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합천 주필각과 월화당> 문화재도 사람 숨결을 불어넣어야 오래 보존하지! 문 좀 열자!

by 한빛(hanbit) 2022. 9. 7.
728x90
반응형

합천 적중면 주필각과 월화당

지난번에 의령 나들이 갈 때 구미로 돌아오던 길에 보았던 합천군 초계면 둘레에 볼거리가 많다는 걸 알았네요. 초계면은 굉장히 너른 평야지역이었어요. 하지만, 오늘 제가 소개하는 곳은 초계면과 경계에 있는 적중면에 있는 문화재입니다. 바로 적중면 양림리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주필각과 월화당>이랍니다.

합천군 초계면과 적중면은 매우 너른 평야지역이더군요.

가을이 한창 익어가는 들판과 저 멀리 산자락에 걸린 구름들이 예술입니다. 카카오맵으로 보니, 단봉산이나 미타산으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적중면 양림리 마을에 왔습니다.

<양림 창조적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꽤 남다릅니다. 

굉장히 너른 주차장이 있고 건물이 있는데 마을회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주차장이 넓어서 무척 편리하더군요.

 

가을 들판 풍경이 풍요롭다!

이 너른 들판을 보세요. 벼 이삭은 진즉에 패였고 낟알들이 영글고 있습니다.

너른 들판이 양쪽으로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오늘 우리가 가볼 곳이 보이네요. 저기가 바로 주필각과 월화당이랍니다.

들판 사이로 난 길 저 끝에는 큰 나무가 무척이나 멋진 풍경이네요. 

주필각과 월화당

보통 건물 이름을 하나를 말하는데 여기는 건물 이름을 두 개를 함께 부르더군요. 어떤 깊은 뜻이 담겼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들판 길가에 피어난 소박한 꽃들이 참 예쁩니다.

주필각과 월화당 앞에 큰 은행나무 한 그루가 풍경을 더욱 살립니다.

나락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곧 한가위니 풍성한 가을걷이를 기대합니다. 참 이번 태풍이 아무 탈 없이 잘 지나가야 하겠지요?

우리가 여기에 찾아간 날은 태풍 '힌남노'가 올라온다고 한 지난 9월 4일이었어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7일)은 곳곳에 피해를 입히고 지나가고 난 뒤네요. 

달개비꽃(닭의장풀)도 참 예뻐요. 파란 빛깔이 진하고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좋아하는 꽃이랍니다.

곡식이 익어가는 너른 들판을 보는 건 참 푸근하답니다. 튼실하게 익어서 곧 가을걷이를 할 테니 얼마나 풍요롭습니까?

그때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버텨주기를...

푸근한 들판 풍경에 한참 동안 빠져있었네요. 이젠 진짜 주필각과 월화당을 구경하러 가야겠습니다.

 

문화재도 사람 숨결을 불어넣어야지!

 

월화당 솟을대문

건물 앞에 오니, 솟을대문이 반깁니다. 하지만...

아뿔싸~! 문이 잠겼습니다.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네요. 요즘은 문화재에 가도 문고리에 자물쇠 대신에 나무 꼬챙이나 달팽이처럼 생긴 철사를 꽂아두고 쉽게 열고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데 여기는 아예 자물쇠로 꽁꽁 걸어 잠갔네요. 흑흑흑!!! 

먼 길 달려 일부러 예까지 왔는데 안쪽은 구경도 못하고 가야 하다니 너무 속상하고 아쉽네요.

문틈으로 겨우 카메라 대고 찍은 안쪽 모습입니다.

안쪽에도 중문이 하나 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월화당(月華堂)입니다.

문 앞에 있는 안내판을 자세하게 읽어봅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주필각과 월화당이 이 안에 함께 있다고 합니다.

 

월화당은 조선 중기 때 문신인 월화당(月華堂) 노극복(盧克復) 선생이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서 지내던 집이랍니다. <월화당>이란 이름은 인조 임금이 지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문예가 뛰어났던 선생은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 선생의 제자였다고 하네요. 정온, 심광세, 임진무 등과 함께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토론하며 지낸 곳이라고 합니다.

 

특히, 주필각은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노극복 선생을 찾아와서 말을 매어둔 곳이라고 합니다. 또는 역마들이 머물던 곳이라고도 한답니다.

