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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의 그냥 끼적임

아무 연고도 없는 [예천 권병원] 병실, 아픔 속에서도 웃음꽃을 피웠던 이야기

by 한빛(hanbit) 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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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권병원에서

뜻하지 않게 이렇게 오랫동안 병실 생활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난 9월 15일 한가위 명절 연휴 첫날, 예천에 아주 멋진 서당이 있다 해서 구경하러 갔답니다.

예천 물계서당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있었던 조선후기 김방경 등 4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었던 물계서원(勿溪書院)이 그 뿌리랍니다. 고종 때 서원철폐령 때문에 훼철되고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한 채 있다가 지금은 물계서당(勿溪書堂)만 서원이 있던 자리에다가 세웠다고 합니다.

 

너른 터에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굉장히 많은 곳이었어요.

서당 건물 자체도 높다란 비탈 위에 세워져 있었고 높다랗게 기단까지 쌓고 그 위에 세워진 거랍니다.

아, 그런데 서당 촬영 시작한 지 채 10분도 안 되어서 서당 건물에는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오른쪽에 보이는 비탈진 곳에 올라가서 팔을 높게 번쩍 들고 촬영하다가 내려오면서 그만 비탈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지요.

미끄러져 자빠지면서 아~~!......................................

'이건 뭔가가 다르다'라는 걸 바로 알아챘어요.

보통 때에도 제가 잘 자빠지는 편이에요. 많이 조심해서 다니기는 하지만 자주 넘어져서 발을 삐거나 무릎이 까질 정도로 다칠 때가 많았지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때 느낌과 사뭇 달랐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나지를 못하겠더군요. 어떻게든 일어나서 걸어보려고 발을 내디뎠는데 발 앞쪽을 잠깐이라도 디디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뼈에 이상이 있구나!

예천 권병원

119 구급차에 실려 <예천 권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어요. 명절 연휴라서 구미로 돌아와서 받아줄 병원이 없던 터라 생각 끝에 그만 예천 권병원에 입원을 하기로 하였답니다.
여기에서도 수술을 하려면 명절 연휴라서 바로 안 되고 연휴가 끝나는 19일에 된다고 합니다.그렇게 아무 연고도 없는 예천에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연휴가 끝나면 구미로 돌아와서 수술을 할까 했는데, 세상에나! 어느 병원이든지 이런 환자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답니다.게다가 우리 차로 구미까지 가야 하는데 발을 계속 심장보다 높게 들고 있어야 하고 아직도 통증이 많기 때문에 구미까지 가는 것 조차도 너무 힘들었지요.
그래서 포기~
끝내 예천 권병원에서 수술까지 받기로 했답니다.
병실에서
시골 마을 병원이다 보니, 병실은 5인실인데 커튼도 하나 없고 모두 열려있는 공간이었어요. 도시 병원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입니다. 처음엔 정말 놀랐어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병실에는 다섯 사람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모두 70~95세까지 할머니들이었어요. 가장 젊은이가 바로 나였답니다. 내 나이도 예순을 바라보는데...

 

너나할 것 없이 나눠주던 음식

명절 연휴다 보니, 더더욱 수많은 보호자들이 오고 갑니다. 모두들 명절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와서 먹었어요. 그리고 그 음식들을 절대로 혼자 먹지 않더군요.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어요. 그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도시에 있는 병원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답니다.
어느 정도는 나눠 먹을 수 있겠지만 모든 음식을 나누어주는데 그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이 그렇게 하더군요.덕분에 나는 병실에 있는 동안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명절 음식 보다도 더 많이 먹었답니다. 
잡채랑 송편, 전, 햇과일까지 그 어느 것도 나눠주지 않은 음식이 없었어요. 거기에다가 또 각종 음료수(심지어 박카스, 까스활명수, 쌍화탕)까지도 다 나눠 주더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예천 권병원
9/19일, 명절 연휴가 끝나자 바로 수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명절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래층 외래 환자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그날 오후 4시에 수술을 했지요.

