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갓집 전통과 우리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오래된 정자와 고택 등 우리 문화유산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남모를 헌신과 눈물이 깃들어 있을까요. 이번에 찾은 경북 영주의 인수정과 취사종택에서 저는 우리 전통문화유산을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도 고단한 길인지를 새삼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스무 해 넘도록 우리나라 곳곳에 숨은 전통문화유산을 찾아다니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또 그것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영주 취사종택에서 만난 종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네요.

올해 여든이 되신 김정필 종부님. 허리를 다쳐 아픈데도 먼 길 찾아온 나그네한테 시원한 음료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한사코 건네시던 종부님의 따뜻한 웃음 뒤에는 모진 세월의 풍파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종갓집 13대손 외동아들이었던 남편을 30대 젊은 나이에 뺑소니 사고로 먼저 앞서 보내고, 홀로 세 아들을 키우며 3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이 큰 종가를 지켜오신 분이었습니다. 해마다 수십 명의 집안 어른들이 모여 밤을 지새우며 모시던 불천위 제사였지만, 이제는 제사를 모시러 오던 어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먹고사는 게 더 바빠 사당을 찾지 않는 후손들의 씁쓸한 현실 앞에 종부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내 부모도 못 모시는데 사당 제사가 문제가 아니지요. 또 먹고사는 게 더 문제니까 왜 안 그러겠어요?"
라며 담담하게 읊조리시던 말씀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정자의 편액과 수백 점의 유물들을 도둑맞았다가 10년 만에 극적으로 되찾아 국학진흥원에 기증하기까지, 종가를 지켜온 삶은 매 순간이 눈물겨운 투쟁이었습니다. 이제는 허리를 다치셔서 더 이상 제사조차 모실 수 없게 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아무리 어렵더라도 기꺼이 해야 하는데..."
라며 안타까워하던 종부님의 눈빛에서 무너져가는 우리 전통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마지막 신념을 보았습니다.

종부님의 깊은 주름만큼이나 애잔한 서사를 간직한 영주 감실마을. 세상의 권력을 버리고 은둔을 택했던 선비 취사 이여빈 선생의 삶과 그 흔적들, 그리고 그 숨결을 온몸으로 지켜낸 종부님의 가슴 아프고도 따뜻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실래요?
취사 이여빈 선생의 삶과 흔적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 1리를 감실(鑑室)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 있는 정자를 찾아왔는데요. 바로 <인수정>입니다.
인수정은 조선 중기 때 학자로 호가 ‘취사(炊沙)’인 이여빈(李汝馪) 선생의 흔적이 깃든 정자입니다.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자 인수정과 함께 오늘 둘러보려고 한 곳들이 다 보이네요.

나무 한 그루가 매우 멋스럽고 곁에 있는 정자와 아주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네요. 바로 인수정입니다. 그리고 왼쪽 저 뒤쪽에 보이는 건물은 <백은당>, 또는 <백은정>이라고 하는 서당 겸 정자인 건물입니다.

또 인수정 뒤쪽으로 오른쪽을 보면, <취사별묘> 사당이 있고 그 곁에는 <취사종택>도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 안에 우리 문화유산이 여러 곳이 있어 한번에 다 둘러볼 수 있는 곳이네요.

이여빈 선생은 이곳 감실 마을 입향조입니다.
우계 이씨가 영남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은 퇴은 ‘이억’ 선생이 시작인데요. 이억 선생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요동 정벌에 나가 공을 세워 밀직부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려가 망하자 미련 없이 관직을 내던지며 순흥에 내려와 은거했고 그렇게 우계 이씨 영남 입향조가 되었습니다.

또 이억 선생의 후손으로 단종 폐위 때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분이 있는데 바로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 1435~1528) 선생입니다. 인수정 정자의 주인인 이여빈 선생은 이분들의 직계 후손입니다.

이여빈 선생은 임진왜란과 계축옥사 또 인조반정과 호란이 일어나며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대의명분을 지킨 선비입니다. 159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인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일으킵니다.

퇴계 이황과 이언적이 문묘에 종사되는 것을 반대한 이이첨과 정인홍 등을 규탄했고, 광해군 때 인목대비 폐모론이 나오자 광해군에게 이들을 보살필 것을 상소합니다. 궐문 앞에서 7일 동안이나 엎드려 간언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상소를 여러 번 했지만 나라는 어지럽게 돌아갔고 이에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이곳에서 머무르며 시문과 후학양성을 하며 생을 보냅니다.
선생은 영주에 머무르며 향토 연구에 뜻을 두었고, 여러 자료를 모으고 다듬어서 가장 처음으로 <영주지>를 편찬합니다. 영주의 여러 이야기 자료를 모은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편찬이 마무리될 즈음인 1625년에 영주 이산서원에서 여러 관계 인사들과 심의를 거쳤고 이름을 <영주지>라고 했습니다.
이여빈 선생은 서문까지 다 써 놓았지만 간행하는 것까지는 못 보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마무리된 <영주지>는 지금 소수박물관에 보관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여빈 선생의 삶이 깃든 인수정

인수정은 1600년 무렵 처음으로 감실 마을 야산자락 끝에 실개천을 앞에 두고 터를 잡고 세웠습니다. 지금 건물은 여러 번 고쳐 지어서 조선 후기 때의 건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인수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 크기의 정자로 왼쪽은 마루이고 오른쪽은 온돌방을 두었습니다. 툇마루를 내고 헌함(軒檻)을 냈습니다.

인수정 이름에는 나무에 기대어 집을 지었다는 뜻도 있고, 숨어 지낸다는 뜻을 품어 은둔하며 보내는 정자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네요. 감곡마을에 내려와 이곳 인수정에서 지내며 여러 문인들과 교우를 나누었습니다.

