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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문경 창구서당> 금세 쓰러지겠다 진짜 복원되면 좋겠다!

by 한빛(hanbit) 2022.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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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구서당

"있잖아~! 진짜 이번에 가보지 않으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는 데가 하나 있거든? 이번 주엔 거기 가지 않을래?"

"엥? 그게 뭔데? 어딘데?"

 

앞서 소개한 돌담 풍경이 아름다웠던 문경시 산북면 창구리 마을 한 가운데에는 <창구서당>이 있습니다. 1906년에 세운 서당이랍니다.

푸른 언덕 창구리

창구리 마을 들머리입니다.

1380년께 단양 사람 장보충(張補充)이란 사람이 이 마을에 들어와 처음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합니다. 어머나! 그러고 보니, 마을이 생긴 게 굉장히 오래되었네요. 고려시대 우왕 때입니다.

장보충이 처음에 터를 잡았을 때엔 푸른 언덕에 비둘기 떼가 많아서 '푸른 언덕의 비둘기'를 뜻하는 말로 '창구(蒼鳩)'라고 했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살게되면서 비둘기 떼는 사라지고 그 언덕에 푸른 숲이 울창해지면서 지금 현재의 이름인 '푸른 언덕'을 뜻하는 ‘창구(蒼邱)’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창구리 마을에는 이렇게 제법 너른 도랑이 있습니다. 요며칠 비가 좀 내려서 물이 꽤 많이 흐르더군요.

마을은 온통 돌담길입니다.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창구리 마을에 오기 전까지는 이 마을이 돌담 마을이라는 걸 전혀 몰랐네요. 사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온 건 바로 이 다 스러져가는 <창구서당>을 보러 온 거랍니다. 혹시라도 더 늦으면 이런 중요한 유적을 영영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지요.

<창구서당>은 조선 말기인 1906년에 세운 서당인데요. 사실 이 서당에 대한 자료도 없고 정보도 거의 없습니다. 또 문화재도 아닌 걸로 알고 있어요. 다만, 산양면 현리, 인천 채 씨 집성촌에 살던 창애(蒼崖) 채규봉(蔡圭鳳) 선생이 여기에 서당을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친 곳이라는 것만 알 수 있답니다.

그런데 서당을 둘러보는데, 참 안타깝네요. 건물이 폭삭 내려앉을 듯한 모습입니다. 담쟁이넝쿨과 잡풀에 완전히 점령당한 듯 보입니다.

돌담에 빙 둘러싸인 창구서당

정면이 3칸, 옆면이 2칸짜리 건물입니다.

이제 안쪽을 들여다볼까요?

양쪽에 방을 한 칸씩 두고 가운데는 마루를 두었네요. 또 오른쪽 끝으로는 툇마루를 덧대어 놓은 듯 보입니다.

담장이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낮은 돌담 너머로 창구리 마을 길이 내다보이네요. 비가 오는 날 마을 풍경이 더욱 정겹게 보이네요.

마루 벽에는 글자를 쓴 종이를 가득 붙여놓았네요. 하지만 벽지로 바른 종이들이 떨어지고 천정은 아예 맨살을 드러냈습니다. 

<창애정사(蒼崖精舍)>라 쓴 현판도 보입니다.

창애는 이 서당을 세운 채규봉 선생의 호입니다.

마루에 마치 누군가 글공부를 할 것 같은 작은 책상이 있습니다. 다만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어 더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저 항아리는 뭘까? 

창구서당(蒼邱書堂) 편액입니다.

널빤지에다가 한지로 하얀 한지로 덧대고 그 위에다가 글씨를 쓴 것 같기도 하고, 따로 까만색으로 쓴 글자를 오려서 붙인 듯도 보입니다. 멋들어진 나무에다가 조각을 하여 새긴 편액은 아니어도 소박한 멋이 있어 참 정감이 갑니다.

벽지로 바른 종이 위에다가 누군가 멋진 솜씨로 손수 쓴 글씨들을 붙여놓기도 했네요.

좋은 날 꽃과 함께 (창구 마을)

 

날마다

아침이 오면

모두가 평화 속에서

 

좋은 날

꽃으로 피어나

자연 이치에 순응하며

 

정겹게

고운 마음에 향기 되는

들꽃이 되고 싶소이다

 

아, 그런데 재미난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창구서당에 현대식 문짝이 달려있네요. 언제쯤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런 문짝을 달아놓고 사람이 살기도 했나 봅니다.

