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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낚시하며 유유자적 살고 싶었던 선비의 꿈, 어은 양사형과 [어은정], 강진 김씨 정려각

by 한빛(hanbit) 2026.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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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계산을 바라보는 선비 양사형

오수천이 이곳에서 섬진강을 만나 함께 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섬진강 앞에 아담하고 멋스러운 정자가 있는 이곳은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마을>입니다.

구남마을은 금거북이가 '남수'로 내려온다는 말로 '금구남수'형상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보통 풍수지리에서는 '금구음수(金龜飮水)'형상이라고 한답니다. 금빛 거북이가 머리를 쭉 빼고 물을 마시는 듯한 형국으로, 거북이의 장수·귀함과 함께 재물 번성(부)과 장수를 상징한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마을 앞에 섬진강이 흐르고 그 안에다가 터를 잡고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으니 명당에 드는 마을이네요.

 

이 마을에 1567년에 터를 잡고 그 후손들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그 입향조가 바로 남원 양씨, 어은공 양사형 선생이랍니다.

구남마을에 들어서니 저기 산 아래 <섬진강 미술관>이 보이네요. 

오늘 우리가 찾아온 곳은 바로 이 마을 입향조인 어은 양사형 선생의 발자취가 깃든 정자를 보러 왔답니다.

강물이 꽤 넓게 자리 잡고 흐릅니다.

바로 그 앞에 양사형 선생의 정자인 <어은정>이 있습니다.

섬진강은 곳곳이 참 멋스러운데요. 이곳 또한 그 멋스러움을 즐기며 둘러보기에 참 좋은 곳이더군요.

또 섬진강 자전거길도 바로 여기 어은정 앞으로 지나가더군요.

마을 끝에 자리 잡고 있어 굉장히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었답니다.

 

구남마을 입향조 어은 양사형 선생의 정자 <어은정>

어머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요. ^^

어은정

어은정(漁隱亭)은 어은 양사형(1547∼1599) 선생이 조선 명종 22년(1567)에 분가하면서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어은(漁隱), 이름에 담긴 뜻은 낚시하며 자유롭게 지낸다는 건데요. 정자를 처음 지을 때는 '영하정'이라는 이름이었고요. 몇 번 고쳐 지으면서 양사형 선생의 호를 따서 어은정으로 했습니다.

어은정 편액은 선생의 9세손인 양재절이 쓴 글씨라고 보이는데, 글자체가 흘림이라 알아보기가 쉽지 않네요.

어은 양사형 선생은 선조 때인 1579년에 생원시에 합격했습니다. 그 뒤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서 군자감의 봉사, 직장 등을 역임하였지요. '군자감'은 조선시대 관청으로 군수품을 관리하는 일을 하던 기관입니다.

1592년 벼슬을 그만두고 남원으로 내려왔는데요. 그해 여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을 모아 금산으로 보내는 등 왜적에 맞서 여러 공로를 세웁니다.

선생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병조정랑에 올랐고 이어서 춘추관 기사관, 남평현감, 예조정랑을 거쳐 1599년에 영광군수로 재임하다가 임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훗날 승정원 도승지로 증직 되었고,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습니다.

어은정은 나지막한 담으로 둘렀고요.

정자 건물은 앞면 3칸과 옆면 2칸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아담한 크기입니다. 여러 차례 고쳐지었다고 하고요. 지금 건물은 1919년에 고쳤다고 합니다. 

지금 현제 이 어은정을 관리하는 곳은 남원 양씨 어은공파 종중이라고 하네요.

정자는 호남 특유의 방식으로 가운데 방을 두고 빙 둘러 툇마루를 놓은 모습입니다.

담장 안쪽 정자 옆에는 빗돌이 있습니다. <어은 남원 양공 기적비>를 비롯해 모두 3기가 있습니다.

어은정은 관리도 무척 잘하고 있더라고요. 둘레가 아주 깔끔하더라고요.

마루에 어은정 중수기를 비롯해 시문 현판이 여러 개 걸려 있습니다.

정자 마루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니, 강물이 흐르고 참 좋습니다. 저 담장만 없다면 훨씬 더 잘 보일 듯하네요. 어은정 이름만큼이나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자 했던 선생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또 정자 앞에는 벚나무가 꽤 크던데 아마도 우리가 다녀온 뒤 바로 벚꽃이 활짝 피어서 더욱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누명을 쓰고 떠난 남편을 기다린 여인의 절개, 강진 김씨 이야기 

贈淑夫人 道康金氏 旌閭(증 숙부인 도강 김씨 정려)

열부 강진 김씨를 기리는 정려각이 어은정 바로 옆에 있습니다.

'강진 김씨'를 왜 '도강(道康)'이라 하지? 잠깐 의아했는데 강진의 옛 지명이 도강이라고 하네요.

 

도강현(道康縣): 현재 강진군의 북쪽 지역(성전면, 작천면, 병영면 등)의 옛 이름입니다.
탐진현(耽津縣): 현재 강진군의 남쪽 지역(강진읍 일대)의 옛 이름입니다.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이 도강의 '강(康)'자와 탐진의 '진(津)'자를 한 글자씩 따서 오늘날의 강진(康津)이라는 지명이 탄생했습니다.

이 정려각의 주인공인 강진 김씨 부인은 바로 어은 양사형 선생의 큰며느리입니다.

남편 양시진이 병과에 급제했는데, 광해군 때에 지평이란 벼슬을 했고, 그때 이이첨과 정인홍 등 대북파가 능창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반역을 꾀했다는 그런 사건에 연루되는 누명을 썼답니다.

그 때문에 장형을 받고 함경도 종성으로 귀양을 가게 되지요. 1615년 11월 18일 철령 너머로 귀양 가다가 덕산에 이르렀을 때 43세 나이로 남편 양시진이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강진 김씨는 통곡을 하였고, 3년 동안 해를 바라보지 않고 삼년상을 극진히 치렀다고 하네요.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누명을 썼다는 게 밝혀졌고, 양시진의 관직이 복권됩니다. 그리고 이조참의에 추증되었지요.

또 조정에서는 강진 김씨에게 정려를 내려 그 뜻을 기렸습니다.

강진 김씨가 지은 시, 하청송

하청송(河淸頌)

[黃河淸 星君出 雪人寃 乾坤闊]

언제나 탁류만 흐르는 황하에

맑은 물이 흐르니

어진 임금이 나왔고

어진 임금이 원한을 풀어주니

온 천지가 기쁨에 넘쳤다

 

39세에 남편을 잃은 김씨 부인은 3남 4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1650년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려각 안에 있는 정려비에는 도강 김씨가 아니라 강진 김씨로 썼네요. ^^

'양시진의 처 증 숙부인 강진 김씨 지려'라고 쓴 정려 현판도 걸려 있습니다.

어은정 바로 앞에는 어은 양사형 선생을 기리는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채계산을 바라보며 사색하년 양사형>이 작품 제목이네요. 김재성 대표작가와 임준영, 김한라 작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담장을 따라 정자를 보니, 그나마 담이 낮아서 보기에 참 좋네요.

어은정 앞으로는 섬진강 자전거길이 이어집니다.

오늘은 섬진강 가 아주 멋진 곳에 자리 잡은 어은정을 둘러보며 양사형 선생의 삶을 함께 돌아봤습니다. 또 그 곁에 있는 선생의 며느리인 강진 김씨 부인의 열행 이야기도 살펴봤는데요. 감성이 흐르는 섬진강 둘레 풍경과 어우러져 옛사람의 이야기도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은정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길 107-32

 

※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tNW612HY2PI?si=hwtf1R1mqETxIa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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