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단성면에 있는 단속사지는 약 1.200여 년 전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창건한 절집이었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속사 그 터만 남아 있어 <단속사지>라고 합니다.
단속사지 동탑과 서탑
단속사 절터에는 보물 제72호인 단속사지동삼층석탑과 보물 제73호인 단속사지서삼층석탑이 남아있습니다.
왼쪽은 서탑, 오른쪽은 동탑입니다.
이렇게 나란히 동서로 서 있는 탑입니다.
이 동, 서탑은 법당 자리 앞에 세웠던 통일신라시대 쌍탑인데요.
그렇다면 이 쌍탑 앞에 법당이 있었다는 말이겠지요?
몇 해 앞서 만 해도 여기 이 절터에 민가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카카오 맵 로드뷰를 살펴봤는데 지난해(2020년) 12월 촬영된 건데 그때만 해도 단속사지 동. 서탑 앞으로 민가가 여러 채 보이네요.
지금은 이렇게 민가가 다 헐리고 대신에 옛 절터를 발굴하는 발굴조사를 하고 있답니다.
단속사지 절터를 잘 발굴하고 조사해서 통일신라 시대의 그 멋진 모습들이 제대로 복원까지 된다면 정말 멋지겠네요.
통정 강회백 선생과 정당매
단속사지에는 남다른 게 하나 있답니다.
단속사 절터도 이름난 곳이긴 하지만, 여기엔 꽃샘추위가 일렁이는 봄철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랍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바로 이 나무 때문이랍니다.
매화나무랍니다.
산청에는 산청 3매(梅)가 있답니다.
바로 남사마을의 원정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그리고 덕산 산천재의 남명매입니다.
그중에 바로 위 사진 속 나무가 <정당매>랍니다.
<단속사지 정당매>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 겸 대사헌을 지냈던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1357~1402) 선생이 고향 마을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매화라고 합니다. 무려 650 년 되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매화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정당매가 그만 2013년경에 고사하고 말았답니다. 그 무렵에 정당매의 가지 일부를 잘라 접목을 해서 자라게 했다고 합니다. 2014년에 완전히 고사된 정당매 옆에다가 후계목으로 심어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게 아주 잘 자라서 지금은 꽃도 피우고 있답니다.
이렇게 가지를 잘 뻗고 있답니다.
정당매 옆에도 아직 어린 매화나무가 여러 그루 있답니다.
봄철 매화가 필 때 여기 오면 그윽한 매화향과 함께 예쁜 꽃구경을 하겠네요.
설마 이런 기왓장은 그 옛날 건 아니겠지요? ^^
정당매 옆에는 비각이 하나 있습니다. <정당매각(政堂梅閣)>입니다.
<정당매각(政堂梅閣)>편액입니다.
정당매각 안에는 빗돌이 두 기가 있습니다.
왼쪽에는 <통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通亭姜先生手植政堂梅碑)>라고 쓰여있고,
오른쪽에는 <정당문학통정강선생수식매비(政堂文學通亭姜先生手植梅碑)>라고 쓰여있습니다.
모두 정당문학 벼슬을 지낸 통정 강회백 선생이 매화를 심은 것을 기념하는 빗돌입니다.
빗돌 위로는 여러 현판들이 걸려있군요.
단속사지 당간지주
이번에는 옛 단속사의 들머리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갑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곳이네요.
어머나~!
뜻밖의 풍경을 만납니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을 만나다니요?
아이들이 놀랄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서서 한참 동안 구경했네요.
바로 여기에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네. 단속사 당간지주입니다.
당간지주는 보통 절집의 들머리에 세우는 것입니다.
절집에서는 영역을 알리거나 법회 의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절집 문 앞에다가 깃발을 걸어 알렸지요. 이때 사용하는 깃발을 '당'이라고 하고 그 당을 묶어두는 기둥을 '당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간을 양쪽 끝에서 지탱해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바로 '당간지주'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 당간지주가 있다는 건 여기가 바로 천년고찰 단속사의 들머리였다는 걸 말해주지요.
단속사 당간지주도 몇 차례 고쳤다고 합니다. 기둥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 방치되고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기둥 한 개는 여기 정당매각 벽에 문을 달던 기둥으로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걸 모두 복원을 했다고 하네요.
단속사지와 남명 조식 선생
단속사지에서 또 다른 볼거리가 있는데요.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랍니다.
바로 <남명선생 시비>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빗돌이 선생이 남긴 시를 새긴 빗돌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탓인지 글자는 거의 알아볼 수 없더군요.
남명선생 시비(南冥先生詩碑)
贈山人惟政 산인 유정에게
花落槽淵石 마당가 수조에 꽃잎 떨어지고
春深古寺臺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別時勤記取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靑子政堂梅 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을 때
단속사지 절터 어귀에 있는 이 비는 남명 조식 선생께서 단속사에 와서 사명당 스님한테 준 시(詩)랍니다.
선생과 사명당은 나이 차이가 무려 마흔셋, 남명은 1501년에 태어났고 사명당은 1544년에 태어났지요.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대도 이렇게 두터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시대가 숭유억불정책을 펴던 시대였기에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남명 선생과 사명당이 만나기 전에 이 단속사에서 아주 놀라운 일이 있었답니다. 그건 바로 진주 유생인 성여신과 그 일행이 불상과 경판들을 깨부수고, 또 절집의 사천왕상 모습이 괴기스럽다며 불을 질렀답니다. 숭유억불이 팽배해 있을 때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건 참으로 잘못되었다 싶네요.
요즘 현대에도 절집들 찾아다니면서 그 앞에서 찬송가 부르고 탑이나 불상에 테러를 하는 사건들이 일어났지요. 종교를 떠나 이런 짓은 하면 안 되는 거지요.
굉장히 오랜 역사를 지니며 1,200여 년 전 많은 고승들이 여럿 거쳐갔던 단속사, 폐사가 된 정확한 연대는 기록으로 남은 게 없지만 아마도 그때 이후로 단속사가 차츰 폐사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답니다.
옛 절집은 그 영화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절터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오랫동안 남아있겠지요? 그리고 지금도 발굴조사를 하고 있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지난 10월 중순께 다녀온 <산청 단속사지>를 소개해드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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