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의성 낙단보 나루터에 있는 통신사 공원을 소개했지요. 오늘은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보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조선에 돌아와서 '수차'를 만들어 보급했던 율정 박서생 선생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합니다.
의성 병산정을 찾아갔을 때가 지난 7월 말경이었습니다.
들판이 한창 파릇파릇합니다. 벼가 어느새 저만큼 자랐네요.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오늘 찾아갈 병산정입니다. 그런데 코앞에 있는데도 가로질러 갈 수는 없답니다.
꼬불꼬불 좁은 길로 들어서더니 시원시원한 찻길이 바로 옆에 있네요.
국도 28호선입니다.
이 국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사과밭을 돌아서 조금 더 가면 들머리가 나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여기가 바로 병산정 들머리입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길로 들어왔답니다.
헉~! 저게 뭐지요?
엄청나게 큰 돌판들이 우뚝 서 있습니다.
왼쪽에 남편의 키와 견주면 얼마나 큰 지 아시겠지요?
그 뒤로 보이는 게 병산정입니다.
아마도 후손들이 이렇게 멋지게 가꾸고 있나 봅니다.
이 병산정은 경북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마을에 있습니다.
병산정은 '비안 박 씨' 후손들이 선조들을 기리며 세운 곳이랍니다.
높다랗게 보이는 병산정
그 앞에도 빗돌이 하나 보이고 또 그 아래로 아까보다는 조금 더 작은 돌판들이 보이네요.
그래도 엄청 큽니다.
먼저 앞서 있는 큰 돌판을 들여다봅니다.
이 큰 빗돌은 커다란 돌기둥 세 개를 세우고 그 위에 다시 커다란 돌판을 얹은 구조랍니다.
이 커다란 빗돌은 아주 남다른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앞서 소개한 율정 박서생 선생의 7대손이면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무신인 병애(屛崖) 박충인 선생과 그의 아들 북촌 박효순, 그리고 조선 통신사 율정 박서생 선생을 기리는 빗돌 3개를 세운 겁니다.
위에 큰 돌판 덮개는 7평이나 되는데 이건 국가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세 분의 삼족(三足)으로 나라를 떠받들고 있는 모양이라는 겁니다. 또 율정 선생의 과학과 실학의 선구자였던 사상을 기리며 빗돌 자체도 이처럼 크고 현대식으로 만들어 옛 것과 차별을 두었다는 게지요.
선무 원종 공신 박충인 장군 시비(宣武 原從 功臣 朴忠仁 將軍 詩碑)
반대쪽에는 장군의 아들인 북촌 박효순의 창의비가 있습니다. 북촌박효순창의비(北村 朴孝純 倡義碑)가 있습니다.
병산정은 조선 세종 때 문신으로 조선 청백리에 오르고 여러 차례 말씀드린 최초 조선통신사였던 율정 박서생 선생을 추모하려고 문중의 후손들이 1935년에 세운 정자입니다.
병산군박우지단(屛山君瑀之壇)
비안 박 씨(병산 박 씨)의 시조인 박우의 제단비가 병산정 앞에 있습니다.
또 한 켠에는 <율정선생시비(栗亭先生詩碑)>가 세워져 있네요.
율정 박서생 선생의 시를 새긴 시비입니다.
시비 안팎으로 선생의 시와 시의 뜻을 해설해놓은 것도 있습니다.
찬 야은 길 선생(讚 冶隱 吉 先生)
앗~! 야은 길 선생을 찬양하는 시라고요?
야은 길 선생은 제가 사는 구미시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잘 아는 분입니다. 눈치채셨지요?
네 맞습니다. 바로 고려삼은 가운데 한 분인 야은 길재 선생을 말하는 겁니다.
의성에 와서 구미의 야은 선생을 기리는 찬양 시를 보다니요.
알고 보니, 율정 박서생 선생이 야은 길재 선생의 문하였더군요.