수술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고  5시30분에 병실에 돌아왔는데, 허리 척추에 마취주사를 놓고 하는 수술이었고
허리 아래로는 그 어떤 감각도 없었답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여럿 들어와서 수술을 하는데 정신이 또렷해서 다 듣고 화면도 보았는데 잠깐 자고 일어난 듯 진짜 잠깐만에 끝이 났어요.

 

"이런저런 소리가 다 들리니까 잠자게 해드릴게요." 하더니 바로 잠이 들었나 봅니다.

수술을 마치고 저체온증이 와서 어찌나 춥든지...
산소를 코에 대고 한 시간 쯤 있으니까 몸이 다시 따뜻해지더군요. 무통주사를 맡고 있는데도 진짜 너무나 아팠어요.
통증이 '○ ○ ○ 수술' 5시간 넘게 하고 와서 겪었던 아픔보다도 더 아팠답니다.

2박3일 동안 무통주사와 진통제, 항생제까지 계속 맞으면서 아픔을 참아야 했어요. 게다가 하필이면 내 옆자리에 그날 새로 들어온 환자가 치매 환자라서 밤새 소리 지르는 바람에 더더욱 아프고 견디기 힘들었답니다.
병실에 있는 동안 내 옆자리는 수도 없이 환자가 바뀌었답니다. 그것도 거의 치매 환자로만...
힘든 일도 많았지만 어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답니다. 어른들도 모두 한결같이 저한테 굉장히 잘 해주었지요. '젊은 사람이 어쩜 그렇게 나이 많은 늙은이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한다'면서요.
그것 뿐 아니었어요. 병실에 계시던 보호자 두 분께서 차례로 내 머리까지 감겨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휠체어를 탄 채로 머리를 감겨주는데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답니다. 또 어떤 환자의 간병사로 오신 박순자 여사님은 병실에 있는 모든 환자들을 마치 자기 환자처럼 손발이 되어주며 도와주시더군요. 참 놀라운 일이었어요. 
도시에 있는 병원, 병실에서는 절대로 느껴볼 수 없는 살가운 정(情)이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병실이 가장 화기애애하고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까지 났다고 하네요. 간호사 쌤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답니다. 이런 데에는 나 또한 한 몫을 한 듯해서 참 기분 좋았답니다. 긍정으로 살고 밝고 낙천적인 성격이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이번 기회에 또 다시 배웠답니다.
 
그렇게 그렇게 20일 동안 병실 생활을 끝내고 10월5일에 퇴원을 했답니다.
스무날 동안 날마다 진통제와 항생제를 맞으면서 아픔을 견디며 살았지요.
마지막 날, 통깁스를 하고 구미로 돌아왔답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한동안 해야 한다더군요.

어차피 수술까지 한 곳이라 나들이 한다는 생각으로 통원치료를 할 생각이랍니다.

 

구미로 돌아오는 길엔 어느새 들판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네요. 억새도 피었고요.
그 뜨겁던 뙤약볕을 받으며 갔던 예천 나들이가 이렇게 뜻하지 않게 사고가 나는 바람에 오랫동안 병실 생활을 해야 했지만 병실에서도 웃음꽃을 피우며 지낼 수 있었던 게 무척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답니다.
퇴원할 때 같은 병실에 계시던 어른들께서 저마다 과자 하나, 박카스 하나, 사과 하나, 등 퇴원해서 더 건강하게 지내라며 건네주시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또 모두들 헤어지는 게 서운하여 눈시울까지 붉어지던 걸 함께 흐려졌던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답니다. 
예천 권병원 307호에 계시던 어무이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시고 병원에는 이제 그만 오세요.^^
그리고 시간 때때마다 오셔서 살갑고 정겨운 말투로 따뜻하게 마주해주신 예천 권병원 3병동 간호사 쌤들~ 정말정말 고마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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