창구서당에서 내다보는 마을 풍경

서당 왼쪽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변소인 듯 보이는 건물이 있네요. 귀신 나올 것 같은 모습에 더 안쪽으로는 못 가보겠더군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창구서당...

서당이 세워진지 올해로 116년째 되었네요. 어떤 이들한테는 하찮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곳은 역사 유물로, 또는 유적으로도 남겨두면 좋지 않을까요?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있더군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자료를 찾다가 알았는데,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문경시에서 복원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정말 고맙네요. 하루라도 빨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창구리 마을 풍경은 앞서도 소개했지만, 조금 더 돌아봅니다.^^

마을 앞에 물이 흐르는 게 참 좋습니다. 옛날 같으면 여기서 빨래도 했을 겁니다. 

창구서당 앞에는 마을 정자 쉼터도 있고 차도 몇 대 댈 수 있는 터가 있네요.

산자락에 구름이 걸린 풍경이 매우 멋스럽습니다.

골 깊은 공덕산 아래 마을 창구리를 볼 수 있어 참 좋네요.

돌담도 예쁘고 돌담 위로 친친 휘감은 담쟁이넝쿨도 예쁩니다.

나무가 먼저일까?

돌담이 먼저일까?

아마도 나무를 그대로 두고 돌담을 쌓았을 듯한데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을까요?

나무는 죽어버렸습니다. 그 사이로 버섯이 피어나 세월처럼 켜켜이 쌓여 진을 내고 그걸로 또 돌담까지 껴안았네요.

창구리 마을 돌담은 봐도 봐도 정겹네요.

창구리 마을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신작로 옆에 뭔가 또 남다른 집이 보입니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대문 앞은 이미 풀들이 차지했네요. 아무도 돌보는 이가 없는 걸까?

담장 너머로 봅니다. 어느 문중 재실인가?

했는데, 정자이네요. 

윤봉정(潤峰亭)이라 쓴 편액이 보이네요.

그 앞으로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예사롭게 안 보입니다. 어찌 보면 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잘라진 듯 보여 자연석이 아닌 것도 같고...

윤봉정 앞에는 양쪽으로 배롱나무가 두 그루 문지기 마냥 서 있습니다. 또 그 곁에는 키 큰 은행나무도 있네요.

윤봉정도 창구서당 못지않게 뭔가 얘깃거리가 있을 듯하네요.

하지만 아무 정보도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은행나무 아래 나무 기둥에 껍질을 빙 둘러가며 잘라낸 흔적이 보이네요. 도대체 이건 또 왜 이렇게 했을까요?

궁금한 게 많지만 알려주는 곳은 없네요.

 

집에 와서 창구 마을 이야기를 찾다 보니, 이 윤봉정은 1984년에 세웠다고 합니다.

윤봉(潤峰) 서정섭(徐廷燮·1900~1967) 선생을 기리기 위해 대구 서 씨 후손들이 세운 것이라고 하네요. 

 

윤봉 서정섭 선생은 창구서당을 세운 창애 채규봉 선생께 배운 제자라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 서당에서 훈장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다네요.

때마침 이 깊은 산골짜기 끝자락까지 들어온 버스를 만납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버스가 다녀서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지만 옛사람들 같으면 이 깊은 골짜기에서 가까운 산북면이나 점촌까지 또 문경까지 가려면 꽤나 멀고 멀었겠지요?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차를 타고 휘리릭 왔다가 갈 수 있는 세상이 새삼 고맙네요.

 

※ 창구리 마을 풍경을 담은 글도 보고 가세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244

 

<문경 창구리 마을> 비 내리는 시골마을 풍경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입니다. 빗방울 머금은 호두 열매에 빨간 잠자리가 앉았습니다. 돌담을 둥그렇게 쌓은 풍경이 무척 예스럽네요. 빗방울을 머금은 이파리가 무척 싱그럽네요. 오늘 우리

sunnyhanbit.tistory.com

 

※ 문경시 산북면 창구리 마을 풍경과 창구서당을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들었습니다. 

 

https://youtu.be/FX08U7dBN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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