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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버들잎 따다가 물잔 위에 띄워 놓고~ 왕건의 마음을 사로잡은 물 한 잔![나주 완사천]

by 한빛(hanbit)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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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 띄운 물 한 잔

 

"어라~! 이 이야기 많이 들어본 건데?"

 

여러분은 혹시 우물가에서 아리따운 아가씨가 지나가던 나그네한테 물 한 잔을 건네주며 버들잎을 따서 띄워 건네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나요? 어렸을 때에 많이 들어본 이야기인데 그 주인공이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몰랐지요. 그런데 실제 인물 가운데 이 주인공이 있다니? 무척 놀랍군요.

고려왕건태조비 장화왕후 오씨 유허비(나주 완사천)

 
지난주에 나주에 다녀왔는데요. 이번에는 촬영 같은 계획은 하나도 없이 오직 살방살방 나들이 삼아 가서 나주곰탕 한 그릇 먹고 올라오자며 나선 길이었지요. 

나주 곰탕거리

나주 곰탕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역시 그 가운데에서도 노안집과 하얀집은 오전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벌써 대기 줄이 굉장히 길게 늘어서 있더군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따로 하기로 하고요. 오늘은 나주곰탕 한 그릇 먹고 둘레에 있는 볼거리 하나쯤은 보고 가자 하여 들른 곳이랍니다. 바로 나주 완사천입니다.

나주 완사천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태봉의 장군으로서 영산강을 통해 나주를 찾았을 때의 일입니다. 군사들을 이끌고 가던 왕건은 목이 말라 완사천 샘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한 젊은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지요.

왕건과 나주 오씨 처녀의 만남


왕건이 여인에게 물을 청하자, 여인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버드나무 잎을 띄워 건넸습니다. 급히 물을 마시다 체하지 않도록 배려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감동한 왕건은 여인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에 반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이 여인이 바로 나주의 대호족이었던 오다련(吳多憐)의 딸이자, 훗날 고려 제2대 왕인 혜종(惠宗)을 낳은 장화왕후(莊和王后)입니다.

이 이야기가 깃든 완사천(浣紗泉)은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나주시청 앞)에 있는 역사 깊은 샘으로,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오 씨 부인)의 로맨스가 얽힌 설화의 배경지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1986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지요.

이 둘레를 역사공원으로 만들었더군요.
왕건과 장화왕후의 이야기를 부분부분 거님길 바닥에다가 새겼네요.

조형물이 있는 곳 둘레가 꽤 넓어서 산책 삼아 걸었는데요. 온통 토끼풀로 가득합니다. 저기 아래쪽에도 뭔가 있는 가 봅니다.

거님길에 새긴 글도 하나씩 읽어보며 걷습니다.

아하~! 저기도 조형물이 보이네요.

나주 완사천

아하, 여기가 바로 완사천이군요.
나주 오씨 처녀가 왕건한테 물을 건넸던 바로 그 샘이 여기에 있었군요.

지금도 물이 찰랑찰랑 차 있습니다. 

완사천 샘 곁에는 예쁜 처녀가 물 바가지를 들고 있는 조형물도 있습니다.

로맨스를 넘어 고려 건국 과정의 중요한 정치 배경이 된 곳

 

왕건한테 버들잎 하나를 띄운 물 한 잔을 건네는 나주 오씨 처녀(장화왕후) 조형물

 
이 설화는 단순히 남녀의 로맨스를 넘어, 고려 건국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정치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후백제의 견훤과 대립하던 왕건에게 영산강 유역의 요충지인 나주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기반이었습니다. 왕건은 나주의 유력 호족인 오다련 세력과 혼인 동맹을 맺음으로써 견훤의 배후를 견제하고 후삼국 통일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화왕후의 몸에서 태어난 왕건의 맏아들 '무(武)'가 바로 고려의 제2대 국왕인 혜종이 되지요.

 
완사천 바로 옆에는 혜종이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지었다고 전해지는 '흥룡사'라는 절의 터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터는 어디였는지 알려주는 글이 없어 잘 모르겠더라고요.
훗날 혜종이 태어난 이 일대를 '흥룡동(興龍洞)'이라 하였고 이 샘 이름을 완사천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둘레에 흥룡사(興龍寺)라는 절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혜종 임금의 소상을 모신 혜종사(惠宗祠)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혜종의 소상과 진영을 옥교자에 모시고 개성으로 옮겼다는 <금성일기 錦城日記> 기록으로 보아 이때 없어진 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보면, 나주 혜종사에 고려 혜종 임금의 모습을 실물 크기처럼 진흙으로 빚어 만든 '소상(塑像)'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1428년(세종 10년)에 조선 조정에서 "지방 사당에 고려 왕의 조각상을 두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하여 이 혜종의 소상을 고려 왕실의 발상지인 개성(숭의전)으로 옮겨갔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곳이 고려 왕실과 깊은 연관이 있는 성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나주의 역사로 볼때 그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되는 유적이자, 고려 왕조의 탄생 비화가 숨어 있는 매우 뜻깊은 장소이네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과 나주 오씨 처녀의 사랑이 시작된 곳이라 그럴까요? 이 둘레에 유난히 모텔이 많더군요. 굉장히 눈길을 끌었답니다. 하하하~!! 심지어 왕건 모텔이란 곳도 봤답니다. 
 

