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아버지 머리를 잘라서 몰래 우물에 넣었다고?"
"어릴 때 그런 이야기 들어봤어? 덕산이 고향이잖아~"
"아니, 진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그 우물 맞아?"
"그래 그렇다니까 거기가 아주 이름난 우물이더라고."
내 고향 청리 덕산리
내 고향 상주 청리 하고도 덕산리 마을에 있는 우물에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줄은 처음 알었어요.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서 우물에 몰래 넣다니요?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라고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내 아버지가 다니셨던 청동초등학교입니다. 덕산리 마을 들머리에 있는 학교이지요. 지금은 문 닫은 학교인 듯합니다.
"옛날에는 이 길이 좁은 흙길이었어. 비만 오면 온통 진흙땅이 되어서 신발을 다 버리곤 했었지."
바로 이 마을 상주시 청리면 덕산리는 제가 태어난 고향이랍니다. 그러나 백일도 되기 전에 김천으로 나가는 바람에 여기에서 자라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고모가 그대로 살고 계셨기에 방학 때면 늘 여기 와서 지내곤 했었지요.
어릴 적 추억이 많이 깃든 곳이지요.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 마을 언니들하고 산으로 들로 나물 캐러 다니고 버섯 따러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어머나~! 여기에 버스도 들어오나 봅니다.
그 옛날에는 청리역에서 여기 덕산까지 들어오려면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를 터벅터벅 걸어서 왔어야 했지요.
덕산리 다음 마을은 가천리 마을이네요. 가천리 마을을 '새기'마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때는 새기 마을로 가는 길이 없었어요. 아주 좁은 산길을 넘어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수명당 우물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자가 누고? ○선생 딸래미 아이가?
아이고 야야~ 니 혼자 왔나?
여가 어데라꼬 혼자 왔나? 할매 볼라꼬 왔나?
덕산리 마을 한가운데에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보았던 우물이 있답니다. 제법 큰 우물이에요.
어릴 때,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쯤으로 기억해요. 그때 김천에서부터 혼자 걸어서 고모네 집에 간다고 왔던 적이 있어요. 지금 지도로 계산을 해보니, 거의 30km쯤 되네요. 7시간도 더 걸렸을 거예요. 그때 할머니가 고모네 집에서 계셨을 때였거든요.
마을 아줌마들이 이 우물에 하나 가득이었어요. 빨래를 하고 나물을 씻고 물도 긷곤 했지요. 그러면서 저마다 혼자서 온 어린 나를 보고 한마디씩 했답니다. 그 어린것이 어찌 여기에 혼자 왔냐면서요.
태어난 고향이라 매우 남다른 마을이어서 옛 추억 이야기가 길었네요. 사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지금부터랍니다. 이 우물에 따로 이름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바로 <수명당 우물>이라고 합니다. '물 명당'이나 '우물 명당'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바로 이 우물에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주 무시무시한 이야기랍니다. 잠깐 소개를 할게요.
오랜 옛날에 이 씨 성을 가진 풍수지리사가 이 마을에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병이 들어 죽을 때가 되어 부인은 장에 보내놓고 아들한테만 유언을 했다고 해요. 그 유언이 정말로 기가 막히고 무서운 이야기였답니다.
내가 죽거들랑 머리만 잘라서 마을 앞에 있는 우물 속에다가 묻으라고 했다.
몸을 다 묻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잘라서 묻으라고 하니 아들은 한사코 그리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 집안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은 이 길 밖에 없으니 반드시 그리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절대로 어머니에게는 말하지 말 것을 거듭거듭 당부를 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죽고 아들은 유언대로 아버지의 머리를 잘라서 밤에 몰래 우물 속에다가 묻었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아들은 아버지의 머리를 잘랐다는 죄책감에 시름시름 앓았다고 합니다. 병이 깊어지자 어머니가 이상하게 여겨 자꾸만 캐물었고, 그 이야기를 끝내 숨기지 못한 아들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절대로 남들한테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만약 남들이 알게되면 우리 가문은 멸문지화를 입을 것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다지요. 그때가 아버지 3년상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기한테는 말해주지도 않고 죽은 남편한테 화가 나서 그 길로 마을 사람들한테 알렸답니다.
"동네 사람들! 아 글쎄 우리 영감님 머리가 우물 속에 있다네요!"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우물물을 다 퍼냈답니다. 진짜 어머니 말대로 해골이 나왔는데 우물 밖으로 꺼내놓았더니, 그 해골이 아주 멋있는 남자로 변해 사모관대를 하고 말에 타려고 한 발은 안장에 올리고 또 다른 발을 채 올리기도 전에 그만 홀연히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아마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 비밀이 끝까지 지켜졌다면 정말 이 집안이 잘 되었을까요? ^^
수명당 우물은 지금은 쓰지를 않아 이렇게 물이 고여있기만 합니다. 어떤 글에는 우물물이 다 말랐다고 하던데 실제 가서 보니 그렇지는 않았어요.
또 우물 둘레에는 이렇게 아래에서 솟아난 구멍이 있고 지금도 조금씩 물이 솟아나더군요.
이렇게 어마무시한 이야기가 깃든 이 우물은 그 뒤로 더욱 유명해졌고 물이 맑고 깊어서 <수명당(水明堂) 우물>이라고 했답니다.
지난 2월에 이 우물 이야기를 알고 나서 다시 찾아가서 본 모습이랍니다.
고향을 떠나 있다가 30여 년만에 찾아갔을 때에도 이 모습 그대로 있었던 우물입니다. 다만 마을 아낙들이 시끌벅적 떠들썩하던 그런 풍경은 고스란히 사라졌지요.
어렸을 때엔 이 우물에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 내 고향 마을에 깃든 이야기를 찾아 다시 가본 풍경을 담아 함께 소개를 했습니다.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면 덕산 1길 55
(수명당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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