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현(단양군)은 삼국시대 백제, 고구려, 신라의 뺏고 빼앗기는 영토였다!
예부터 단양군의 지명은 '적성현'이었고, 삼한시대에 백제 땅 마한에 속한 지역이었지요. 고구려를 공략하는 데에 전진기지이자 다리 역할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뺏고 빼앗기는 일이 많았지요.
고구려 장수왕때 남진정책으로 고구려 땅이 되었고, 그 뒤 고구려의 국력이 약해지자 신라가 한강 유역을 공격하며 이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신라가 적성현을 손에 넣고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서 성을 쌓았는데 그게 바로 제가 오늘 소개하는 <단양적성산성>입니다.
신라 진흥왕 545~551년경에 세운 산성으로 둘레가 1km가 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무너진 곳이 많고 겹으로 쌓은 북동쪽의 안쪽 벽 등만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적성산성은 바로 <단양팔경 휴게소>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습니다.
춘천방향 휴게소입니다.
그 위 해발 323.7m인 성재산 꼭대기에다가 지은 성이 바로 적성입니다.
적성산성 가는 길에는 돌계단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적성을 볼 수 있지요.
오르고 또 오르고...
그러나 한 10여 분쯤 올라가면 되는 길입니다.
극 저질 체력이라서 저는 좀 천천히 걸어 올라갔네요.
이렇게 조금 오르다 보면,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집니다.
위로는 커다란 소나무에 둘러싸인 풍경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산성 아래로 난 탐방로가 있습니다.
적성산성은 위로 올라가도 되고 아래로 난 길을 따라 가도 나옵니다.
아래쪽 탐방로에도 성을 쌓아 꼭대기까지 이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부분에는 이렇게 일부가 허물어진 곳도 있습니다.
신라가 고구려땅 적성현을 빼앗고 세운 <단양 신라적성비>
단양 적성 안에는 아주 놀라운 국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단양 신라 적성비>입니다. 국보 제198호입니다.
이 적성비는 원래 땅에 묻혀 있었는데 1978년 단국대 정영호 교수팀이 우연히 찾아냈고 다행히 글씨가 또렷하게 남아있어 그 내용을 잘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진흥왕 6~11년(545~550) 사이에 신라가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점령한 뒤 신라의 새 영토임을 알리고 또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위로하려고 세운 빗돌이었다고 합니다.
또 진흥왕이 이사부 장군 등 고관 열 명한테 명령을 내려서 신라의 국경을 넓히는 사업을 돕고, 목숨까지 바쳐 충성을 다한 적성 사람 야이차에게 상을 내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이와 같이 충성을 다하는 사람한테는 똑같이 포상하겠다는 국가 정책도 적혀 있다고 합니다. 또 이게 발견되기 전에는 '성산성', 또는 그냥 '산성'이라고만 알고 있었다네요. 이 비문이 발견되면서 이 성의 이름이 '적성'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가까운 곳에 <단양팔경 휴게소>가 있어 이렇게 예까지 찾아와서 둘러보고 가는 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참 좋은 일이네요.
보통 다른 이들은 신라적성비를 보고 내려갔지만, 우리는 산성을 한 바퀴 둘러볼 작정입니다.
신라적성비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는데 이런 정자가 나옵니다. 정자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산성을 보수하면서 새로 세운 것인 듯하네요. 젊은 커플이 예까지 올라와서 구경하네요. 뒷모습이 무척 예쁩니다.
신라 이사부 장군이 점령한 적성현에 세운 적성산성
소나무가 울창했던 숲길을 지나 내려오니 드디어 적성이 제대로 보입니다.
적성은 사적 제265호입니다.
옛 적성현이었던 단양 땅은 진흥왕 15년(554) 신라가 죽령을 넘어 한강의 상류 지역으로 진출하고 북쪽으로 세력을 넓히는 데에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또 이곳 단양 적성은 고려시대까지 단양 지방을 다스리는 읍성 구실도 했다고 합니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가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의 유물도 발견되었다고 하고요.
북문이 있던 곳이랍니다.
양쪽으로 나뉘어 있고요. 저 아래로는 내려갈 수 있는 데크 길을 만들었더군요.
아까 우리가 올라왔던 그 길입니다. 성벽을 따라 걷는 재미도 남다릅니다.
북문 터 아래로 난 데크 계단입니다.
성벽 바깥쪽을 보세요.
어떤 적도 오르기 힘들게 보이지요?
적성은 동서로 긴 타원형 모양으로 쌓았답니다. 북서쪽은 경사가 급하고 남동쪽은 완만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성벽의 기초 부분은 돌과 진흙으로 다져서 단단하게 만들었고, 성의 외벽은 자연석으로 쌓았다는데 길쭉하고 네모나게 다듬은 돌로도 보입니다. 신라시대의 성을 쌓는 기술도 매우 놀랍네요.
적성 위에 올라서면 남한강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적성에서 또 하나 놀라운 게 있는대요. 성벽 안쪽으로 굉장히 너른 터를 다듬어 놓은 게 보이시나요? 이건 바로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일부러 이렇게 넓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군사들이 무기와 식량을 나를 수 있는 길로도 쓰였다고 합니다.
성을 돌면서 보니, 저 아래에 우리가 올라왔던 길이 보입니다. 주차장도 보이고 단양팔경 휴게소도 보입니다.
성벽을 따라 내려와서 우리가 온 길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다시 저 위쪽으로 아까 올라왔을 때 보았던 나무가 보이네요.
이렇게 성벽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네요. 길이가 1km가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라서 쉽게 둘러볼 수 있는 길입니다.
단양팔경 휴게소에 있는 적성산성과 신라적성비 산책로 이정표입니다.
휴게소에서 429m라고 쓰여있습니다. 단양팔경 휴게소에 왔다면 한 번씩 이 길을 따라 신라적성비와 적성산성도 구경하고 가는 걸 추천합니다. 나름대로 꽤 뜻깊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휴게소에서 나온 한 무리가 산성으로 올라가고 있네요. 아이들도 있고 어른들도 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동 사로당> 80평생 늙도록 한 방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 4형제 우애가 아름답다 (26) | 2022.01.18 |
---|---|
<문경 내화리 삼층석탑> 옛 절터인 듯한데 이 많은 부재들은 뭘까? (16) | 2022.01.16 |
[합천 묘산 마을 묵와고택과 육우당] 여섯 형제의 우애가 넘치고 화목한 집에서 (33) | 2022.01.13 |
<하동 정기룡 장군 유허지>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63전63승 정기룡 장군 (29) | 2022.01.10 |
<영동 매곡면 송계서원 유허비각과 송계서원 단소> 서원은 없어졌지만 송계 육선생을 모셨다! (22) | 2022.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