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허백당 <홍귀달 선생 신도비>와 묘소를 보면서 연산군의 폭정에도 꿋꿋하게 '바른말'을 하였던 선생의 충심을 잘 알 수 있었지요. 이번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는 서원을 찾아갑니다. 바로 <임호서원>입니다.
두어 해 앞선 어느 겨울날,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마을 앞을 지날 때인데 오른쪽 언덕 위에 옛집이 하나 보이더군요. 재실인가?
궁금한 마음은 있었지만 나들이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멀리서 사진만 찍고 지나쳐 왔지요.
앗~! 그런데 얼마 앞서 허백당 홍귀달 선생의 자료를 찾다가 저 사진 속 옛집이 바로 서원이라는 거였어요. 허백당 홍귀달 선생을 비롯하여 표연말, 채수, 권달수, 채무일 이렇게 다섯 분을 배향하는 곳이라고 하는군요.
엥? 그렇다면 한 번 가봐야지요.
상주 신흥리 마을에 있는 <임호서원>입니다.
주소는 상주시 함창읍 신흥 2길 19-8로 되어 있었습니다.(그러나..............................ㅠㅠ)
주소대로 찾아보니, 역시 예전에 우리가 지나가면서 봤던 바로 그곳이었어요.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에 이번 상주 나들이 때 다시 찾아갔습니다.
차는 마을 앞 들머리에 있는 보건진료소에 세워두고 갑니다.
요즘은 우리 초롱이도 함께 다닌답니다.
초롱이도 어느새 우리를 따라 갖가지 문화재를 많이 보고 다녔답니다.
초롱아~! 너를 문화재지킴이견으로 임명하노라~! ^^
요즘은 어디를 가나 이렇듯 보기만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푸른빛으로 넘실댑니다. 이 빛깔 참 좋습니다.
음......... 그런데 우리가 가는 길 건너편 쪽에 보이는 또 다른 옛집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저기는 뭘까? 저기도 예사롭지 않은데?'
먼저 서원을 찾아가보고 마을 위쪽에 있는 저곳도 가봐야겠습니다. 궁금하니까...
오늘 날씨가 꽤나 덥습니다.
그래도 울 초롱이는 씩씩하게 잘 걷네요.
드디어 언덕 위에 다다랐습니다.
둘레 풀 정리를 아주 말끔하게 해 놓았더군요.
이런 모습을 보면 기분이 무척 좋지요. 애쓰는 손길한테도 매우 고맙고요.
건물 앞쪽에 큰 빗돌도 보이네요.
엥?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보니, 여긴 서원이 아닙니다.
건물 현판도 취수대(醉睡臺)라고 걸려있네요.
빗돌도 떠듬떠듬 읽어보니,
<성균진사 월성이공 취수헌 경모비>
라고 쓰여있네요.
주소는 틀림없이 신흥 2길 19-8이 맞습니다.
상주 임호서원을 찾으면 하나 같이 나오는 주소가 바로 여기랍니다.
뭔가 잘못되었네요.
이 건물의 이름이 <영사사>인가 봅니다.
월성이씨 청호공파 화평문중에서 사당으로 세운 곳이네요. 처음 입향조인 취수헌 공이 살던 곳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면 여기는 우리가 찾던 <임호서원>이 아닙니다.
확실히 임호서원을 알리는 글마다 있던 주소가 틀렸다는 게 확실하네요. 애고 쩝!
월성이씨 취수헌 공은 누구일까? 찾아보니, 취수헌 이겸 선생을 일컫는 듯하네요. 이 분에 대한 자료는 많이 없어 잘 모릅니다. 다만 언젠가 상주 이안천 풍경길을 소개할 때 잠깐 보았던 <청암서원>에서 배향하는 분인 것까지 알겠네요.
임호서원인 줄 알고 갔다가 주소가 틀렸다는 걸 알고 터덜터덜 다시 내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올 때 보았던 마을 위쪽에 있는 저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 마을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을 가운데에 정원을 예쁘게 가꾸어놓은 집이 보이더군요. 물레방아도 있고 꽃나무들이 많네요. 조금 앞서 우리 곁을 지나가던 자동차가 바로 이 집으로 들어가네요.
