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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그냥 끼적임

천생 여자 고운 엄마, 이름마저도 숙녀였다! [재미난 경북 예천 말씨(사투리)2]

by 한빛(hanbit) 2024.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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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짝 말고 누버있어야지 자꾸 홱홱 돌리고 그카네~~”
“물리치료도 받지말고 가마이 누버있어야지~ 원장이 고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고쳐야 되는기라~”

오늘 예천 말씨는 거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지요?

오늘은 예천 병실에 함께 계셨던 어르신 이야기를 짤막하게 할까 합니다.
내가 처음 병실에 입원했을 때부터 계셨던 분인데, 전동 휠체어를 타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에 금이 가는 바람에 입원을 하셨다고 해요.
시골 마을 어르신들은 이 전동 휠체어가 굉장히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곤 하지요.
또 가까운 마실을 오갈 때에는 유모차나 아예 유모차를 의자로 만들어서 나오는 어르신용 보행기가 없어서는 안 될 ‘탈것’이지요. 
아, 이런 걸 통틀어서 ‘실버카’라고도 하더군요.
이런, 오늘은 실버카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었고요.

아무튼 전동 휠체어를 타다가 사고가 나서 입원하신 분이 우리 병실에 두 분이나 계시더라고요.
편리한 만큼 위험하기도 한 거라서 정말 조심해서 운전하셔야 합니다.

전동 휠체어 사고로 나보다 먼저 입원해 계셨던 어르신 한 분이 저한테 남달리 잘 대해주셨지요.
때마침 명절 연휴 때라서 자녀들과 친지들이 번갈아가며 병문안을 오셨는데 오는 이들마다 명절 음식을 가지고 왔답니다.
덕분에 온 병실 사람들한테 그 많은 음식들을 골고루 나눠주셔서 정말 잘 먹었거든요.
전에도 몇 차례 이야기했지만, 저는 지금껏 먹어본 그 어떤 명절 음식보다도 훨씬 더 많이 먹었고요. 또 병실에서 먹는 거라 더더욱 맛있었답니다.

말씀도 어찌나 조곤조곤 살갑게 하시는지 몰라요. 
게다가 무려 스무 살이나 가까이 어린 저한테도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시는데 그러면서도 그 말투에 정이 철철 넘치는 게 보였답니다.
어떤 때는 친정 엄마가 딸 대하듯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저도 정말 기쁘고 따스한 정을 받는 게 참 좋았답니다. 이 어른의 이름 또한 ‘윤숙녀’였답니다. 그야말로 천생 여자였어요. 

“꼼짝 말고 누버있어야지 자꾸 홱홱 돌리고 그카네~~”
“물리치료도 받지 말고 가마이 누버있어야지~ 원장이 고치는 게 아니라 당신이 고쳐야 되는기라~”

"꼼짝 말고 누워있어야지 자꾸 움직이고 그러네요."
"물리치료도 받지 말고 가만히 누워있어야 해요. 원장님이 고치는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 고쳐야 하는 거예요."

바깥 어르신도 여러 번 다녀가셨는데, 어르신 또한 안주인한테 살갑게 대해 주시는 게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니었어요.
경상도 남자의 특유의 툭툭 내뱉는 말투이지만 그 말속에도 아내를 생각하는 따뜻함이 묻어나더라고요.
숙녀 엄마(병실에서 제가 어르신을 가리켜 말할 때 쓰던 말)는 이런 바깥어른의 말을 듣고 겉으로는 잔소리한다고 하셨지만 그 속내는 경상도 사내의 나름 따뜻한 말투임을 익히 알고 계시더라고요. 왜 안 그러겠어요? 살아온 세월이 얼만데.......^^

아무리 고관절에 금이 갔다고 해도 가만히 누워만 있는다고 낫는 건 아니겠지만, 바깥어른 생각에는 움직일 때도 조심조심 천천히 움직이고 되도록이면 많이 움직이지 말라는 뜻으로 하신 말이 틀림없지요.

숙녀 엄마는 저보다도 일주일 먼저 퇴원을 하셨는데, 빨리 건강해져서 퇴원하는 분을 앞에다 두고 축하를 해드리고 보내야 했는데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서 헤어지는 게 너무 서운했나 봅니다.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고 울컥하는 바람에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졌답니다.
엄마 또한 그런 나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왜 울어~ 울지 마~ 얼른 건강해져서 빨리 퇴원하고 구미 가거든 연락해요”

하면서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가셨답니다.


그 뒤, 딱 일주일이 되던 날에 숙녀 엄마가 병실에 잠깐 찾아왔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는데 물리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우리가 생각나서 올라왔다고 하셨어요.
굽은 허리로 아직 다리가 온전히 나은 게 아니라 성치도 않은데 일부러 3층까지 올라와서 우리를 보러 오셨다고 하니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그리고 저를 보자마자 굽은 허리를 바짝 세우고 손을 잡아주며 반가워하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더라고요. 

곱디고운 숙녀 엄마랑 함께 찰칵~!


그게 인연이었을까요?
나 또한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하느라고 예천 권병원에 여러 차례 갔는데 네 번째 갔을 때 또 숙녀 엄마를 만났답니다. 그때도 정말 반가워하시며 나를 안아주셨지요.
그날, 반갑고 기쁜 마음에 사진도 한 장 찍었답니다.

숙녀 엄마를 생각하면 나한테는 세상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친정엄마’라는 낱말이 떠오른답니다.
제가 백일 전에 엄마가 돌아가셔서 엄마 얼굴도 모르거든요. ㅠㅠ
통원 치료를 하러 가서 만났던 날, 엄마네 집 주소도 알아 왔네요.

“예쁘고 고운 숙녀 엄마~! 이다음에 엄마 집에 꼭 놀러 갈게요.”

맘씨 곱고 천생 여자인 울 어무이~! 이름마저도 ‘숙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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