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호수종택에 갔을 때, 그저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정면에서 칸 수를 세어보니, 자그마치 10 칸짜리 집입니다.
아, 그런데 앞에 자동차가 여러 대 보입니다.
혹시 누군가 있으면 어떡하지? 하고 망설이며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네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모습이랍니다.
안채입니다.
이렇게 보면 ㄱ 자이지요?
하지만 아래 사진처럼 우리가 들어왔던 대문채까지 이어져서 트여있는 ㄷ 자형 집이랍니다.
벽에 기댄채 세워놓은 낡은 자전거가 인상 깊습니다.
이제 제대로 ㄷ 자 모양이 보이지요?
안채도 꽤나 넓습니다.
담장 너머로 북쪽에는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습니다.
호수종택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하셨던 영일 정 씨인 호수 정세아(湖叟 鄭世雅, 1535~1612) 선생의 장손인 정호례(鄭好禮)가 광해군 5년(1613)에 지은 집이랍니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 90호입니다.
정호례 [1604-1672]의 자는 자립(子立), 호는 요산(樂山)이며 해남 현감을 지냈다고 합니다.
이 집의 특징이 바로 공(工) 자형으로 집을 지었다는 겁니다.
위에서 보면 지붕과 지붕을 잇는 모양새가 딱 工 자형 건물입니다.이렇게 집을 지은 까닭은 자손들이 공부에 더욱 힘쓰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안채 뜰에는 장독대가 있습니다.
전체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앞에서 볼 때는 일(一) 자형으로 되어 있어 안쪽은 전혀 보이지 않는 방어적인 형태의 집입니다.
이런 구조로 된 옛집을 처음 봅니다.
그래서 더욱 많이 놀랍고 신기합니다.
게다가 안채에는 이렇게 한쪽이 트여있어서 답답한 느낌은 하나도 없네요.
굴뚝과 장독대
부엌과 다락문
그리고 부엌에서 밖을 내다볼 수도 있고 연기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나무 창살 창문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서 마당에 풀이 제법 자라 있지만 나름대로 굉장히 깨끗하게 관리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안채 대청은 2 칸으로 되어있고 양쪽에 방이 있습니다.
참 정겹게 보이는 장독대입니다.
기왓장으로 빙 둘러 울타리를 삼은 게 이것 또한 아름답습니다.
바깥으로 두른 담장은 야트막합니다.
그 너머로 굉장히 오래되어 보이는 향나무가 보입니다.
대문채 옆에는 작은 문도 하나 더 있네요.
대청 옆으로는 방문 앞에 툇마루를 두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했네요.
이런 마루를 보면 어릴 적 생각이 납니다.
우리 집 마루는 언제나 윤기가 반질반질 났거든요.
할머니가 늘 걸레로 마룻바닥을 닦으며 '집은 늘 깨끗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네요.
아마도 이 호수종택 종부님도 늘 그렇게 반질반질 윤기가 나도록 쓸고 닦고 하셨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부엌에 들어가 봤는데
굉장히 넓습니다.
부뚜막이 넓고 길게 있어서 꽤 쓸모가 있었겠습니다.
여인들이 부엌 생활을 하기에 이만하면 정말 좋은 환경입니다.
크고 좋은 싱크대를 들여놓은 듯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댁 종부 님은 이곳에서 평생 동안 그 많은 식구들 먹을 음식을 장만하고 또 수도 없이 금세 다가오는 때때마다 제사 모시느라고 허리 펼 날 없으셨을 것 같아요.
그 분주하고 잰 손놀림이 보이는 듯도 합니다.
하하하~~ 그런 상상도 막 되네요. ^^
처마 너머로 보이는 지붕과 하늘
처마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사당
집 뒤쪽으로 돌아가니 여기는 굉장히 높다랗게 담장을 쌓았습니다.
그 뒤로는 대나무가 즐비하네요.
마치 집을 감싸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댓돌에도 오랜 세월이 느껴집니다.
심지어 반질반질하기까지 합니다.
안채 구경을 다 하고 밖으로 나와서 보면,
이렇게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 있네요.
참, 호수종택이 工 자형 건물이라고 했지요?
그걸 제대로 보려면 바깥으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돌아가야 볼 수 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저 문이 아까 본 부엌과 연결된 거랍니다.
부엌문을 열고 나오면 이렇게 또 작은 마당이 나오지요.
처마 밑으로 길을 따로 두어서 비를 피하며 다닐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때에도 계속 비가 오락가락했답니다.
이 뒤쪽으로 돌아와서 봐도 또 여러 칸이 보이네요.
구석구석 참 쓸모가 많게 만든 집입니다.
이 댁 종부 님이 살림을 하다가 혹시라도 시어머님께 심한 꾸중을 듣거나 남편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을 땐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엌에만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럴 때마다 뒷문을 열고 나와서 이 마당을 보며 꽃도 보고 눈물을 훔치면서 서럽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나마 종가 살이 힘들고 서러운 일 많아도 숨통은 좀 트였겠다!라는 위안도 됩니다.
하하하~!!!
오늘 제가 호수종택에 와서 이 댁 종부님 마음에 자꾸만 감정이 실리네요.
우짜지요? 호호호~
이렇게 뒤쪽 구경까지 하고 나니,
아! 진짜 工 자형 건물이 이런 거였구나! 하는 걸 알겠더라고요.
앞에서 보면 굉장한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입니다.
그러나 안채에 들어갔을 때는 어떤 위압감 같은 건 안 들었고요.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답니다.
호수종택 옆에 있는 향나무
딱 봐도 연세가 많이 드셨을 것 같네요. ^^
이 향나무도 정식 이름이 있다고 하네요.
<대전리 호수종택 향나무>라고 합니다.
이 향나무에도 사연이 있는데요.
영천 의병장이던 호수 정세아가 임진왜란 때 싸우다가 전사한 의병 동지들의 넋을 기리려고 심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전사한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살아있는 비목(碑木)인 셈입니다.
이번에는 사당 쪽으로 가면서 왼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는 담장이 낮아서 안쪽이 훤히 들여다 보입니다.
이렇게 봐도 지붕 쪽은 工 자가 보이네요.
또 안쪽은 트여있는 ㄷ 자이고요.
사당 앞에서 내려다본 호수 종택입니다.
참 좋은 집입니다.
사당은 들어가서 볼 수는 없었는데요.
이렇게 담장 너머로 구경할 수는 있답니다.
3칸짜리로 되어 있네요.
호수 정세아의 위패를 모신 <환구세덕사>라고 하는데 편액은 보이지 않네요.
영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아버지 호수 정세아 선생의 호를 따서 이름 붙이고 지은 <호수종택>
보통 관청이나 요사채 건물에서만 쓰인다는 특이한 구조 工 자형 건물 <호수종택>을 둘러보면서 종가를 지켜온 이 댁 종부 님 마음도 들여다본 그런 나들이였습니다.
참 푸근한 마음이 드는 고택 나들이었지요.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성 함허정] 섬진강 제월섬이 한눈에~ 섬진강 뷰, 최고야! (40) | 2021.09.26 |
---|---|
[청양 두촌사] 우연히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두촌 임정식 선생의 [순의 대제]를 보고 왔습니다. (14) | 2021.09.24 |
[남원 대곡리 암각화] 도대체 누가 왜? 빗돌을 파헤쳤나? (16) | 2021.09.16 |
[상주 쾌재정과 설공찬전] 홍길동전보다 100 년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38) | 2021.09.09 |
[김천 방초정]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운 비 내리는 방초정 풍경 & 최씨담과 몸종 석이 이야기 (35) | 2021.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