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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김천 율수재 배롱나무꽃] 아뿔싸~! 한 발 늦었네! 매계 조위 선생의 옛집

by 한빛(hanbit)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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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율수재 배롱나무꽃

김천 율수재는 지난해(2021년) 겨울에 처음 다녀오고 여름철에 꼭 다시 한번 오리라! 했던 곳입니다. 왜냐고요?

네. 바로 배롱나무꽃을 보려고 말이지요.

2021년 2월에 찍은 김천 율수재

그 해 겨울에 왔을 때는 조금은 삭막한 풍경이었지요. 그래도 배롱나무를 보고 이다음에 여름철에 오면 참 예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요.

배롱나무꽃은 언제 봐도 참 예쁩니다.

김천 율수재는 조선 성종 때에 성리학의 대가이자 대문장가인 매계 조위 선생이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던 곳이랍니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 선생(1454~1503)은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과 함께 초기 사림파의 기틀을 마련했던 분이기도 합니다.  

매계 선생과 점필재 선생은 처남과 매부 지간입니다. 그러니까 조위 선생의 누나와 점필재 선생이 혼인을 했지요.

그러니까 스승이자 매형인 셈이지요.

매계 선생은 성종의 명으로 스승인 점필재 선생의 문집을 편찬했는데, 

그때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걸 쓴 점필재 선생의 <조의제문>을 그대로 문집에 실었다고 합니다.

 

끝내 이 <조의제문>이 그 끔찍한 <무오사화>의 발단이 되었지요. 훗날, 김종직 선생의 제자인 탁영 김일손이 사초에다가 조의제문을 실었는데 그게 발각되어 당시에 신진 사림파와 갈등을 빗던 공신인 훈구파와 정치 대립 때문에 피의 숙청이 시작되었던 게지요.  

그때 김종직 선생은 무덤에서 꺼내어 목이 베이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선생의 수많은 제자들도 숙청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었지요.

 

그때 매계 조위 선생도 점필재 선생의 문집을 만들때 함께 했다고 의주와 순천으로 유배를 갑니다. 안타깝게도 유배지 순천에서 50세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율수재는 매계 선생께서 어렸을 때 태어나고 공부하던 곳에다가 후손들이 세운 거랍니다.

율수재
율수재 매계구거

율수재 <매계구거梅溪舊居>입니다.

매계 선생이 살던 집이란 뜻입니다.

이 편액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친필이라고 하네요.

 

그나저나 배롱나무꽃을 너무 늦게 보러 왔네요.

일주일 앞당겨 왔다면 더욱 풍성하고 빛깔 고운 꽃을 볼 수 있었겠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예쁘게 꽃이 피어 있을 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네요.

율수재 앞으로 작지만 네모난 연못이 있고 아치형으로 다리를 놓았습니다.

제법 운치 있는 곳이지요.

배롱나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율수재랑 아주 잘 어우러져서 보기에 참 좋습니다.

가을철에는 배롱나무 옆에 있는 저 키 큰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서 또 보기에 좋겠습니다.

오늘은 우리 말고도 여기를 찾아온 분들이 더 있었답니다. 알고 보니, 이 분들도 배롱나무꽃을 찍으려고 왔더군요.

배롱나무꽃이 일찍 져버려서 많이 아쉬워하더군요.

저는 아직 다 피지 않은 건가 보다! 했는데 벌써 지고 있는 거였어요. 애고...

그래도 저는 이렇게라도 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고 좋습니다.

다만, 날씨가 어찌나 뜨겁고 더운지 땀이 비 오듯 합니다.

그래서 더 오래 있지 못하고 꽃구경만 하고 돌아 나왔네요. ㅠㅠ

예전에 김천 율수재에 다녀온 뒤에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게 있답니다.

함께 감상하세요.

 

https://youtu.be/UVPcAWBjJH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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