나라를 세울 때마다 등장하는 '우물가 처녀 설화' 조선, 고구려, 심지어 중국에서도?

고려 왕조를 세운 왕건과 나주 오씨 처녀의 우물가 처녀 이야기는 여기 말고도 또 여러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인데? 하고 궁금했던 게지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강씨 부인) 설화에도 이 이야기가 나온답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아직 장군이던 시절, 황해도 곡산(또는 전하 진주 등 전승에 따라 다름)에서 사냥을 하다가 몹시 목이 말라 우물가를 찾았습니다. 마침 그곳에서 한 아름다운 처녀가 물을 긷고 있어 물을 청했더니, 처녀가 바가지에 물을 뜨고는 둘레에 있는 버드나무 잎을 한 움큼 훑어 물 위에 띄워 주었습니다.
이성계가 "왜 잔인하게 마시기 불편하게 하느냐"라고 묻자,
처녀는 "갈증이 심해 급히 마시다 체하면 약도 없으니, 버들잎을 불어가며 천천히 마시라는 뜻이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지혜에 감탄한 이성계는 그녀를 둘째 부인으로 맞이했고, 그녀가 바로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 씨가 됩니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동명성왕)의 설화에도 나옵니다.
주몽이 부여를 탈출해 남쪽으로 도망치던 가운데 몹시 목이 말라 샘가를 찾았을 때, 한 처녀가 물을 떠 주며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야사가 일부 지역의 구전 전설로 전해집니다. 이 여인은 훗날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건국하는 호족 세력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중국의 항우와 우미인(우희)의 설화에도 등장하는데, 초나라의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이동하던 중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했습니다. 이때 한 처녀가 물에 버들잎(또는 차 이파리)을 띄워 주었고, 항우가 그 지혜와 배려에 반해 아내로 맞이했으니 그녀가 바로 그 유명한 우미인(우희)이라는 전설입니다. (다만 이는 정사 삼국지나 사기 같은 기록이 아닌 민간에서 전해지는 야사입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될까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때마다 등장하는 이런 이야기는 지혜로운 국모(國母)의 자질을 증명하려고 나온 말인 듯하네요. 새 왕조나 가문을 일으킬 영웅의 배필은 미모뿐만 아니라 '지혜와 사려 깊음'을 갖추어야 함을 말해주고요. 또 왕건(개성 호족)이 나주 오 씨 세력과 손을 잡을 때나, 이성계(동북면 쌍성총관부 출신)가 신덕왕후의 가문인 황해도 곡산 강 씨(당대 엄청난 권문세가)와 동맹을 맺을 때처럼, '타 지역의 군사 영웅이 현지의 유력 호족 세력을 흡수하는 과정'을 로맨틱하게 그려 왕조의 정당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던 까닭이 아니었을까요?

우리한테 매우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새로운 나라를 여는 찰나마다 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라 볼 수 있겠네요. 
 
아울러 하나 더 덧붙이자면,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가 만난 우물 이야기의 실체가 되는 곳이 여러 곳 있다고 합니다. 서울 중구 정동의 '정동 우물터'가 있고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용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 따르면 다산 정약용의 시 등에서 가장 정확하게 꼽히는 장소라고 하는데 조선 내내 이 이야기가 정설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난 2025년 2월, 가장 최근에는 경남 진주 월아산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갈마정' 우물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최근 진주에서 이성계가 신덕왕후를 만나 버들잎 물을 청했다는 옛 우물터가 실제로 발견되어 고증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https://www.newsgn.com/news/articleView.html?idxno=466734

‘버들잎 띄운 우물물’…신덕왕후 설화 속 ‘갈마정’ 우물 발견?

이성계가 남해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올라가는 길에 진주 속사마을(옛 사월마을)을 지나다 목이 말라 마침 갈마정 우물에서 물을 긷는 처녀에게 물을 청했다. 이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뜨더

www.newsgn.com

 
왕조의 시조들이 유력 호족의 딸을 만나는 장소가 왜 하필 '우물가'였는지, 완사천의 풍경을 보면서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역사의 중심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울 때마다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똑같은 게 무척 신기하기도 하고 또 우리 역사를 되짚어보는 재밌는 시간도 되었네요. ^^
 

완사천전남 나주시 송월동 10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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