돌아가실 때까지 늘 야은 선생의 곁에서 보필하던 분이었다고 합니다. 또 이번에 알았는데 박서생 선생의 무덤도 제가 사는 구미시 도량동에 있다고 합니다.
헐~!!! 이럴 수가!
의성에 와서 이런 분을 알게 되다니요?
율정 선생 시비에는 옛 사진도 볼 수 있네요.
자, 이제 병산정으로 들어가 봅니다.
붉은 벽돌로 담장을 둘렀네요.
들머리로 들어서니 이런 모습입니다.
반대편 쪽이 뚫려있어 내다볼 수도 있네요.
들어왔던 방향을 돌아보니, 이런 모습이네요.
아까 보았던 제단비가 보입니다.
방에는 장판을 다 걷어놨어요.
툇마루를 놓았고요.
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습니다.
뒤쪽으로 돌아가니 담장 너머로 위천이 보입니다.
병산정(屛山亭) 편액입니다.
의성군 비안면은 예전에 비안현이었답니다. 또 병산현이라고도 했다네요.
가운데 대청이 있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둔 구조입니다.
병산정의 세운 기록을 알 수 있는 <병산정기>
앗~! 저런!
문종이는 다 떨어졌고 벽면 한쪽은 허물어졌네요.
애고 안타깝습니다.
또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 한 면은 아예 통째로 무너져 내렸네요.
병산정에서 담장 너머로 보면 위천이 내려다보입니다.
위천에는 물이 거의 없네요.
실제로 저 앞쪽에서 병산정을 보면 절벽 위에 세운 듯한 모습이라고 합니다.
의성 병산정이 어떤 분을 기리는 곳인지도 모른 채로 왔다가 뜻하지 않게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해내신 분을 알게 되었네요.
율정 박서생 선생은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지낸 1년여 시간 동안 보고 배워 온 것들을 조선에 돌아와서 사회, 경제, 농업, 정치까지 두루두루 쓰일 수 있도록 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에는 율정의 ‘시행할 만한 일(可行事件)’ 15개 항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선 글에서 소개한 대로 '수차'를 만들어 농사짓는 데에 혁신을 이끌어냈고요. 또 날로 먹으면 기갈을 해소하고 삶으면 사탕이 되는 일본이 재배하는 사탕수수와 마를 보급 하자고 했어요. 화폐 유통을 강조하며 세금도 돈으로 낼 수 있도록 하자고도했다네요. 선생이 이런 제안을 한 지 약 200 년 뒤에 실제로 '상평통보'가 나왔다고 합니다.
또 상가(시장)를 나무 널빤지로 만들어 정리하고 무엇을 파는 집인지 간판을 달자는 제안도 했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맨땅에다가 고기나 식품들을 두고 팔았다네요. 하나 더 있어요. 목욕문화도 바꿔놓았다고 합니다. 제생원·혜민국 등 사람이 많은 곳에 모두 욕실을 설치한 뒤 돈을 내고 이용하도록 하자고 건의하면서 화폐경제를 잘 이용하자는 아주 실질적인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참 놀랍지요? 율정 선생은 세종 때 사람인데 그 시절에 벌써 이런 생각들을 했다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네요.
의성에서 새로운 분을 알게 되어 참으로 고맙네요.
이젠 율정 박서생 선생 이름만 들어도 굉장히 뿌듯할 것 같습니다. ^^
아, 병산정이 있는 의성군 비안면은 3.1 독립만세 운동 경북 시발지라고 합니다.
시골 작은 마을이지만 예부터 훌륭한 인재들이 많은 곳이었네요.
★ 제 유튜브 채널에서 의성 병산정을 소개한 영상도 함께 감상하세요. ★
★ 율정 박서생 선생을 기념하며 세운 의성의 또 다른 볼거리 <통신사 공원>도 함께 둘러보세요. ★
https://sunnyhanbit.tistory.com/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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