천 땅에 왔을 때에 관란재 김여권 선생을 찬양하며 지례향교에 친히 써서 내려준 현판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여기 의산서당으로 옮겨와서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조각 구성 땅 외롭게 떨어져 있지만, 관란재가 한 일은 선비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어지러운 티끌이 선현의 위패를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모두 성인들을 잘 보살폈다고 칭송했도다. 쓸쓸히 쑥대로 지붕 잇고, 초라하게 살면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니 험한 골짜기 등곡은 신령스런 땅이 되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룩한 가난한 선비에게 호화로이 지내던 벼슬아치들은 부끄럽기만 했으리라.” 로, 당시 흥선대원군이 감찰사로 있으면서 잠시 등곡에 들러 그때의 감회를 읊은 것으로 보인다.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 [義山書堂石坡親筆懸板]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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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서당은 담장이 무너진 곳이 많아 좀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강당 건물은 이쯤이면 잘 관리된 듯합니다.
주춧돌도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썼네요.
아궁이는 지난여름 잡풀이 옭아맨 채로 ...
강당 건물 벽체는 손을 좀 봐야 되겠네요.
강당 건물 뒤쪽에는 사당이 보입니다.
강당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었네요.
강당은 대청이 2칸이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두었는데 주로 대청에서 공부를 했겠지요?
이 서당에서 학문을 익히고 배운 이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댓돌이 굉장히 오래되어 보입니다. 그래도 반듯하게 깎고 다듬어서 만들었네요.
강당 대청에는 갖가지 현판들이 많이 걸려있더군요.
혹시나 했는데 위에서 소개한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된 현판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럼 사당에 모셨을까요?
의산서당 왼쪽으로 보니 저기 무너진 담장 너머로 사당이 보입니다.
그나저나 앞에서는 좀 멀쩡해 보였는데 뒤쪽엔 무너진 곳이 많네요.
담장도 무너지고 바로 옆에 있는 외삼문 지붕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기왓장도 있습니다.
사당은 경인사입니다.
본디 관란재 김여권 선생의 학식과 그의 충성스러운 업적을 기리려고 1864년에 이 경인사 사당을 먼저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의성 김 씨 문중의 자제들을 가르치려고 의산서당도 그때 함께 세웠다고 하네요.
사당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따로 있기도 합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삼문에는 진례문(進禮門) 편액을 걸었네요.
삼문도 열려있어 안쪽에 들어가서 볼 수 있습니다.
삼문에서 들여다본 경인사
경인사는 무성한 대나무숲이 마치 뒤에서 사당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보호를 하는 듯도 보이고요.^^
사당 쪽에서 본 강당입니다.
뒤쪽을 보니, 나무 기둥 몇 개로 지붕을 이어서 떠받치고 있네요.
그도 그럴 것이 1924년에 기와를 새로 이었다고 하고요. 그 뒤로는 의성 김 씨 문중에서 조금씩 관리를 한 듯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곳곳에 무너진 곳이 많아서 좀 안타깝더군요.
어이쿠~!
서당 나들이 다니면서 참 많이 봐왔던 모습이라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늘 마음이 아픕니다.
앗~! 벌집이?
경인사(景仁祠) 편액에 벌집을 지었었나 봅니다. 누군가 떼어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네요.
강당 왼쪽으로 난 쪽문은 아예 합판으로 막아놨네요.
삼문 지붕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김여권 선생은 나라의 제삿날은 기록해 두었다가 그날은 언제나 경건하게 지내고 부모상을 당했을 때에도 3년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곡을 했다고 합니다.
관란재 김여권 선생의 업적을 기리며 흥선대원군도 찬양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은 마을에 한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의산서당입니다. 이제는 누군가 마음 쓰지 않으면 잊히고 말겠지요?
이런 훌륭한 분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잊히지 않도록 잘 관리해서 오랫동안 둘러볼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의산서당 -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 302
★ 한빛이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서 소개한 영상도 함께 보세요. ★
https://youtu.be/XnD7Xrgsm6U?si=MrkZ4a14EsblWxy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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