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이름난 절집 직지사는 다들 아시지요?
직지사 가는 길을 수도 없이 오갔는데 바로 절집 아랫마을에 이렇게 멋지고 숨은 이야기를 품은 소나무가 있다는 걸 몰랐네요. 오늘 우리가 찾아간 곳은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산 96에 있는 <직지문인송>입니다.
마을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자리 잡고 우뚝 서있는 소나무가 향천리 마을을 품은 듯 내려다보고 있답니다.
2025년 올해 나이 361살
지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는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를 만나러 왼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아직 골절상을 입은 다리가 성치 않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애를 좀 먹었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봐도 그 풍채가 대단하네요.
계단 옆으로는 대나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우와~! 위에 올라와서 보니,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찬바람 쌩쌩부는 한겨울인데도 소나무는 푸른 잎을 싱싱하게 내고있어 한눈에 봐도 나무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나무와 쉼터가 있는 너른 터를 마련해두어 찾아오는 이들이 소나무도 보고 넉넉하게 쉬어갈 수도 있겠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목숨을 걸고 치성을 드렸다
그 옛날 이 마을에 살던 해주 정씨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소나무는 예로부터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아낙들과 장원급제를 기원하며 소원을 빌던 이들이 치성을 많이 드렸다고 합니다.
정월에 동제를 지내면 나무에 금줄을 치지요. 그런데 그때뿐 아니라,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금줄이 둘러쳐있을 만큼 마을 사람한테는 신목으로 여겨왔다고 합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엔 이 둘레에 일본 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소나무에 치성을 드리는 일을 엄격하게 금하고 감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와서 보면, 치성을 드린 흔적이 많이 보이곤 했다네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와서 치성을 드렸다는 건데 그만큼 이 소나무가 영험했다는 뜻이겠지요?
땅에서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자라난 소나무의 밑둥치가 놀랍도록 튼실합니다.
또 그 두 갈래에서 뻗어나간 잔 가지들을 보면 그 모양이 참으로 멋스럽습니다.
밑둥치에서 두 개로 갈라져 뻗어오른 나무를 보니 입이 절로 벌어지더군요.
또 무엇보다 나무의 상태가 매우 건강하다는 거였어요. 크게 병치레를 한 건 없더라고요. 잔 가지 몇 개 정도 말고는 수술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답니다.
한 마을에 글쟁이가 셋이나? 그래서 직지문인송!
마을에서 신목으로 여기고 당산제도 지내는 이 소나무가 언젠가부터 '문인송'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이 소나무에서 직선거리로 100m쯤 되는 곳에서 문인이 세 사람이나 나왔다고 하는군요.
그 세 분은 시인이자 조각가인 홍성문 교수, 김천에서 첫 시집을 낸 이정기 교수, 그리고 김천 최초의 소설가 심형준 작가입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시인 겸 조각가인 홍성문 선생(1930~2014)은 1954년 등단해서 이듬해에 첫 시집 '문'을 발간했다고 합니다. 70년대에 들어서서는 문학보다 조각가로 더욱 이름을 알렸는데요.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내는 등 많은 활동을 하셨답니다. 홍성문 선생의 공을 기려서 1995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이곳 향천리 출신인 이정기 선생(1927~2001)은 1947년 '오동' 창간호에 김천 농림중학교 학생 신분으로 '사랑'이란 시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1948년 12월에는 첫 시집으로 『발자욱 (삼중당, 1948) 』을 냈고 '보리는 익어가다', '가주 이거보', '고향의 오반' 등이 실렸다고 하네요. 또 『노실고개의 해당화』(백조, 1974) 및, 총 5권에 이르는 서사시집 『삼국유사』(국민대출판부, 1988) 등이 있다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릴적에 제가 살던 집이 노실고개에 있었는데 그 마을을 묘사한 작품도 있었군요. 삼국유사는 무려 5권에 이르는 대 서사시집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선생은 미국에서 선정하는 '세계 명사 5000명' 가운데 한 명으로 뽑혀 '국제문화 명예 상장'도 받았다고 합니다.
소설가 심형준 선생(1945~2013)은 김천시 봉산면 출신이지만 이 마을로 옮겨와서 문단에 데뷔를 했다고 합니다.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한 선생은 그 뒤,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방송 구성작가 등 많은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2013년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작품을 두었고, 쥐어짜지 않고 세상을 담담한 눈으로 보는 글을 많이 남겼다고 합니다.
특히 돌아가시기 한 해 앞서 매일신문에 쓴 선생의 글에는 고향 뒷동산에 올라 직지 문인송을 보면서 글감을 생각하고 구상했다고 하네요.
https://www.imaeil.com/page/view/2012071407540957405
[나의 살던 고향은] 53>소설가 심형준의 김천
...
www.imaeil.com
또 지금은 폐역이 되었고 직지사역 갤러리로 활용중인 <직지사역>이지만 학창 시절 통학을 하면서 선생이 작가의 꿈을 키웠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내게 무궁한 상상력을 주는 문학의 성지다"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한 마을에서 문인을 세 분이나 내놓은 향천리에서는 얼마나 큰 자랑거리이겠습니까? 과연 '직지문인송'이라 일컬을 만하네요.
마을 위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지키듯 서 있는 소나무!
예부터 영험하여 많은 이들이 치성을 드리러 찾아오던 소나무!
신목이라 여기며 아이들도 이곳에서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소나무!
한 마을에 이름난 문학인을 셋이나 내놓은 곳!
<직지문인송>의 늠름하고 멋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올 한 해, 그저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아울러 소나무 또한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랍니다.
김천 향천리 직지문인송 - 김천시 대항면 향천리 산 96-1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서 소개한 직지문인송도 함께 둘러보세요. ★
https://youtu.be/HFkreSd6J80?si=seqdGfFXEiayXg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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