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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과 나들이

[청도 삼족대] 동창천 암벽에 세운 저 정자! 그야말로 절경이구나!

by 한빛(hanbit)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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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까지 맛있는 소머리 곰탕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남편은 벌써 구미로 올라오면서 들러 둘러볼 곳을 찜해놓았더군요. 바로 청도입니다. 여기에 아주 멋들어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여 찾아갔습니다.
https://sunnyhanbit.tistory.com/233

[언양 시장곰탕] 역시 찐득하니 여름철 보양식으로도 그만이네요.

울산 울주군 언양 알프스 시장에는 이름난 곰탕 집이 많더군요.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오늘 정한 집은 시장 안에 있는 <시장곰탕>입니다. 이 둘레에 차를 댈 곳이 마땅치 않아 시장 건너편에

sunnyhanbit.tistory.com


청도군 청려로 3836-15


동창천이 흐르는 절벽 위에다가 세운 정자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삼족대>입니다.

어떤 가요?
이렇게 멀리서 보기만해도 참 멋지지 않습니까?
이렇게만 봐도 아주 아름답고 멋스러운 풍경입니다.

삼족대는 동창천 매전교 다리를 건너서 갑니다.

삼족대 풍경이 아름다운 건 이렇게 높다란 곳에 있으니 더욱 그렇겠지요?

삼족당 김선생 신도비

동창천 위 절벽 위에다가 낮은 담장을 둘렀네요.
삼족대에 오르니, 큰 거북등 위에 올려진 빗돌이 가장 먼저 보입니다.
바로 이 삼족대의 주인인 삼족당 김대유 선생의 신도비입니다.

삼족대는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 선생이 1519년(중종 14) 제자들을 가르치려고 세운 정자입니다.
김대유 선생은 증조부인 김극일, 숙부인 김일손과 함께 ‘청도 삼현’으로 불립니다.


낯익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숙부인 김일손 선생입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탁영 김일손 선생이지요.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넣으면서 일어난 '무오사화'탁영 김일손은 사지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했지요. 바로 김일손 선생의 조카가 삼족당 김대유 선생이랍니다.

삼족대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동창강이 한눈에 보입니다.
이 동창강 또한 삼족당 선생과 관련이 있다고 하네요. 바로 선생의 동무인 소요당 박하담 선생과 함께 쌀을 보관하던 사창(社倉)을 세웠는데, 청도 관아 동쪽에 있다 하여 '동창 마을'이라 했고 이 강 이름도 동창강이 되었던 게지요.

저기 삼족대 아래, 동창강 건너편에 있는 모래밭은 둘레에서 차박 캠핑하는 곳으로도 이름난 곳이더군요.

이제 삼족대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옆면이 2칸이네요.

삼족대 앞으로 담장을 아주 낮게 둘렀습니다.
마루에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한눈에 볼 수 있어 더욱 좋겠네요.

이렇게 말이지요.

대청이 왼쪽에 있고 방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그 앞으로 툇마루가 있지요.

삼족대(三足臺) 편액입니다.

‘삼족’은 ‘예기’에서 따온 말인데, ‘물고기 잡을 수 있고 漁, 땔감 충분하고 樵, 양식 구할 밭 耕이 있으니 세 가지가 족하다’는 말이랍니다. 선생은 이를 본 따 ‘나이 육십을 넘었으니 수(壽)가 이미 족하고, 가문이 화를 입었으나 사마에 합격하고 벼슬을 지냈으니 영예가 족하고, 아침과 저녁밥에 고기반찬이 끊이지 않으니 식(食) 또한 족하다’며 '삼족당'이라고 스스로 지었다고 합니다.

선생은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하던 시기에 '피의 숙청'이라 불린 사화를 두 차례나 겪었답니다.
바로 '무오사화'와 '기묘사화'를 말합니다.

숙부인 김일손 선생이 '무오사화' 때 능지처참을 당하자 그의 직계 가족인 아버지와 함께 김대유 선생도 남원으로 유배를 가게 되지요. 그렇게 8년을 보냈다가 풀려납니다.

그 뒤로 정시에 급제하고 또 현량과에 등재해 관직에 올랐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죽자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선생은 안타깝게도 벼슬과 품계를 빼앗겨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지요.

