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에 400년 가계를 이어온 내시 고택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
네. 맞아요. 조선 궁궐의 내시가 살던 옛집이에요.
궁궐에서 일을 하던 내시가 웬 집이냐고요?
내시도 평생 궁궐에서 사는 게 아니라 퇴직하면 나라에서 살 집을 마련해 주고 또 달마다 쌀 12말씩 준다고 합니다. 퇴직을 해도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찾아간 곳은 청도군에 있는 <청도 운림고택>이랍니다. 400년 가계를 이어온 내시 고택이랍니다.
본디 <임당리 김씨고가>라고도 했던 이 고택은 상선(종 2품)을 지낸 김병익이 지은 집인데 나중에 고종 때 내시(정 3품) 김일준이 중수한 집이랍니다.
대문채는 방이 두 개가 있고 창고가 하나, 또 앞에 구유가 있는 걸 보면, 외양간을 여기에 두었나 봅니다.
운림고택은 대문채에 들어서면 왼쪽에 큰사랑채가 있답니다. 주로 바깥어른이 기거하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 큰사랑채가 바깥에 있는 까닭도 따로 있답니다. 궁금하시지요?
찬찬히 소개할게요.
대문채 오른쪽에 바로 보이는 건물은 중사랑채입니다. 이 중사랑채를 통해서만 안채로 들어갈 수가 있답니다.
중사랑채 앞쪽에는 작은 연못이 있네요.
집 안에도 이렇게 안채를 빙 둘러 담장을 쌓았네요. 내시 고택이라는 걸 생각하면 조금 폐쇄적인 느낌이 듭니다. 아니, 그랬기 때문에 집도 이렇게 지었나 봅니다.
연못 앞에는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하얀 꽃이 무척 예쁩니다.
중사랑채 문 앞에 서서 바라봐도 안채가 한 눈에 안 들어옵니다.
내시 고택의 하트 구멍은 무슨 의미가?
아~! 그런데 중사랑채 들머리 바로 옆에 아주 남다른 게 눈에 띕니다.
중사랑채를 막아놓은 판자인데 여기에 하트 구멍이 세 개가 뚫려 있네요.
그냥 예쁜 무늬로 만든 건 아닌 듯한데 말이에요.
저도 궁금해서 하트 구멍으로 안쪽을 들여다봤어요.
중사랑채 방문이 보입니다.
그런데 중사랑채는 이렇게 바깥쪽으로는 뚫려 있네요. 처음 집을 지을 때에도 이랬는지는 모르겠어요. 어찌 되었든 안채는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랍니다.
중사랑채 안쪽에서 하트 구멍으로 바깥쪽을 볼 수도 있네요.
내시인 바깥 주인이 큰사랑채에서 기거하면서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을 감시하는 데에 쓰였다고 합니다.
언제라도 한눈에 볼 수 있는 구조인 것이지요.
내시라는 특성상 안채에서 사는 부인을 감시하기도 하고 또 아무나 드나들 수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내시고택 안주인은 안채에서만 갇혀 살았다는데...
안채로 들어왔어요.
안채는 ㅁ 자 모양으로 된 구조랍니다.
왼쪽으로는 큰 고방채가 두 채 있습니다. 오른쪽은 안주인이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내시 집안의 안주인들은 여기 안채에서만 평생 살았다고 합니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해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이 안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니, 그 갑갑하고 답답한 생활을 어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애틋하기까지 합니다.
그나마 이렇게 큰 고방채(곳간)가 두 채나 눈앞에 있다는 게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중사랑채 안쪽 굴뚝 옆으로 난 좁은 통로가 보이시나요?
여기 갔을 때는 이 쓰임새에 대해 잘 몰랐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내시 집안의 폐쇄적인 생활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거였다고 해요.
중사랑채에 든 손님한테 음식을 대접할 때 쓰이는 통로라고 합니다.
문 앞에 좁은 툇마루를 두고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판자로 막아놓았답니다.
여종이 중사랑채 손님한테 상을 들일 때, 이 툇마루에 두고 문을 두드리면 방에 있던 손님이 나와서 직접 가져가서 먹었다고 합니다.
이런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진을 좀 더 잘 찍었을 텐데 말이에요. 아쉽네요.
안채 마당에서 보면 정면에 보이는 중사랑채 앞에 작은 판자로 된 문을 덧대어놓은 게 보이지요?
바로 저곳이 그런 쓰임으로 만든 거라고 하네요. 그런데 그 옆에는 방문과 마루가 그대로 드러나있네요. 어쨌거나 이 내시 집안의 폐쇄적인 특성이 구석구석 스며있는 고택이라는 걸 많이 느낄 수 있었답니다.
저 큰 곳간 두 채에 곡식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사는 풍요로움만이 이 댁 안주인의 큰 즐거움이자 위안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고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곳간 한쪽에는 디딜방아가 있던 자리도 있네요.
곳간 뒤로는 뒷간이 있어요. ^^
안채 뒤쪽엔 사당이 있습니다.
이 운림고택을 둘러보면서 느낀 게 폐쇄적인 것 말고도 하나 더 있었는데요. 건물은 모두 크게 지었지만 화려함 없이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당에도 단청 하나 칠하지 않았어요.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잠겨 있어 구경할 수 없나? 했는데 담장 옆으로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답니다.
문도 열려 있네요.
위패는 없는데 단은 그대로 있네요.
1988년에 여기 사당 마루 밑에서 폭 7Cm 길이 70Cm짜리 두루마리가 발견되었는데, 임진왜란 직전 청도에 들어온 내시 가문의 족보였다고 합니다. 400년 16대에 걸친 다른 양자들 이름과 묻힌 무덤의 장소까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청도 운림고택을 둘러보면서 사내구실(?)을 하지 못하는 내시도 결혼도 하고 자식들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궁궐에서 어린 내시들 중에 골라서 양자로 들여서 족보에도 올려서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다른 무엇보다도 이 댁을 둘러보면서 내시 집안의 안주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볼 수 있었네요. 그런데 아무리 곳간을 가득 채우고 살아도 여인으로서 삶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 만의 생각일까요?
★ 청도 운림고택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 감상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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