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 만에 다시 가본 쾌재정이 뭔가 달라졌다!
안녕하세요, 한빛입니다.
오늘은 참으로 가슴 벅차고 짜릿한 답사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무려 5년 만에 다시 발걸음을 한 곳, 바로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에 있는 '쾌재정(快哉亭)'입니다.
조선 중기 문신이자 최초의 한글 소설인 《설공찬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나재 채수(蔡壽) 선생이 중종반정 이후 낙향하여 지은 아름다운 정자이지요. 예전에 다녀와서 티스토리에도 글을 쓴 적이 있지요.
https://sunnyhanbit.tistory.com/123
[상주 쾌재정과 설공찬전] 홍길동전보다 100 년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홍길동전으로 알고 있었지요. 홍길동전은 1611년 광해군 때에 허균이 쓴 한글소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100 년이나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바로 상
sunnyhanbit.tistory.com
전율의 순간: 커다란 바위 꼭대기에 숨겨진 바위 글씨
"문화유산 안내판에도, 그 어떤 자료에도 없던 유적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사실 쾌재정보다 정자 뒤쪽에 있는 이안천 위로 지나가는 철교를 촬영하러 왔던 길이었지요. 혹시라도 운 좋게 열차라도 지나가면 좋은 일이고요. 그렇게 쾌재정으로 바로 가지 않고 정자 뒤쪽 이안천으로 먼저 갔답니다.

와서 보니, 정자 아래로 굉장히 큰 바위가 있더군요. 예전에 왔을 때는 이 뒤쪽으로는 와보지도 않았고요. 이렇게 큰 바위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요. 놀라움에 바위를 살펴보며 촬영을 하고 있는데, 뭔가 남다른 게 제 눈에 띄었답니다.

그 바위 표면을 편평하게 다듬고 세로로 깊고 힘 있게 새겨 넣은 의문의 '암각자(바위 글씨)'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돋았습니다. 공식 문화유산 안내판은 물론이고, 그동안 쾌재정 글을 쓰면서 갖가지 자료들을 찾았을 때에도 바위 글씨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봤답니다.
고증과 판독: '나재 채선생 장구지소(杖屨之所)'
"지팡이를 짚고 나막신을 신으며 거닐던 선현의 산책로"

틀림없이 저건 글씨가 맞습니다. 그래서 망원으로 당겨서 찍었어요.

좀 더 당겨서 보니, 대충 글자가 무언지 짐작이 됩니다.
아래쪽 글씨는 그나마 잘 보입니다. 틀림없이 선생 장구지소였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글자는 유추해 볼 수 있지요. 쾌재정을 지은 채수 선생의 호가 '나재(懶齋)'이니까........
이끼와 바위 굴곡 사이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한자의 획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판독을 했습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필체로 새겨진 여덟 글자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懶齋蔡先生杖屨之所 (나재채선생장구지소)
여기서 '장구지소(杖屨之所)'란 지팡이(杖)와 신발(屨)이 머문 곳이라는 뜻입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그들이 우러르는 선현이나 스승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여 자주 거닐며 사색하고, 학문을 닦으며 후학들을 기르던 유서 깊은 장소를 받드는 마음을 담아 바위에 '장구지소'라는 글을 새기곤 했습니다.
즉, 이 바위 글씨는 "이곳 쾌재정 주변 언덕이 바로 나재 채수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거닐며 자연을 벗 삼았던 거룩한 발자취가 남은 장소"임을 증명하는 증거인 셈입니다. 선생이 돌아가신 뒤,그의 학문과 기개를 흠모하던 후손들이나 영남 유림들이 뜻을 모아 이곳에 추모의 마음을 새겨 넣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쾌재정 뒤쪽 바위글씨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던 터라, 가슴이 마구 뛰더군요.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일반답사기나 인터넷 검색을 아무리 해보아도 이 바위 글씨의 존재를 말한 자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오늘 한빛이 가려져 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주한 찰나였습니다. 무척이나 가슴 벅찬 일입니다.
바위를 타고 쾌재정으로 가는 길

아마도 이 뒤쪽은 정비를 한 게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바위에다가 작게 홈을 내어 쾌재정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더군요.

오솔길을 만들고 가마니를 덮어 걷기에 편하도록 하고 벤치도 두었네요.

여기서 내려다보는 이안천과 철교 풍경이 멋스럽습니다.

행여 열차가 오려나? 하고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는 않았어요. 하루에 몇 번 지나지 않는 열차니까요.


혹시 여기 위에 올라와서 내려다보면, 바위글씨가 더 잘 보이지 않을까? 하고 가까이 가서 봤는데, 아래로는 낭떠러지이고 더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더군요. 이런 때엔 드론이라도 있었으면 싶더군요. 아마 그랬다면 정말 제대로 글자를 확인하고 찍었을 겁니다.






이렇게 뒤쪽 바위로 올라 쾌재정에 들어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풀이 많이 자라 있었거든요.


이런 안내판도 없었는데 새로 생겼습니다.

