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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의령 백산 안희제 생가] 글 읽는 선비가 실행하지 않는다면?

by 한빛(hanbit)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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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입산마을

앞서 소개한 '의령 탐진 안씨 종택'이 있는 마을에는 마을을 빛낸 분들이 무척 많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늘은 <백산 안희제>선생의 생가와 함께 선생의 삶을 돌아봅니다.

의령군 부리면 입산리 마을에는 온통 호국의 역사가 깃든 곳이랍니다. 마을 담벼락에는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 앞에는 너른 주차장이 있고 기와지붕을 인 화장실이 무척 인상 깊습니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선비가 어디에 쓰일 것입니까?

선비가 글을 읽고 실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무식자만 같지 못합니다.

...

 

화장실 벽에는 백산 안희제 선생께서 아버지께 올리는 편지글이 적혀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학문을 닦는 것도 좋지만 배운 것을 실행하는 삶을 선택하신 걸 알 수 있습니다.

 

 

백산 안희제 생가

여기가 바로 백산 안희제 선생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의령의 대표 독립운동가인 선생이 나신 곳이지요.

담벼락 그림에 그려진 글에서 선생의 삶을 볼 수 있네요.

초가집이 한 채 있고 그 뒤로 팔작지붕 기와집이 또 한 채 있습니다.

마당은 굉장히 넓습니다.

본디 지금 모습처럼 소박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굉장히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그 많은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셨다고 합니다.

마당 한편에 오래된 우물이 있습니다.

담벼락에는 석류나무가 두어 그루 있더군요. 토종 석류네요.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이 만큼만 익어도 뚝 따서 그 신 것을 오물거리며 먹곤 했는데 어릴 적 생각이 나네요.

초가집은 생가의 사랑채입니다.

정면 4칸, 옆면 3칸 건물인데 툇마루가 있어 무척 참 정겨운 곳입니다.

이 마루에 앉아서 한참 동안 있었답니다. 굉장히 시원하고 그냥 내 집 같은 분위기였어요.

사랑채 마루에 앉아 마당을 보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요즘 들어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맘껏 누리다 보니, 마치 이 집안의 모든 것들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어요.

집도 내 것, 마루도 내 것, 저 아름다운 풍경도 다 내 것 같은 느낌~!

하하하~!!! 정말 재밌지요?

진짜 그런 마음이 들어 마루에서 일어나기가 싫더군요.

 

이런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소일거리 하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하하~!!!

하지만 사랑채 마루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요?

이번에는 안채도 둘러봅니다.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아주 멋들어집니다.

이 댁은 앞에 굴뚝이 있는 게 남다르네요.

안채 마당 한 켠에는 따로 담장을 둘러놓은 장독대가 있습니다. 무척 정겹네요.

안채 부엌인데요. 굉장히 꼼꼼하게 만들었네요.

부엌문 양 옆으로 공기가 잘 통하도록 나무 창살을 넣은 창을 냈고요. 또 문 위로는 다락같은데 작은 문을 네 개나 달았네요.

안채 툇마루입니다. 

여기서도 한참 앉아있었네요.

뒤쪽에는 쪽마루를 두었네요. 이런 옛집들은 앞과 뒤쪽에 문을 다 열어놓으면 정말 시원하지요. 바람이 아주 잘 통하는 집입니다.

마당 양쪽에는 단을 쌓아 화단을 만들었어요. 참 정겹지 않나요?

안채 뒤꼍도 꽤 넓습니다. 

뒤쪽에도 굴뚝이 두 개나 있네요.

아궁이를 뒤쪽에다가 두었는데 마루를 조금 더 높게 만들고 그 아래에 아궁이가 있습니다. 이 아궁이는 부뚜막이 없는 아궁이입니다. 방을 데우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이런 것을 '함실아궁이'라고 합니다.

함실아궁이 위로는 방문 위에 뜬벽장을 만들었네요.

매우 쓸모 있게 만든 집이네요.

뒤쪽에도 마루가 있어 참 편리하겠습니다.

이 굴뚝도 무척 남다릅니다.

키가 굉장히 큰 굴뚝입니다. 

