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2024년 4월 2일)은 의병장 왕산 허위(1855년 4월 2일~1908년 9월 27일) 선생 탄신 170주년을 맞아 춘계 향사가 열렸답니다.
제가 사는 구미시 임은동에 있는 <왕산 허위선생 기념관> 옆에 있는 경인사(敬仁祠)에서 열렸지요.
왕산 허위 선생은 누구?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은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895년 10월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11월 단발령에 항거하여 1896년 을미의병 때 김산(지금의 김천) 김산향교에서 의병을 창의 했답니다.

김산 의병은 충북 진천까지 진격하였으나 고종의 밀서에 따라 의병을 해산하고 청송 진보에 있는 맏형한테 가서 다시 학문에 애썼지요.

1899년 중앙 관직에 진출하는데 성균관박사, 평리원 수반판사와 재판장, 의정부 참찬, 비서원 승 등의 관직에 두루 올랐지요. 그러다가 1904년 평리원 수반판사로 재직할 때에 일제가 '한일 의정서'를 강제로 조인케 하는 등 우리나라 침략에 더욱 열을 내자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고 전 국민이 의병의 대열에 나서줄 것을 호소하며 항일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선생을 미워했던 일제가 대한제국정부를 압박하고 협박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지요.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이어서 광무황제의 강제 퇴위, 정미 7 조약의 체결,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등, 나라의 국권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자 선생은 1907년 다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해 11월에 선생의 의병부대와 이인영 의병부대를 주축으로 전국 의병의 연합군인 13도 창의군을 조직하여 서울 진공작전을 전개하여 전국에서 1만여 명 의병을 양주로 집결시키고 서울 동대문 밖에 집결하도록 하고 선발대로 300 명 의병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깊숙이 진공 하여 치열하게 교전을 벌였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리고 본대가 때맞춰 도착하지 않아 패하고 후퇴합니다.

비록 서울 진공작전은 실패하였지만 전국의 의병 부대가 모여서 서울 진공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지요. 이 뜻깊은 일을 기리려고 서울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 3.3km 구간을 선생의 호를 따서 <왕산로>라고 한다지요?

그 뒤로도 경기 북부지방에서 의병활동을 이어가던 중 일본군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1908년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54세 일기로 순국하셨습니다.
왕산 허위 선생이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였다고 합니다.

오늘(4월 2일)이 바로 선생의 170주년 탄신일을 맞아 춘계 향사가 열리는 거였답니다.
오래 앞서 지난 2009년 12월에 제가 왕산 허위 선생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기사로 실은 적이 있습니다.
형은 땅팔아 군자금 대고, 동생들은 독립운동하고
"어머나! 허위 선생님은 온 집안이 모두 독립운동가네? 정말 대단하시다. 그나저나 참 뿌듯하다. 우리 마을에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나셨으니 무척 자랑스럽다.""그러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저
www.ohmynews.com
허위 선생의 형이 땅을 팔아 군자금을 대고 동생들은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온 집안이 독립운동가였답니다. 한집안에서 무려 14명이나 되는 독립운동가가 나셨다고 하면 믿어지십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 가요?
왕산 허위 선생 탄신 170주년 춘계 향사

오늘 춘계 향사에 애쓰시는 분들의 명단이 걸려 있습니다.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등 여러 제관들이 애쓰시네요.

오늘 향사를 총 진행하는 분이십니다.
명단에 보니, 대축(大祝) 권기봉(權奇鳳)이란 제관이 있던대요. 아마 이 분을 말하지 싶습니다.
아,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정확하게 모르거든요.
이런 제례의식과 절차 같은 건 잘 모르고 실제로 보는 것도 드물지요.
살면서 한 두세 번 본 게 다인데 그때마다 몹시 궁금하더라고요.


술을 올리러 갈 때에도 이름이 불리면 한 분이 모시고 가더군요.
이렇게 서로 인사를 하고

깨끗한 대야에 물과 수건이 있습니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사당 앞에 올라서서 또 서로 절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더군요.