쾌재정 편액 글씨는 언제 봐도 힘차게 느껴집니다.

오호라~! 여기도 안내판이 하나 더 생겼네요. 아주 좋아요.



홍길동전보다 100년이나 앞선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설공찬전> 이 이야기는 예전에 쓴 글에 자세하게 다루었으니 참고하세요.



잘 정비된 쾌재정을 둘러보고 다시 뒤쪽으로 내려왔어요. 더 아래쪽도 쾌재정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중간에 만들어 두었네요.

바로 여기 세월교 앞에 있습니다.



발견의 기쁨을 나누며
5년 만에 다시 찾은 쾌재정은 제게 감히 '최초 발견자'라는 과분하고도 짜릿한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풀숲에 묻혀 흐릿하게 잊혀 가던 나재 선생의 발자취가, 마침내 제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 밖으로 다시 또렷하게 빛을 보게 된 것 같아 가슴이 깊은 감동으로 가득 찹니다.
안내판 너머 숨겨진 진짜 역사를 만나는 것, 이것이 바로 발로 뛰는 답사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요?
쾌재정을 방문하실 분들은 정자만 보고 돌아가지 마시고, 뒤편 언덕 아래 나재 선생이 거닐던 숨은 산책로와 바위 글씨도 함께 꼭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생생한 발견의 순간은 영상으로도 정성껏 제작하여 '한빛국가유산TV'에 업로드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쾌재정 바위글씨 존재 여부를 아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
★ 덧붙이는 글
오늘(6월 19일) 이 바위글씨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어 상주시청 국가유산 팀장 님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이 바위글씨를 기록한 책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김상호 님이 쓴 [경북 상주 지역의 바위글과 그림]이라는 책인데, <난재유허비>라는 항목에서 다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귀한 바위글씨를 문화유산 안내판에라도 함께 넣어서 널리 알려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부탁드렸습니다.
또 마을 주민이신 채귀묵 선생님(이안리 마을에서 만난 인터뷰한 분의 남편)께도 전화를 해서 여쭤봤습니다.
채 선생께서도 쾌재정 뒤편 바위에 글씨가 있다는 걸 알고 계셨어요. 마을에도 그걸 아는 분들이 많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어릴 적에 이안천에서 멱감고 놀던 시절 바위 위까지 올라가서 보셨다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나재 채수 선생님의 유적인 바위글씨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움 말씀 주신 시청 국가유산 팀장님과 이안리 마을 채귀묵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아래는 5년 앞서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 쾌재정을 소개한 영상입니다.
https://youtu.be/NCmKJwIPSSA?si=sAQksrm8Dtn_Uplh
https://sunnyhanbit.tistory.com/123
[상주 쾌재정과 설공찬전] 홍길동전보다 100 년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는 거 아시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홍길동전으로 알고 있었지요. 홍길동전은 1611년 광해군 때에 허균이 쓴 한글소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100 년이나 앞선 한글소설이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바로 상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327
상주<임호서원> 주소는 여기가 맞는데? 홍귀달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을 찾다!
앞서 허백당 와 묘소를 보면서 연산군의 폭정에도 꿋꿋하게 '바른말'을 하였던 선생의 충심을 잘 알 수 있었지요. 이번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는 서원을 찾아갑니다. 바로 입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281
[상주 이안천 풍경길] 이안천을 따라 아름다운 겨울풍경을 벗삼아 걷다!
한파가 불어닥친다더니, 볼을 에는 찬바람이 불던 날 상주시 이안천 풍경길에 다녀왔어요. 생각보다 너무 추워서 애를 먹긴 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올 수 있어 참 좋았답니다. 상주시 이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282
[상주 이안천 풍경길2] 이안천을 따라 지평저수지, 경들마을, 김충부자충효각, 인구문효자각, 관
상주시 이안면 여물리에서 시작된 을 따라 예까지 왔어요. 참 예쁘고 아름다운 풍경이라서 참 좋았답니다. 사실은 이안천 풍경길을 두 번에 거쳐 다녀왔답니다. 한 번은 두 주 앞서 다녀왔는데,
sunnyhanbit.tistory.com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예천 사부리 소나무, 임진왜란 전설을 품은 200년 당산나무의 안타까운 위험신호 (8) | 2026.06.19 |
|---|---|
| 서로 닿지 않으려 애쓰는 600년 배려 나무?[예천 수한리소나무, 한티소나무] (25) | 2026.06.11 |
| "아무리 힘들어도 지켜야지요" [영주 인수정, 취사별묘, 백은당, 취사종택에서 만난 종부님의 눈물겨운 신념] (24) | 2026.06.01 |
| 버들잎 따다가 물잔 위에 띄워 놓고~ 왕건의 마음을 사로잡은 물 한 잔![나주 완사천] (25) | 2026.05.26 |
| 낚시하며 유유자적 살고 싶었던 선비의 꿈, 어은 양사형과 [어은정], 강진 김씨 정려각 (21)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