둘레 풍경을 돌아보면은 이름처럼 숨어 지낸다는 뜻이 와 닿는데요. 그 예전과는 달라진 땅 모양이겠지만 지금 정자가 놓인 터와 둘레 모습을 견줘보면 그 느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나무에 기대어 집을 지었다는 이야기처럼 인수정 옆에는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나무와 정자, 서로는 얼마나 긴 세월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요.

이여빈 선생은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서인 정권에서 불렀지만 조정에 나가지 않았고요. 인수정 가까이에 초가로 지은 석양와(夕陽窩)를 거처로 삼아 지냈다고 합니다. 지금 그 건물은 없어졌습니다.
선생은 호를 '취사(炊沙)'로 했는데요. 취사 뜻에는, 모래로 불을 땐다, 뭔가를 해도 되지 않는다, 또 늦은 나이에 고생스럽게 일을 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뜻을 담은 호라고 합니다.


정자를 지나 나뭇가지에 머무르던 시간은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바삐 지나갔나 봅니다. 긴 세월이 깊이 박힌 정자는 어쩐지 쓸쓸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고풍스럽게 낡았다고 위로를 던져보지만, 건물은 세월을 가득 담아 낡은 주름을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수정엔 왜 현판들이 하나도 없지? 그 기막힌 사연은?

인수정에는 보통 정자에서 보는 현판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하다못해 정자의 이름표인 <인수정> 편액도 안 보이고요. 또 북벽 김홍제와 신야 이인행을 비롯해 시판이 여러 개 걸려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까닭이 무얼까? 몹시 궁금했답니다. 나중에 취사고택 종부님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더군요.

한때 9개의 시판이 걸려있던 아름다운 인수정이었으나, 오래 앞서 도둑이 들어 현판을 떼어가고 심지어 톱으로 썰어가기까지 했던 가슴 아픈 사건이 있었더군요. 인수정뿐 아니라, 취사별묘 사당에 있던 유물들도 모조리 훔쳐갔다고 하네요.

10년 뒤 범인이 자수를 해와 이 댁 아드님과 문중 어른을 모시고 두 차례나 찾아가 서울 서초구의 한 지하창고에서 극적으로 유물들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좋은 것들은 다 팔아먹고 남은 유물들만 되찾았는데, 그 수가 무려 270여점이 된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 유물들을 모두 안동 국학진흥원에 기증해 안전하게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이여빈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는 취사별묘와 재사

별묘는 사당과 재실을 함께하는 곳으로 앞면 세 칸 옆면 1칸 반 되는 작은 건물로, 마을 앞에 있던 것을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취사별묘는 문이 잠겨 있었는데요. 때마침 취사종택 종부님께서 나오셔서 열쇠를 내주셔서 문을 열고 둘러볼 수 있었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앞에는 벽체가 없는 퇴칸이고 우물마루를 깔아 놓은 대청과,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입니다.

취사별묘는 영주시에서 따로 관리를 한다고 합니다. 한 주에 한 번씩 공공근로 하는 분들이 오셔서 청소도 하고 꽃도 심고 깨끗하게 돌본다고 하시더군요. 오늘 이곳에서 보는 건물들 가운데 가장 깨끗한 공간이 바로 취사별묘였답니다.

사당은 흙돌 담장을 잘 쌓아서 별묘를 둘러싸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이여빈 선생의 묘소를 관리하려고 지은 제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종부님께 여쭤보니, 그 옛날 머슴이 살던 곳이라는데 바로 관리사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입니다.

관리사 뒤쪽으로는 취사종택인데, 지금은 일자로 된 안채만 남아있습니다.

그 앞으로는 집을 고쳐지어 김정필 종부님이 살고 계신 집이랍니다.

또 취사별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 인수정 맞은편에는 <백은당(백은정)>이 있습니다.

백은당(또는 백은정)은 조선 후기에 지은 건물로 조선 숙종 때의 문인이자 학자인 이진만 선생이 세운 서당이자 정자입니다.인수정에서 살펴본 이여빈 선생의 후손입니다.
정자 앞에는 연못도 있었다는데요. 지금은 그 흔적도 안 보입니다. 처음에는 산 중턱에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후대에 와서 지금 이 자리로 옮겨 지었고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백은정에서도 건너편에 인수정이 잘 보입니다.

오늘은 영주시 부석면 감실 마을에서 취사 이여빈 선생의 삶이 깃든 인수정과 취사별묘, 취사종택, 백은당 등을 둘러봤는데요. 특히 종택의 종부님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매우 뜻깊었습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우리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며 많이 다니면서 허물어져가고 관리가 잘 안 된 곳을 보면, 솔직히 속상할 때가 많았답니다. 하지만 우리 전통문화유산을 지키고 보존해 가는 일이 세대가 바뀌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날이 갈수록 힘이 들고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답니다.
또 후손들이 나서서 잘 관리해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 일이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게지요. 그나마 문중의 어른들이 살아계실 때라면 모르겠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어려운 일을 손수 나서서 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런 안타까운 현실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에 이곳에서 만난 김정필 종부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부님의 마음만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기꺼이 해야 한다는 신념이 넘친다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종부 님께서 지금 허리를 다치고 건강이 허락지 않아 평생 동안 모셔왔던 4대 봉사와 불천위 제사를 올해부터는 손수 모실 수 없게 되어 너무나 죄송하다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였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겠어요? 다만, 우리 종부님이 빨리 회복하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끝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정필 종부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인수정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의상로1208번길 119-38
(지번)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436
백은당(백은정) - 경북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438
취사별묘 - 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443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8r6gkwT1GOY&t=17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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