곶들(꽃들의 옛말)
화평원
이 집의 이름이 <화평헌>이네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더군요. 자동차에서 내리는 이가 안주인 같았는데 '집이 참 예쁘다'라고 말을 건네며 인사를 했더니, 환한 얼굴로 반기며 제 인사를 받아주더군요.
그 모습이 무척 예쁘고 따뜻했답니다.
지도에서 이 마을을 찾아보면, <꽃들골>로 나오더군요. 아마도 예부터 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었나 봅니다.
저기 산 바로 아래에 아까 우리가 보았던 그 옛집이 보입니다.
건물은 두 채가 있는 듯합니다.
와우~!!! 여기가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임호서원(臨湖書院)> 현판이 보입니다.
오르막길을 올라왔는데, 서원 아래에 널찍한 터도 있네요.
자동차도 너끈히 댈 수 있습니다.
헐~!!!
울 초롱이 오늘 고생 깨나합니다.
뙤약볕에 퍽이나 힘들었나 봅니다. 그늘에 들어서자 털썩 주저앉아버립니다.
하기야 벌써 10살이니 힘겨워할 만도 하네요.
서원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여기가 바로 임호서원입니다.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둔 강당입니다.
여느 서원처럼 동재, 서재 형식을 띤 건물은 따로 없었습니다.
갖가지 편액들도 여러 개 걸려 있습니다.
강당 옆에는 사당이 있네요.
사당 현판은 경현사(景賢祠)입니다. 맞배지붕 건물이고요.
강당과 사당이 나란히 일렬로 선 좌학우묘 구조입니다. 저 문이 내삼문 역할을 하네요.
임호서원이건기
자료를 찾다가 <임호서원이건기> 내용을 갈무리한 게 있어 옮겨 읽어봅니다.
임호서원이건기(臨湖書院移建記) 상주 공검 역곡 함령(咸寧-지금의 咸昌)의 임호서원은 숙종 신미년(1691)에 창설되었다. 무진년(1868)에 나라의 명령으로 훼철되자 단소를 만들어 제사를 지낸 지 백여 년이 되었다. 골짜기가 깊고 토질은 척박하여 살던 사람들이 떠나니 마을은 자연히 비게 되어 서원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또한 맡길 사람이 없어 후손과 사림들이 서원을 현의 남쪽 화평리(花坪里)에 복원하기로 논의하여 무진년(1988) 봄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 중순에 마쳤다. 서원의 유생인 이영욱(李永旭), 채춘식(蔡春植), 권태영(權泰永)이 차례로 나를 방문하여 기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기에 거듭 사양하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조용히 생각하니 오봉산은 넓은 들판의 가운데 힘차게 솟아서 푸른빛을 하늘에 가로 쌓아 놓은 것 같아 마치 용이 똬리를 튼 것 같고 봉황이 춤을 추면서 남쪽으로 나는 것처럼 유려하게 펼쳐져 있다. 한 물줄기는 북으로 네 개의 산허리를 두르며 남쪽을 감싸 안으니 학문을 강마하기에 적합한 자리이다. 살펴보면 남계(藍溪) 표연말(表沿末) 선생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의 연원으로 명현들과 교유하며 효행으로 가정을 다스리고 이단을 멀리하였다. 허백정(虛白亭) 홍귀달(洪貴達) 선생은 마음을 가라앉혀 깊은 학문을 궁구하였으며, 대간(大諫)으로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여 곧은 말로 간하여 어지러운 조정을 멀리하였다. 난재(懶齋) 채수(蔡壽) 선생은 과거에서 장원 급제하여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고 분노의 문장으로 사악함을 배격하여 끝내 조정을 맑게 하였다. 동계(桐溪) 권달수(權達手) 선생의 곧은 기개는 하늘을 떠받치었으니 그 충정은 해를 뚫고 폐비 윤씨 사당을 세우는 모의를 배격하여 나라에 대의가 있음을 보이셨다. 휴암(休巖) 채무일(蔡無逸) 선생은 뛰어난 문장을 감추고 붓을 놓아버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나 그 뜻과 곧음이 한결 같아서 그 절의를 일세에 남기셨네. 대저 다섯 분 현인의 끼치신 영향은 물방울처럼 흩어지지 않았고 또한 선생들 누대의 고향인 임호서원에서는 이들을 정성을 다해 받들고 지켜왔다. 국가에서 임호서원을 훼철한 이후, 예를 가르치던 그곳이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세태는 인륜을 저버리고 의를 싫어하여 버리려고 하지만 새로이 바른 기운이 돌아와 예절과 옛 풍속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막게 하였다. 