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홍길동전으로 알고 있었지요.
홍길동전은 1611년 광해군 때에 허균이 쓴 한글소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100 년이나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바로 상주 쾌재정이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소설이 쓰인 곳이라고 해서 찾아갑니다.
상주 이안천이 흐르는 물가 옆으로 언덕배기 산으로 올라갑니다.
겨울철이면 이안천 건너편에서 쾌재정이 보이기도 한다더군요.
좁은 길이지만 시멘트가 깔린 곳이라 차를 타고 갈 수 있답니다.
쾌재정이 언덕배기에 있다 보니,
이렇게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이랍니다.
가장리 마을입니다.
요즘 한창 알곡을 채우고 있는 들판을 보니,
무척이나 풍요롭게 보입니다.
쾌재정입니다.
우와~!
건물이 꽤 아름답습니다.
겹처마 팔작지붕 집인데,
처마가 예술이네요.
우리나라 건축미는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겁니다.
처마를 겹으로 만들어서 더욱 멋진 데다가 추녀 끝을 저렇게 활처럼 휘게 만들어서 치켜 올라가게 했네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조선 중기 홍길동전보다 100 년 앞선 한글소설
설공찬전, 한글본은 설공찬이
그리고 나재 채수는?
이것이 바로 최초의 한글소설인 <설공찬전>입니다.
한글본 이름은 <설공찬이>라고 했답니다.
<설공찬전>을 쓴 사람은 바로 조선의 문신이었고 음악과 문학에 뛰어났던 나재 또는 난재(懶齋) 채수(蔡壽) 선생입니다.
난재(懶齋) 채수(蔡壽)
1449년(세종 31)~1515년(중종 10)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입니다. 본관은 인천이고요.
사헌부 감찰관과 춘추관기사관으로 예종실록 편찬에도 함께 한 분이지요.
도승지 임사홍을 탄핵하다가 파직을 당하기도 했고 1481년 풀려나서 다음 해 대사헌으로 발탁되어 언관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만큼 국왕의 신임을 받았다. 강직한 언관으로서의 자세를 굽히지 않아 폐비 윤 씨에게 처소와 시량을 공급하기를 청하였다가 국문을 당하고 하옥되기도 하였다.
이후 성균관대사성과 호조참판까지 지내다가 중종반정 공신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그 과정 또한 뜻이 있어 가담하게 된 게 아니라 얼떨결에 그 자리에 나갔다가 공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야사에 전해진다고 합니다.
사실 나재 채수 선생은 아무리 폭군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보필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중종반정 이후로 관직에서 떠나 이곳 상주 함창에 내려와서 쾌재정을 짓고 여기에서 바로 <설공찬전>을 씁니다.
쾌재정은 정면 3칸, 옆면 2칸짜리 건물인데
모두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창호지를 바른 창이 하나도 안 보이네요.
<설공찬이> 한글본이 1996년에 발견되다!
우리나라 '최초의 금서'가 된 <설공찬전>
앞서 보았던 <설공찬이> 한글본은 1996년 서경대 국문과 이경복 교수가 성주 이 씨 묵재(默齋) 이문건의 <묵재일기>의 이면지에서 한글본으로 된 13쪽(총 3.470 여자, 200자 원고지 18장 분량)에 걸쳐서 필사된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설공찬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적힌 소설이 된 겁니다.
무려 홍길동전보다 100여 년이 앞선 시기에 쓰인 소설입니다.
정말 놀랍네요.
설공찬전은 유교적 관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후세계와 민속신앙인 무속의 귀신들이 나와 펼치는 이야기랍니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왔을 때, 당시 '화와 복이 윤회한다'는 이야기라서 민중을 미혹하는 책으로 간주되어 모두 금지되어 불태워졌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까지도 <설공찬전>의 한문 버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금서로 지정되고 모두 불태워지는 바람에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는지도 모릅니다.
소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전북 순창이고 여기에 살던 장가도 못 가고 죽은 '설공찬'이 주인공이고 혼령이 되어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랍니다.
당시 유교사상이 드높았던 조선에서 이런 소설이 나왔으니 금서가 될 법도 하지요.
게다가 이승에서 왕이었더라도 반역해서 집권하였으면 지옥에 떨어지며, 간언 하다 죽은 충신은 저승에서 높은 벼슬을 하고, 여성도 글만 할 줄 알면 관직을 맡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으니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중종과 그 공신들이 봤을 때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래서 백성을 미혹시킨다는 까닭으로 모조리 불태워 없애고 금서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쾌재정 편액입니다.
글씨도 굉장히 통쾌하고 기운차 보입니다.
단청으로 칠은 되어있지 않았지만 공포나 갖가지 문양들을 보니,
참 잘 만든 집입니다.
창호문 하나 없이 사방을 나무로 막아놓고 또 드나드는 문도 나무문으로 만든 게 매우 남다릅니다.
쾌재정 앞에 빗돌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국회의장을 지낸 채문식 의장을 기념하는 비가 있네요.
나재 채수 선생은 인천 채 씨인데요.
채문식 의장도 같은 본인가 봅니다.
三佑通信會長 蔡健植崇祖篤志碑(삼우통신회장 채건식숭조독지비)
그 옆에는 또 다른 빗돌이 있는데 채건식(蔡建植)이란 분의 공적을 기려 세운 비인 듯합니다.
채건식 회장의 공적비 뒷면입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보다도 100 년이나 먼저 쓰인 <설공찬이>와 그 소설을 쓴 나재 채수 선생, 금서가 되면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두 개나 가진 <설공찬전> 그리고 이 소설을 썼던 상주 쾌재정을 소개했습니다.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영상으로도 소개한 게 있으니 함께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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