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묘산 묵와고가(국가 민속문화재 제206호)
합천군 묘산면 화양리 마을에는 <묵와고택>이 있습니다. 이 묘산 마을에 들어온 건 바로 묵와고택을 구경하러 왔던 게지요.
조선 선조(1650년경) 때 선전관을 지낸 윤사성(尹思晟)이 지었다고
합니다. 또 윤사성의 10대손인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윤중수(尹中洙, 1891~1931)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처음 지을 때에는 집터가 600평이나 될 만큼 크고 100칸이나 되는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 집의 이름은 윤사성의 현손인 윤우(1784-1836) 선생의 호인 '묵와(默窩)'에서 따온 것으로, '고요한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독립운동가 만송(晩松)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난 후 유림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 회의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하기로 하였지요. 이게 바로 <파리장서 사건>입니다. 이에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한 서한이 파리로 보내졌는데, 윤중수는 서한에 서명한 유림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윤중수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일에도 앞장섰으며, 평생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묵와고택은 문이 닫혀 있었어요. 가기에 앞서 묵와고택에는 지금 후손들이 살고 있다는 글을 봤어요. 문화재이기는 해도 낯선 나그네한테 쉽게 발을 들여놓게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요. 이해는 합니다. 그래서 묵와고택은 패스~했습니다. 대신에 이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보기로 했어요. 무엇보다도 옛 풍경이 많이 남아있는 마을이라서 그냥 가기엔 너무 서운했으니까요.
비어있는 집도 있었어요. 빈집이기는 해도 잘 지은 옛집입니다.
둘레 풍경들은 이렇듯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이 멈춘 듯 보입니다.
오랜 세월에 무너지고 또 보듬고한 흔적이 깃든 흙돌담이 애틋합니다.
돌담으로 둘러싼 집도...
여섯 형제의 우애가 깃든 육우당(六友堂) 경남 문화재자료 제556호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는데 골목 끄트머리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멋지고 예사롭지 않은 옛집을 만났어요. 키 큰 감나무가 담장 너머로 우뚝 서 있는 멋진 집입니다.
흙돌담이 무척이나 정겹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멋스럽기도 합니다.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니, 더더욱 멋스러운 집입니다. 도대체 여기가 무엇을 하는 집일까? 또 누구의 집일까? 몹시 궁금하네요.
궁금증을 끌어안고 모퉁이를 도니, 세상에나~! 이렇게 널찍한 마당이 나오고 옛집만 있는 게 아니었네요. 관리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일반 민가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집 역시 빈집인 듯합니다.
아름답고 멋스러운 옛집은 꽤나 높다랗게 지은 집이네요.
계단이 6개쯤 되는 높이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다가 담장을 올린 집입니다. 담장이 일 자로 되어있고 그 가운데에 출입문을 두었습니다. 이 담장 만으로도 이 댁의 권위와 위엄이 느껴집니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니, 한쪽에다가 기왓장으로 아주 낮은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감나무가 있네요. 아니, 감나무 둘레로 낮은 기왓장 울타리를 둘렀네요. 하하하~!!!
앞뒤로 건물이 두 채가 있습니다. 비탈진 지형 그대로 건물을 지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 높다랗고 위엄있게 보입니다.
뒤쪽부터 먼저 가봤습니다.
그렇군요. 사당이네요.
뒤쪽에는 사당이 있고 앞쪽에는 이런 건물이 있습니다.
이 건물이 어떤 곳인지 알아봐야겠네요.
마당 한켠에서 내려다보는 출입문입니다. 바깥에서 보던 一 자형 담장이 안에서는 낮고 더 길어 보입니다.
이제 앞쪽 건물을 자세히 보려고 합니다. 정면 5칸, 옆면 3칸짜리 팔작지붕입니다.
정면 편액은 <돈목재(敦睦齋)>입니다. '정이 두텁고 화목하다'라는 뜻이겠지요.
오른쪽 방 위에 편액은 <정양헌(靜養軒)>입니다. '고요하게 수양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가운데는 <육우당(六友堂)> 편액입니다. '여섯 벗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육우당(六友堂)>
바로 이 건물의 이름입니다. 여섯 벗의 집이라는 뜻이라는데...
그렇다면 친구 여섯명을 기리는 집이라는 말인가? 궁금 궁금~~
사실은 그 어디에도 안내판도 없고 육우당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어 무척 답답했지요.
<정양헌(靜養軒)> 고요하게 수양하라~
대청에 걸린 <육우 전기>라는 글입니다. 찬찬히 읽어보니, 육우당은 여섯 친구가 아니라 여섯 형제를 말하는 것이더군요.
이 집은 묵와고택의 주인인 묵와 윤우(1784-1836) 선생의 여섯 아들인 윤병구, 윤병래, 윤병은, 윤병주, 윤병효, 윤병민을 기리는 재실이라고 합니다. 묵와 선생은 형제가 없는 5대 독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선생이 대에 여섯 아들을 낳았다고 하니 참으로 복스러운 일이었겠습니다.
'효도를 하면서 우애가 없는 수가 없고, 또한 우애가 있으면서 효도하지 않는 이가 없다. 효도와 우애는 이름은 다르나 뜻은 곧 하나이다.' - 육우 전기 -
육우당 천정에 있는 대들보 중간에 있는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게 깎아서 만들었네요. 꽃 모양으로 보이는데 매우 화려합니다.
이 건물 또한 묵와고택과 같이 파평 윤 씨 가문의 종손인 윤석우가 세웠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기 묘산 마을, 화양리 마을은 윤장이 15세기 중반에 이주해 온 이후로 파평윤씨 가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가운데는 대청을 두었습니다.
상량문입니다. 상원(上元)갑진(甲辰) 3월13일 임오(壬午)사시(巳時)입주(立柱) 동월(同月)28일 정유(丁酉)미시(未時)상량(上梁)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때가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육우당 대청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입니다.
여섯 아들들이 모두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분들이었다고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늘 돈독히 화목하게 살았겠지요? 고요하고 조용하게 마음을 수양하면서 말이지요.
집에 돌아와서 육우당 이야기를 더욱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지만 참 뜻깊은 집이고 좋은 집입니다.
육우당 뒤쪽에는 사당이 있습니다.
사당은 문이 닫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지대가 높아서 훤히 볼 수가 있네요.
사당 편액은 <세덕사(世德祠)>라고 쓰여있네요.
참 아름다운 집입니다.
이 육우당은 처음엔 여섯 아들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려고 세운 재실이었지요. 그 뒤로는 1960년대까지 서당으로 활용하였으며 유림의 거두이자 한학자인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과 성암(誠菴) 윤석희(尹錫熙), 그리고 애국지사 윤중수가 바로 이 육우당에서 학문을 배웠다고 합니다.
합천 묘산 마을에 묵와고택을 보러 왔다가 제대로 구경은 하지 못했지만, 묵와고택과 관련된 여러 어른들의 훌륭한 뜻을 새기고 배울 수 있는 아주 멋진 날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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