맨 꼭대기에는 기왓장을 올려놓고 동여매어놨답니다.

제가 어릴 적 살던 집도 이렇게 뒤꼍이 있었는데 여기처럼 이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소꿉놀이도 하고 공기놀이도 하곤 했지요.

백산 선생의 집은 예부터 천석지기 부잣집이었다고 합니다. 

선생은 1907년에 '교남 교육회'를 조직하여 가난한 학생들한테 학비를 대어주고, 방학 때에는 순회강연을 하면서 민족교육운동을 하고, '대동 청년당'을 만들어 국권회복운동에 온 힘을 기울이셨답니다.

 

1908년에는 여기 의령 입산리 마을에다가 <창남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과 민중계몽운동을 이끌었답니다. 또 선생의 호를 따서 <백산상회>를 세워 무역업을 하였는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키웠나갔답니다. 여기서 벌어들인 돈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모두 썼다고 합니다. 3·1 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인 의령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지에 배포하고 군민들이 나라를 되찾겠다는 투지가 일어나도록 많이 애쓰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대종교 박해사건'인 <임오교변> 때에 일본 경찰한테 체포되어 만주 목단강성 경무청으로 이송 수감됩니다. 여기에서 선생은 9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지만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병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3시간 만에 순국하셨답니다.

광복을 2년 앞둔 1943년 8월 3일에 순국하셨지요.

 

★ 임오교변은 1942년 11월 19일 만주 영안현(寧安縣) 동경성(東京城)에서 일본 경찰이 대종교를 탄압하기 위하여 사건을 날조, 교주 이하 간부 모두를 검거하여 박해를 가한 사건으로 이를 대종교에서는 임오교변이라 한다.

 

이번에는 안채 안쪽도 구경해봅니다.

안채 가운데가 대청인데 백산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분향을 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었네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둘러봤습니다.

오른쪽 방인데요. 앞에 방이 한 칸 있고 그 뒤로는 두 칸이 더 있습니다.

벽장 문도 세 개나 되네요. 진짜 쓸모 있게 만들었네요.

이 안으로 들어오니, 무척 시원합니다. 방도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해놓았어요. 

특히 더 시원했던 건 문이 모두 이중문이었답니다. 이렇게 하니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또 따듯하겠습니다.

방마다 다락이 다 있네요.

대청 앞뒤로 있는 문을 다 열어놓으면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굉장히 시원하겠습니다.

안채에서 보는 사랑채

오늘따라 진짜 눈이 시리도록 하늘빛이 파랗고 곱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모두 내 거라면 좋겠다~! 하하하

아니, 꼭 내 꺼가 아니어도 좋아요.

이런 좋은 집에 잠깐이라도 머물면서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 그리고 우리가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백산 선생님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계셔서이지요.

 

고맙습니다.!!!

백산 안희제 선생을 '독립운동가 3백'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 백산 안희제

의령 안범준 고택

호국의 역사가 깃든 의령 입산 마을에는 둘러볼 만한 곳이 무척 많답니다. 앞서 소개한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를 비롯하여  <탐진 안씨 종택>과 <안범준 고택>, <안준상 고택>, 또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안호상 고택>도 있습니다. 또 <수파정>과 <송은정>도 있습니다.

돌담이 참 멋스럽고 정겹습니다.

의령 안범준 고택

안범준 고택은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담장 너머로 볼 수가 있네요.

의령 안준상 고택

여기는 안준상 고택인데요. 백산 선생의 조카입니다. 3.1 운동 때에 의령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옮겨 써서 나눠주는 등 만세운동을 앞장서서 하셨고 광복 후에는 초대 국회의원을 지냈답니다.

의령 안호상 고택

안호상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활동하셨답니다.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낸 분이랍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많은 의령 입산리(설뫼마을), '탐진 안씨' 집성촌인 여기에서 이곳저곳 편안하게 둘러보면서 종갓집 종부님의 따뜻한 정도 느끼고, 나라를 생각하는 많은 분들의 호국정신도 함께 느껴보는 참 좋은 시간이었답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마을입니다.

 

★ 제가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한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도 함께 감상하세요. ★

 

https://youtu.be/SUmpArNZp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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