사당 안에는 위패가 모셔져 있고요. 그 앞에 제사상이 차려졌는데,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생고기로 올렸더군요.
무와 부추도 있고요. 밤, 대추, 육포, 명태포인지 포 종류도 보였습니다.

다 끝난 뒤에는 다시 내려와서 사당을 향해 절을 합니다.

차례로 술을 다 올리고 나면, 대표되는 분들 두 분이 사당 밖으로 소반을 들고 나와서 술잔을 받아 마시고 안주도 하나 먹더군요.

이때 제관들이 먹던 술과 안주입니다.
안주는 밤과 대추, 그리고 육포더군요.



모든 제관들이 사당을 향해 절을 하고

가장 마지막에는 오늘 이 향사에 애쓰신 분 세 분도 사당을 향해 절을 한 뒤, 진행하시던 분이 마쳤음을 고하는 말로 이 향사가 모두 끝이 났답니다.(이 세분이 초헌관, 아헌관, 축관이지 싶습니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애쓰셨던 제관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갈무리합니다.
오늘 저는 왕산 허위 선생님 춘계 향사가 있다는 소식을 며칠 앞서 걸개막을 보고 알았지요. 그래서 일부러 이 향사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궁금해서 왔는데 참 뜻깊은 시간이었답니다.
와서 보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모이지는 않았네요. 이런 제례 행사 때에는 지역 시장이 초헌관을 맡을 때가 많던데 오늘은 시장님도 안 왔더군요.
행사 뒷정리를 하는 분들께 여쭈었더니, 선생이 돌아가신 때에 맞춰 열리는 추계 추모향사 때에는 유족들도 오시고 좀 더 많은 분들이 오신다고 하더군요.
서대문형무소 제1호 사형수 왕산 허위


왕산 허위 선생은 일제강점기(1910~1945) 바로 직전까지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알고 두 번씩이나 의병을 일으켜 항일 의병운동을 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선생께서 서대문형무소에서 제1호 사형수로 순국하기 앞서 남긴 유서입니다.
아버지의 장사를 아직 마치치 못했고
국권을 회복하지 못했으니
충성도 못했고 효도도 다하지 못했으니
죽은들 어찌 눈을 감겠는가
선생의 숭고한 뜻과 그 충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독립운동가의 삶, 그리고 남겨진 유족, 또 후손들의 삶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된 이야기들 가운데에 선생의 후손들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신 이야기도 있답니다.
한 집안에 14 분이나 되는 독립운동가가 나왔는데, 땅 팔아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모두 군자금으로 대고, 그것도 모자라 목숨 바쳐 싸우다가 돌아가셨는데...
이럴 때는 늘 화가 나지요.
오늘날까지 친일한 사람은 후손 대대로 잘 먹고 잘 살지만, 독립운동하다가 순국하신 분들의 후손들은 왜 그리도 힘들고 모질게 살아야 하는지...
또 이 분들을 마주하는 지자체와 단체장들의 태도도 못마땅한 게 너무나 많더라고요.

오늘 춘계 향사가 치러졌던 왕산 기념관 경인사와 멀잖은 곳에 선생께서 태어나신 생가 터가 있습니다.
오늘은 왕산 허위 선생의 탄신 170주년 춘계 향사와 선생이 의병활동을 하면서 살다 가신 발자취를 소개했는데 이다음에는 생가터와 기념관, 또 선생과 관련된 뒷얘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 - 경북 구미시 왕산로 28-33
왕산 허위 선생 묘소 - 경북 구미시 임은동 산 7
https://sunnyhanbit.tistory.com/450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 온 집안이 독립운동가, 대우를 가벼이 하지 말기를...
왕산 허위 선생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의병장이자 독립운동가입니다. 앞서 탄신 170주년 춘계 향사를 소개하면서 선생의 삶은 자세하게 소개를 했지요.이 글 맨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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