삼족대 방 안

삼족대는 방이 2칸인데, 안을 열어보니 통으로 뚫려 있어 한 칸으로 매우 넓네요.

삼족당서

방 한 쪽에 <삼족당서(三足堂序)> 액자가 있네요.
처음엔 이게 무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네요.
율곡 이이가 삼족대의 빼어난 절경을 노래하고 이 누정의 주인인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칭송하는 글이랍니다.

대청에 서면 동창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관직에서 물러난 삼족당 선생이 고향 청도에 내려와 제자들을 가르치고 남명 조식, 소요당 박하담, 신재 주세붕, 율곡 이이 같은 이들과 함께 교류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제가 매우 우러르는 남명 조식 선생은 틈나는 대로 삼족대에 들러 강학을 논하였다고 해요. 또 ‘삼족당에서 부침’, ‘삼족당에게 드림’ ‘삼족당에게 쓰다’ 라는 글도 썼답니다. 나중에는 삼족당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묘갈명도 썼다고 합니다.

삼족당 현판들

삼족당에도 현판들이 여럿 걸려 있습니다. 삼족당 중수기를 비롯해서 아주 남다른 현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율곡 이이가 지은 삼족당서(三足堂序)

위에서 소개한 삼족당서(三足堂序)입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지은 글입니다.

서리 속에 선 소나무 같은 지조요
물에 비친 달같이 담담한 마음을 가진 분이리라


이렇게 삼족당 김대유 선생을 칭송했다고 합니다.

삼족대 옆으로 돌아가니 아궁이가 보이는군요.

그 옆에는 일각문이 하나 있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지요.
한 발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삼족대입니다.
매우 아름답네요. 지붕과 기와, 그리고 처마가 모두 아름답습니다.

삼족대 옆으로는 이렇게 산으로 가는 길이 나 있습니다.
김대유 선생께서 이 산길을 거닐며 동무들과 또는 제자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겠지요?

삼족대 뒤쪽에는 담장 안에 또 다른 담장이 있네요.
이건 어떤 쓰임새였을까요?
혹시 바람을 막는데 쓰였을까요?

안쪽에 쌓은 담장 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네요.

길고 넓은 바위를 그대로 두고 삼족대를 지었네요.

삼족대에서 내려다보면 선생의 신도비가 바로 보이네요.

담장 아래에 낸 작은 구멍
그 너머로 보이는 동창강에 비친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습니다.
그 작은 틈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름다워 허리를 낮게 굽혀 한참 내다봤지요.

삼족대에서 동창강 쪽으로 내려서면 팔각정이 하나 보입니다.

청도군에서 삼족대 아래에다가 세웠다고 합니다.
여기에 올라 동창강을 내려다보니 그것 또한 참 시원했습니다.

삼족대로 오르는 길과 달리 팔각정에서 가면 아까 계단으로 올라가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되네요.

팔각정 앞에서 봐도 삼족대는 아주 높다랗게 단을 쌓고 그 위에 세웠습니다.

팔각정에서 내다보는 동창강입니다.
저 앞에 물길을 건너왔던 매전교가 보입니다.

삼족대 바로 아래에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텃밭도 있고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관리사인 듯 보였어요.
화장실도 따로 있어서 삼족대를 보러 온 이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했더군요.

삼족대를 눈에 넣고 가슴에 담고 한참 동안 둘러보고난 뒤, 이번에는 강 건너로 왔습니다.
'버디'라는 큰 카페도 하나 있더군요.
여기는 차박 캠핑장으로 쓰기도 하더군요.

텐트를 치고 쉬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답니다.
워낙 더운 날이라서 저렇게 하고 있어도 과연 시원할까? 생각이 들더군요.

아까 우리가 둘러보았던 삼족대가 동창강 위에 두둥실 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에 세웠네요.
언양까지 소머리 곰탕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둘러본 <삼족대>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삼족당 김대유 선생의 삶도 돌아보고 제가 매우 우러르는 남명 조식 선생도 만나고 왔네요.

제가 둘러보고 온 청도 삼족대를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었어요. 함께 보세요. ^^

https://youtu.be/QPexsVi01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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