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영동 무첨재> 세상을 부끄러움 없이 살라!는 마음으로~

by 한빛(hanbit) 2021. 12. 31.
728x90
반응형

영동 무첨재

영동군 매곡면 옥전리 마을 산 밑에 있는 <무첨재>를 찾아갑니다.

조선 중종 17년(1522)에 왕가의 외손자인 안요 선생이 후학을 교육하고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이라고 합니다.

 

무첨재 찾아가는 길

무첨재는 좁은 길을 따라 가야 만날 수 있었답니다. 저 앞쪽 산은 불이 났었나 봅니다.

무첨재는 낮은 돌담에 빙 둘러싸여 있습니다. 아늑하고 정겨워 보입니다.

모현문

무첨재의 출입문에는 <모현문(慕賢門)>이란 편액을 달았네요.

참 예쁩니다. 어짊을 사모한다~!라는 뜻으로 보면 되겠지요?

저 위에서 이 무첨재를 세운 사과공 안요(安燿) 선생이 왕가의 외손이라고 했는데요.

안요 선생은 순흥 안 씨인데요. 이조판서 안우하(安友夏)와, 세종의 왕자 밀성군(密城君)의 딸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선생은 기묘사화를 피해서 이곳 영동 매곡에 들어와서 이 무첨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살았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 가장 먼저 들어와 터를 잡고 산 이들이 '순흥 안씨'라고 하네요.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난 해인 1519년 영동군 황간으로 이주하여 현재 매곡면 옥전리, 수원리 일대에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합니다.

무첨재

<무첨재(無添齋)> '세상을 부끄러움 없이 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또 '네가 난 바에 욕됨이 없게 하라!'는 뜻으로 무첨이라고 했답니다. 둘 다 같은 뜻으로 봐도 되겠네요.

세상살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이 있지만 부끄러움 없이 욕되지 않게 살라! 는 뜻이겠지요?

 

무첨재는 지금 순흥 안씨 사과공파의 재실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마을 아이들도 가르치는 서당으로 쓰였겠지요?

아마도 많은 제자들한테

 

"부끄러움 없이 살라"

"욕됨이 없도록 살라"

 

하고 많이 가르치셨을 듯합니다.

무첨재 관리사 모선헌

지난 2020년 11월 11일에 무첨재의 관리사인 모선헌(慕先軒)을 새로 짓고 준공했다고 합니다.

낮은 돌담에 둘러싸인 무첨재를 보러 왔을 때는 해가 막 넘어갈 때였어요.

사진 찍기에는 그다지 좋은 때가 아니라서 예쁜 사진은 못 찍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네요.

정면 4칸, 옆면 2칸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양쪽 한 칸씩은 온돌방이고요. 가운데 두 칸은 대청으로 두었네요.

나무 기둥 좀 보실래요?

우리나라 한옥에서 많이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끼워 맞춰 놓은 걸 말이에요.

보통은 기둥 하나를 통째로 올리는데 여러 차례 보수를 거치면서 이렇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둥과 기둥을 이어 붙였네요.

우리 한옥에는 문이 참 많습니다.

주로 출입하는 방문도 있고 창문도 있습니다.

그리고 방 안에서 뒤쪽으로 열리는 문도 따로 있지요.

통풍이 정말 잘 되게 만들었지요.

대청의 나무들도 결이 다 살아있네요.

마루에 올라서 해넘이 노을빛을 받아 물드는 바깥을 내다봅니다.

낮게 두른 담장이 참 예쁘게 보이네요.

아마 선생이 살아계실 때에도 이런 모습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내다봤을 듯하네요.

주춧돌입니다.

자연석을 가져다가 그대로 두고 그 위에다가 기둥을 세웠어요.

칸칸이 댓돌을 놓기도 했어요. 마루에 올라가기 편하도록 말이지요.

모퉁이에 있는 주춧돌은 정말 크네요.

이 큰 돌 위에다가 기둥을 그대로 올렸어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있어 더욱 아름답고 정겹네요.

어머, 여기도 나무 조각을 끼워 맞췄네요.

참, 주 출입문인 모현문은 잠겨 있었답니다.

그래도 고맙게도 옆으로 난 쪽문은 이렇게 나뭇가지 하나로 걸어두었더라고요.

정말 고마웠답니다.

덕분에 안쪽까지 꼼꼼하게 둘러볼 수 있었어요.

나올 때는 다시 문고리에 잘 걸어두고 왔습니다.

 

오늘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또 남에게 부끄러움 없이 살라고 하셨던 사과공 안요 선생의 가르침이 배어있는 영동 매곡면 옥전리에 있는 <무첨재>를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순흥 안씨 문중에서 재실로 쓰이는 곳이지만 처음 세웠던 선생의 가르침을 올곧게 느끼기에 너끈한 곳이었답니다.

 

https://youtu.be/3ZNa8wu6gGE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