 

인조가 여기에 올 때 날이 워낙 캄캄하고 사물을 분간하기도 힘들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선생의 집에 닿으니 검은 구름이 걷히고 밝은 달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 집을 '월화당'이라 하고 선생의 '호'로도 삼았다고 합니다. 인조는 노극복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매우 높이 샀다고 합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뒤 선생을 불러 '이조정랑'이란 벼슬까지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은 벼슬보다는 학문에 더 뜻을 두었기에 인조가 그렇게나 말렸는데도 벼슬을 버리고 고향집에 내려와서 학문을 닦으며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담장도 결코 낮지 않네요. 담장 너머로 카메라를 올려서 찍어봅니다. 

애고 저게 월화당인데...

담장 옆으로 돌아가서 볼까?

그런데 여의치 않습니다. 여기는 밭이 바짝 붙어 있어서 남의 농작물을 밟을까 가볼 수가 없네요.

아, 그리고 앞에 보이는 월화당 뒤로 맞배지붕을 한 정려각처럼 보이는 건물이 <주필각>이라고 합니다.

반대쪽으로 가 볼까요? 여기서는 더 안 보이네요.

담장 옆으로도 가볼까? 했는데, 거긴 또 논과 바짝 붙어 있고 수로가 있어 담장 가까이로 갈 수가 없습니다.

애고 참말로...

이 멋지고 아름다운 곳에 와서도 안쪽을 구경도 못하고 그저 이렇게 봐야 하니 너무 속상하네요.

 

옛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세 낡고 무너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문화재 건물들도 자꾸만 사람 숨결을 불어넣어 줘야 덜 낡고 오래가지 않을까요?

저마다 문을 열지 못하는 갖가지 까닭은 있겠지만 저희가 오랫동안 문화재를 찾아다녀본 결과로는 사람이 드나들며 자꾸만 돌아봐야지 건물도 활기를 띠게 되더라고요. 또 그렇게 찾는 이들이 오면, 관리하는 이나 후손들이 한 번이라도 더 자주 와보지 않을까요? 건물에 더욱 마음 쓰고 비질이라도 한 번 더 할 테니까요.

 

저긴 뭘까?

월화당 앞에서 다시 너른 들판을 바라봅니다.

저 끝에 큰 나무 쪽에는 정려각처럼 보이는 보호각이 있네요.

이런 걸 보고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니지요. 하하하!

요즘 문화재 답사 다닐 때마다 장비가 무거워서 고생하는 울 남편입니다. 유튜브 채널(한빛문화재여행TV)까지 꾸리려니 촬영 장비 들처메고 고생은 하지만 그래도 많이 보람되다고 합니다. ^^

보호각이 들판 가운데에 있는 것도 남다른데 그 앞에 나무가 진짜 엄청나게 큽니다.

여기쯤 서서 뒤를 돌아다보니, 주필각과 월화당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네요.

헐~! 이건 뭐야?

여기도 아쉬운 건 매한가지이네요.

풀이 어찌나 무성한지 가까이 가서 볼 수가 없네요. 

어떤 종류의 보호각인지는 모르겠는데 안쪽에 빗돌이 보이는 것도 같고 효자각이나 열부각이나....아니면 또...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어떤 훌륭한 분을 기리는 정려각인 듯합니다.

 

보호각 앞으로 죽은 나무 두 그루가 있고 그 곁에는 나무 세 그루가 합쳐진 듯 서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보호각이 무얼 뜻하는지 그 어디에도 작은 안내판 하나 없네요. 많이 아쉽습니다. 하다못해 마을에서라도 안내판 하나 세워주면 좋을 텐데... 어쩌면 마을 사람들도 이 보호각의 사연을 모를까?

보호각 앞에 있던 큰 나무는 세 그루가 함께 서 있는데, 하나는 은행나무, 또 하나는 벚나무, 그리고 또 하나는 어떤 나무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무튼 이 세 그루가 마치 한 나무인양 그렇게 한데 어울려 그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고 있었네요.

합천 주필각과 월화당

합천군 적중면 양림리 마을, 들판 한가운데에 있는 주필각과 월화당, 그리고 이름 모를 보호각!

모두 아름답고 뜻깊은 우리 전통문화유적이자 우리네 옛사람들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건물인데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에 조금만 더 마음 쓰고 살면 참 좋겠습니다. 

 

아쉬움이 많았지만 가을이 알게 모르게 다가와 한창 영글고 있는 풍경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돌아갑니다.

 

우리 아름다운 문화재! 문 좀 열어줍시다!

집도 사람 숨결을 불어넣어 줘야 더욱 오래가는 법이지요.

 

★ 제가 유튜브 채널로 소개한 합천 주필각과 월화당, 함께 감상하세요. ★

 

https://youtu.be/b9Myj2LVBH8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