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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선생 유허지에서 멀잖은 곳에 아주 멋진 고택이 있어 둘러봅니다. <홍성 노은리 고택>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앞서 홍성 쪽에 가볼 만한 문화유산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봤던 집이 바로 이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이 집의 이름이 달랐답니다. <엄찬 고택>이라고 했었지요.
성삼문이 태어난 집 or 엄찬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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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이 집이 성삼문 선생과 관련이 있는 건물이었나? 하고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엄찬 고택은 '성삼문의 외손인 엄찬이 살던 집이다' 쯤으로만 알았을 거예요. 아무튼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합니다. 하기야 성삼문 선생 유허지도 여기를 지나가면서 '아, 맞다! 그런 게 있었다!' 하는 걸 기억해 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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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안내판도 새로 고쳐서 덧대어 놓은 게 보입니다. 저 부분을 새롭게 고친 게 틀림없네요.
이 집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성삼문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육신은 단종을 임금으로 받들려다 목숨을 바친 6명의 인물로 조선 중기 이후에는 충성과 의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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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 선생이 태어난 집으로도 알려진 이 노은리 고택의 옛 이름은 '엄찬 고택'이라고 했는데요. 엄찬은 성삼문 선생의 둘째 딸인 효옥의 아들이랍니다. 그러니까 성삼문 선생의 외손자인 것이지요.
단종복위운동인 병자사화(丙子士禍)로 사육신들의 가문에 삼족이 멸하는 희생을 치렀지요. 이때 집안의 남자들은 다 화를 당하였고 여인들은 노비가 되었다는 걸 지난 글에서 말씀 드렸지요.
선생의 부인인 연안 김 씨 차산과 둘째 딸 효옥이 뒷날 선생의 외가인 이곳 노은리 마을에 와서 살았다고 합니다.
부인이 죽은 뒤에 딸 효옥이 아들 엄찬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았고 신주를 모시며 1676년 전까지 제사를 지냈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직계 자손이 없어 외손이 제사를 받드는 '외손봉사'랍니다.
그 외손 봉사를 했던 분이 엄찬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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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옛집은 바깥에 대문간채가 가장 먼저 있기 마련인데, 이 집은 넓은 마당이 먼저 반겨줍니다. 그리고 바로 보이는 건물이 중문간채랍니다. 아마도 그 옛날에는 대문간채와 사랑채도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더군요. 대신에 중문간채 바깥으로 작은 마루를 내고 사랑채 역할을 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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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리 고택을 서쪽에서 보면 8칸짜리 건물입니다. 규모가 굉장히 큰 집이지요.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이 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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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집의 특징 중에 하나는 지붕에 있는데요. 한 집에 여러 종류의 지붕 형태를 다 갖추고 있답니다.
북쪽에서 보는 방향인데요. 오른쪽은 맞배지붕(사람人 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요. 왼쪽은 팔작지붕(여덟 八 자 모양)입니다. 그리고 서쪽에서 보는 방향은 우진각 지붕(초가집 같은 삼각형 모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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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특징은 집의 형태가 경사진 땅을 그대로 살려서 집을 지었답니다. 오른쪽이 훨씬 더 높지요? 아마도 안채와 이어지는 곳이 경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기단을 땅의 높이를 살려서 쌓고 그 위에다가 건물을 지었네요. 이건 안채에 들어가서 보면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따로 한 칸은 아마도 외양간으로 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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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간채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마당이 제법 큰 편입니다.
마당 가운데가 우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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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펌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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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 들어와서 보면 대청이 있는 쪽이 훨씬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양쪽에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네요. 안채는 ㅁ 자 형으로 된 구조인데요. 옛집을 보면 어디나 이렇게 바깥에서는 전혀 볼 수 없도록 폐쇄된 모습을 갖추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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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대청도 겹마루로 했습니다. 안쪽에 기둥이 있고 바깥으로 마루를 덧대어 놓고 기둥도 또 세웠네요. 북쪽 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쪽마루도 놓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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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안쪽과 바깥에 다 기둥이 있는 겹마루입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테고 나중에 마루를 덧대고 바깥 기둥도 세운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청이 훨씬 넓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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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에 서서 보면, 마당 쪽이 굉장히 낮지요? 하인들이 있었다면, 저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되겠네요.
앞쪽에는 광채가 여러 개 있고요. 왼쪽에는 부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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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오른쪽 대청 옆에 있는 방문을 열어보았는데요. 대청의 길이만큼 방이 있습니다. 아까 바깥에서 봤던 중문간채 마루와도 통하는 방이랍니다. 사랑 역할을 했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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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안채에서 행랑채로 이어지는 곳에 양쪽으로 날개집을 두었습니다.
이중 아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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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리 고택은 일반 옛집들보다 매우 남다른 게 참 많습니다.
경사가 진 땅을 살려서 집을 짓다 보니, 부엌에 들어와 보면 천장이 굉장히 높답니다. 또 방에 불을 때거나 밥을 해 먹으려면 아궁이가 있어야 하는데요. 남다르게 이중으로 된 아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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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집에는 방 하나에 아궁이가 하나인데 이 집은 두 개씩 있답니다. 그것도 아래 위로요.
요리를 하는 아궁이는 아래에 있고 부뚜막 위쪽에 아궁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처음엔 무심코 봤다가
"어? 그런데 저 위에 구멍은 뭐지?"
하고 다시 들여다봤답니다.
그러니까 아래 아궁이는 솥을 걸고 요리를 하고 방을 데우는 아궁이는 그 위에다가 불을 지펴야 하는 거랍니다. 어쩐지 저렇게 높은데 이 아래에서 암만 불을 때어 봐도 방이 따뜻할 수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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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가 높은 안채와 연결된 부엌과 광채 위로는 다락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아까 밖에서 본 날개집으로 이어진 공간이 바로 다락방이었던 겁니다.
다락 아래에 있는 아궁이는 이중으로 된 게 아니네요. 마루로 이어진 다락방이라서 불을 땔 필요가 없겠군요.
둘러보니, 이 집이 참 갖가지 형태로 된 게 무척 재밌습니다. 요모조모 놓치지 말고 꼼꼼하게 보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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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동쪽은 아주 멋들어지고 높은 굴뚝이 두 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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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대청 뒤쪽으로 보이던 문이 나란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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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간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마루입니다.
저 마루에 앉아서 바깥을 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고 참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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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가장자리에는 빙 둘러서 물길을 따로 놓았습니다. 배수로를 따라 물이 흘러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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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바깥에서 보면 기둥이 있는 곳마다 이렇게 양쪽에다가 널빤지를 덧대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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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옛집을 짓는 대목장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옛 건물 나무에 송진이 배어 나오는 건 아주 좋은 나무로 지은 집'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나네요. 드문드문 이렇게 송진이 배어나는 걸 여러 개 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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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노은리 고택은 지난 2016년에 개인 소유였던 걸 제대로 관리하려고 홍성군에서 3억을 들여 사들였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러면서 둘레에 있는 성삼문 선생 유허지와 부인 묘소, 부모님 묘소 등 여러 유적들과 함께 사육신인 매죽헌 성삼문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활용하고 관광화 하려고 한 듯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번듯하고 아름답게 고쳐지었고요. 안내판도 고쳐 세운 듯합니다.
어쨌거나 사육신인 성삼문 선생의 유허지에서 선생과 아버지 성승 장군, 그리고 선생의 부인과 딸, 또 외손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주 값진 시간이었답니다.
홍성 노은리고택 -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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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LgqBJM0REE?si=ShFT7CT_xwEnXN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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