이것이 서원의 여러 유생들이 모든 힘을 다하여 자리를 정하고 묘우와 강당을 차례대로 중건한 이유이다. 옛 편액을 높이 걸고 절목을 정하여 3월 초정 일에 제사를 올린다고 각 문중에 알리니 엎어질 듯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모두가 즐거워한다. 건물과 담장을 올려다보니 모두가 엄숙하고 장중하다. 변두에 제물을 차례로 올려놓고 읍양하고 주선하니 예절과 사양하는 풍속이 다시 살아나 여유롭고 활기차게 시 읊고 글 읽는 풍속을 진작시켰다. 무릇 하늘이 우리의 도를 다시 돌려놓았으니 어찌 내일이 밝지 않으리오. 원중(院中)의 여러 군자들이 서원의 현판을 걸고 준공한 것을 경하드립니다. 기사년(1989) 정월 16일에 후학 진성 이원영 삼가 짓다. [출처] 권달수[權達手(桐溪)] 할아버지|작성자 난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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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난재 채수 선생은 몇 해 앞서 소개했던 <상주 쾌재정>에서 보았던 바로 그분이시네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된 소설 <설공찬전>을 쓴 분입니다.
또 휴암 채무일 선생은 채수 선생의 손자이고요.
이번에 또 허백당 홍귀달 선생까지 자세하게 알게 되었네요.
이렇듯 훌륭한 분들을 배향하며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임호서원>까지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여기 임호서원은 앞서 소개했던 연산군의 폭정에도 '바른말'을 서슴지 않았던 허백당 홍귀달 선생을 배향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상주 임호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지방 유림에 의해 표연말, 홍귀달, 채수, 권달수, 채무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으나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9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 신문, 3칸의 강당, (대한민국 구석구석에서) |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있는 임호서원 소개글에는 잘못된 정보 투성이입니다.
3칸의 묘우(사당 경현사), 신문, 3칸의 강당 까지는 맞습니다.
그런데 4칸의 주소 뒤로는 다 틀렸어요. 실제로 없는 것입니다.
※ (이 글을 쓴 뒤에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잘못 적은 걸 고쳐달라고 요청했는데... 아무 답도 없어 안 되었는 줄 알았더니 오늘(2024년7월17일) 다시 보니, 새롭게 고쳤네요. 그랬다면 연락이라도 좀 해주시지... 어쨌든 바로 잡혔음을 알려드립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이런 임호서원을 소개하는 글마다 정작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네요.
정확한 주소 알려드립니다.
상주 <임호서원>의 실제 주소는?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산 21-1
임호서원 대청에 서서 바라보면, 아까 우리가 임호서원으로 알고 찾아갔던 바로 그 취수대입니다.
주소를 틀리게 적어놓으니, 임호서원을 다녀와서 올린 글에서 전혀 다른 집을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는 것도 여럿 보았답니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아야 하겠네요.
물론 저도 잘못 적은 곳마다 하나하나 고쳐달라고 요청할 겁니다.
상주시 함창읍 신흥리 산 21-1
※ 카카오맵에 <상주 임호서원>이 등록되지 않았더라고요.
이번에 글쓰고 등록신청을 했더니, 7월7일에 등록되었다고 메일이 왔네요.
카카오맵 고맙습니다. ^^
★ 제 유튜브 채널 <한빛국가유산TV>에 허백당 홍귀달 선생 이야기를 자세하게 영상으로 올렸습니다.
https://youtu.be/dEQq3NFgrp4?si=q0_oVAsQlDdODgk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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