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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이 들려주는 문화재 이야기

<영동 자풍서당> 서당 안에 웬 고려시대 돌탑이? [한강 정구 선생 유적지]

by 한빛(hanbit) 202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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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안에 웬 돌탑이?

오늘은 영동군 양강면 두평리 501번지에 있는 <자풍서당>을 둘러봅니다.

옆으로는 금강이 흐르는 505번 국도에서 왼쪽으로 보면 높다랗게 올라가는 길이 보입니다. 저 길로 300m쯤 올라가면 오늘 찾아가는 자풍서당이 나오지요. 원래 차로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거긴 길이 좁고 좀 험하다고 하네요. 그쪽으로는 1km쯤 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걸어서 올라가는 길로 갈 겁니다. 익살맞은 장승이 양쪽에서 호위하는 자풍당(資風堂)이라고 쓴 표지석 뒤로 올라갑니다. 

생각보다 꽤 가파릅니다.

이제 겨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저질체력이라 바로 헉헉거리네요. 하하하!

가랑잎이 찬 서리에 젖어 미끄러울까봐 조심조심 걸어갑니다. 그리고 길이 매우 좁아요. 마치 토끼비리를 걷는 것 같았답니다. 

처음에 올라올 때는 굉장히 가팔라서 좀 헉헉거렸는데 바로 저 앞까지만 가면 될 듯하네요. 하기야 300m밖에 안 되니까 걸을 만하네요.

여기도 큰 나무들이 많네요. 매우 멋스럽네요.

드디어 저 앞에 자풍서당이 보이네요.

그런데 딱 여기에 들어서니까 개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산속에 숨어있는 듯한 곳에 낯선 이의 발걸음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정말 요란하게 짖더군요. 농가로 보이는 집이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바로 자풍서당이랍니다. 이 안쪽에 집들이 몇 집 있더군요.

자풍서당은 1980년 11월 1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굉장히 오래되었네요. 자료를 찾다가 봤는데 여러 해 앞서 까지는 자풍서당 안에 누군가 살고 있었더군요. 문화재인데 너무나 관리가 안 되어있다고 속상해하던 걸 봤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가 봅니다. 무척이나 깔끔하게 보입니다.

서당 바로 앞에 <자풍서당사적비>가 있어요.

그 곁에는 사적비에 쓰인 글을 적어놨네요. 

조선 전기에 처음 세워진 곳인데 명종과 선조 때 유학자인 이충범(李忠範)이 양강(楊江) 가에 있던 것을 새로 고치고 제자들을 길러낸 곳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풍곡당(豊谷堂)이라고 했다가 1614년 한강 정구(鄭逑) 선생이 여기에 머무르며 자법정풍(資法正風)이라는 이념을 내세워 자풍당이라 이름을 고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자료에서도 '자법정풍(資法正風)'이 안 나오네요. 이 글을 쓰면서도 참 많이 찾아봤는데 그 어디에도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데가 없네요. 애고 답답해요~!

 

한자에 까막눈인 내가 떠듬떠듬 자풍서당 사적비를 읽어보니,

 

자풍당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예법을 바탕으로 풍속을 바로잡는다!'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자풍서당에는 고려시대 돌탑이 있다!

자풍서당 안으로 들어왔어요.

정면 5칸, 옆면 2칸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그런데 서당 마당 한쪽에 돌탑이 있네요. 그것도 꽤나 오래되어 보입니다.

서당 안에 웬 돌탑이? 신기하고 궁금하네요.

층수는 오층이네요. 그리고 그 옆에 이 탑의 부재들인 듯 보이네요.

헐~! 그런데 돌탑 앞에 있는 안내판이 왜 이렇지요? 빛깔이 바래서 글자가 하나도 안 보이네요. 쩝~!

다만 <영동 두평리 오층석탑>이라는 것만 알겠네요.

지난 1989년 10월 1일 땅속에 묻혀있던 5층 석탑의 옥개석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탑의 모형으로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의 것으로 보이며, 옛날에 이곳에 풍곡사라는 절집이 있었다고 하네요.

 

조선 초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유교를 더 널리 가르치면서 많은 절집들을 폐하였지요. 그 자리에다가 자풍서당을 세웠으니 아마도 저 돌탑이 땅속에 묻힌 까닭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이 자풍서당은 영동 양산팔경 가운데 제7경에 들어갑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풍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를 말한다고 해요. 그 옛날 자풍서당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도 합니다.

 

참 여기에서 여러 학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에 남수문(南秀文)·이충범·김문기(金文起) 등 많은 인재가 있다고 합니다. 김천 섬계서원에 배향된 사육신 백촌 김문기 선생도 여기서 공부를 하셨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서당 담장 너머로 보니 저쪽으로 난 길이 보이네요. 저기가 바로 자동차로 올라오는 길이네요.

두평리 오층석탑은 아래쪽에 기단이 없어요. 아마 아까 옆에 있던 탑 부재들이 바로 기단으로 썼던 부재들이네요. 오층까지 있는 옥개석과 상륜부 쪽만 남아있네요. 마모되고 부서지긴 했어도 이렇게라도 보존되어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아궁이 위에 가마솥은 없고 뚜껑만 덮어놓았네요. 

서당 대청이 꽤나 넓습니다. 아이들이 조잘조잘 댈 듯도 하고요. 공자왈~ 하고 글 읽는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자풍서당(資風書堂) 편액이 굉장히 높이 걸려 있습니다.

대청에서 내려다본 마당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서당이라 참 고즈넉하고 조용해서 참 좋은데...

서당을 둘러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좀 정신은 없었네요.

저 아래쪽과 온도 차이가 꽤 나나 봅니다. 간밤에 내린 하얀 서리가 늦은 오후인데도 아직 하나도 녹지 않았네요.

 

https://youtu.be/y5pcXd0vx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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