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마을 문지기로 우뚝 선 금곡리 느티나무의 나뭇가지가 한없이 뻗어있습니다.
마을 이름이 '노래'라고요?
하하하! 퍽이나 재미난 마을 이름입니다.
자연유산인 마을 지킴이 보호수 나무 이야기
우리나라 국가유산에는 크게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이 있습니다.
한빛이 주로 찾아가서 보고 오는 곳이 서당이나 향교, 서원, 정자, 고택 등 문화유산이 많이 있지요. 이번에는 문화유산과 함께 자연유산도 따로 기획하고 꾸준히 계절에 따라 찾아다니며 보고 틈틈이 소개하려고 한답니다.
새해 첫날에도 가까운 김천에 있는 신목 나들이를 다녀왔지요. 어제 둘러본 곳은 잠깐 소개를 했었고요. 오늘은 얼마 앞서 다녀온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 느티나무를 소개할까 합니다. 나무뿐 아니라, 그 마을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고 들어보면서 갈무리할까 합니다.
김천 금곡리 느티나무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1219
마을 들머리 찻길에서 2m쯤 우뚝 솟은 곳에 서있는 느티나무입니다.
2004년 12월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인데 올해 나이로 471살!
나무의 높이는 17m, 나무 둘레가 6m나 되는 느티나무입니다.
밑둥치의 근육이 굉장하네요.
이 느티나무도 언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병치레를 한 듯하네요. 앞쪽으로 뻗어있는 큰 나뭇가지 하나가 끊어져 있습니다.
그것 말고는 큰 상처는 보이지 않네요.
이 금곡리느티나무는 뒤쪽으로 근사하게 지은 양옥집 마당에 있답니다. 본디 나무가 먼저 터 잡고 있었을 터인데, 앞으로 찻길을 크게 내면서 길 위로 올라앉아있게 된 듯하고요. 그 뒤쪽에 집을 짓게 되었나 봅니다.
나무가 있는 위로 올라서니 저렇게 돌로 만든 평평한 평상이 놓여있습니다. 그것도 두 개나요. 그 옛날 같으면 마을 어르신들이 이 돌판에 앉아서 느티나무 그늘 삼아 쉬던 곳이었겠습니다.
여기 올라와서 촬영을 하는데 이 집 강아지가 제 할 일 다 한다고 어찌나 짖어대던지..... 하하하 어쩌겠어요. 낯선 이들이 와서 얼쩡거리니 말이에요. ^^
금곡리 마을 들머리인데도 사실 집이 몇 채 안 보입니다.
알고 보니, 마을은 이 금곡리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깥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곳이더군요.
한구비 돌아 들어가니 저기 앞에 데크 길이 보입니다.
아하, 이 안쪽에 저수지도 있었네요.
적하지라고 합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저수지를 따라 들어가니 저렇게나 많은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도 마을이 꽤 큽니다.
노래, 노오래, 적하 마을
아하, 밥집이 하나 보이는데 <노오래 연못가든> 간판이 걸려있네요.
이 마을의 이름이 행정지명으로는 지금 '금곡1리'입니다. 그런데 예부터 일컬어왔던 이름은 '노래', '노오래' 마을이라고 하더군요.
'노래'는 한자로 '노을의 바로 아래'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붉을 적(赤) 아래 하(下) 자를 써서 적하(赤下)라고 했다네요. 마을이 산골짜기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해가 빨리 지고 노을이 빨리 물든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금곡1리 버스정류장인데요. 시골 마을인데도 꽤 근사하게 만들어 놓았네요.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된 이름인 '적하리'였고, 1914년에는 부곡, 비실(배실), 비곡, 적하를 합하여 금곡동이라 했다가 1988년에 다시 금곡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 안쪽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띄더군요. 바로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오랜 세월 살아온 파평윤씨(坡平尹氏) 재실이더군요.
이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파평 사람 윤완이라는 선비가 서울로 가는 길에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홀로 살던 경주 김씨 낭자와 혼인하여 그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조선 선조 때에 노 씨 성을 쓰는 한 식구가 들어와서 터 잡고 살면서 마을을 일궜다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선조 때이고 임진왜란 때 이야기이니 아마도 전쟁을 피해 들어와서 자리 잡은 마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평윤씨 재실이 있고 또 마을 분의 이야기도 따로 들을 수 있었는데 '파평윤씨'가 거의 80~90% 살고 있다고 합니다. 집성촌이지요.
또 옛날에는 집이 100호쯤 되는 큰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반밖에 안 되는 50~60호 남았다고 하고요. 반이라도 남아있다는 건 지금도 시골마을에서는 꽤 큰 마을로 치지요.
노오래 마을은 굉장히 조용하고 깨끗했답니다. 그야말로 청정지역이고요. 저기 들머리와는 다르게 여기에는 강아지도 짖지 않더군요. 저 강아지가 어찌나 귀엽든지... 촬영하는 내내 저 녀석이 사람구경을 하더군요. 하하하!
골뱅이설과 적하 저수지
저기 오른쪽에 보이시나요? 한빛이 마을 주민께 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인재가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장군이나 판사도 나왔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 마을이 '골뱅이설'인데 마을 입구가 하나이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오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아마도 골뱅이 지형으로 생겼다는 말인듯했어요.
"골뱅이는 물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1970년도에 이 저수지를 팠어요."
마을에서 만든 저수지에 데크길도 놓였네요. 아주 예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의 이름이 노을 바로 아래 마을이라는 노래, 노오래 마을인 것처럼 해가 지면 이 적하지에 발갛게 노을이 잠길 듯합니다. 그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예쁜 상상을 해봤답니다.
https://youtu.be/8lMH95AODAk?si=BAy6bPiJhb1deEAr
↑금곡리 노오래 마을 주민 인터뷰 내용도 따로 실었습니다.
마을엔 빈집도 더러 보입니다.
이 집은 가장 처음에 보이던 집인데 어느 식구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을 터전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게 현실인데요. 시골마을에 가면 흔하게 보는 풍경인데도 왠지 가슴 짠합니다.
아, 이 빈집 지붕 용마루 바로 아래에 글씨가 보여서 당겨서 찍었더니 백호(白虎)라고 쓴 글씨입니다.
흰 호랑이를 뜻하는 말이네요. 예부터 서쪽 방위를 지키는 신령을 상징하는 게 바로 '흰 범'이라고 하네요.
노을 바로 아래 마을, 노을이 빨리 물드는 마을, 이 집을 지을 때 가문의 안녕을 빌며 쓴 글씨가 아닐까? 하는 저 혼자 만의 생각도 해봤답니다.
때마침 금곡리 노오래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더군요. 잠깐 있다가 다시 나갈때 보니, 승객이 여럿 보이더군요. 아까 안에서 버스 정류장도 봤는데 마을 안까지 버스가 드나드니 참 기분 좋았답니다. 요즘은 시골에서도 승객이 자꾸만 줄어드니까 노선을 없애고 버스도 많이 줄인다고 해서 어르신들이 많이 걱정한다고 하는데 이 마을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요.
오늘은 김천시 감문면 노오래 마을 이야기와 함께 마을의 문지기인 금곡리느티나무까지 함께 둘러봤습니다.
금곡리느티나무 - 경북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 1219
적하지 - 김천시 감문면 금곡리800
★제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 소개한 금곡리느티나무와 노오래 마을 이야기 영상으로도 보세요. ★
https://youtu.be/20e4l61NaSI?si=BoiwSAbOWYOBPu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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