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석과 여근석이 서로 마주 보다! [영동군 용상면 부상리 마을]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 큰골마을에 가면 찻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남근석과 여근석이 있답니다. 한 마을에 이 둘이 함께 마주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궁금해서 찾아갔지요.
남근석과 여근석을 한 마을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이렇게 남근석과 여근석, 이 돌을 합쳐 자웅석(雌雄石)이라고도 합니다.
이건 여근석인데요. 뒤쪽에서 보는 모습이랍니다. 그런데 여근석이라고 하기엔 뭔가 모양이 모호하지요?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자가 아이를 업고있는 형상을 한다고 합니다. 여근석 둘레로 붉은 황토흙이 뿌려져 있고 금줄을 둘러놓았네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찾아간 날이 희한하게도 대보름 바로 전 날이었답니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여근석과 대각으로 보이는 큰 돌비는 '부상리 마을 자랑비'랍니다.
여근석과 마주보고 서있는 남근석이 보입니다.
부상리 마을 남근석과 여근석에 얽힌 이야기
그런데 마을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처음부터 이 마을에 남석(男石)과 여석(女石)이 함께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엔 남근석만 있었는데 가뭄이 심했던 1940년쯤, 어느 날 노승이 지나가다가 마을에 가뭄을 면하게 하려면 곁에 여석이 있어야 한다며 여석이 있는 위치까지 알려주었다네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두 돌들이 서로 그리워하며 날마다 울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답니다. 또 이렇게 암 돌과 숫돌을 같이 있게 하지 않으면 마을에 큰 재난이 따를 것이고 이 두 바위를 멀리 떨어뜨려놓는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을 당할 것이라고 단단히 일러주고 갔다고 합니다.
노승이 말한 곳을 중심으로 산과 골짜기를 샅샅이 뒤져보니, 정말 신기하게도 가곡리 마을 창바위골에서 바로 여자가 아이를 업은 듯한 형상을 지닌 암 돌을 찾아서 인근 다섯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합동으로 숫돌 옆에다가 짝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는 정말 아무 탈없이 농사도 잘 되는 마을이 되었다고 하지요.
부상리 마을자랑비
그런데 부상리에 사는 어느 민씨가 집을 새로 지으면서 숫돌과 암 돌을 떨어뜨려놓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 얼마 못 가서 평소에 건강했던 부인이 병명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네요. 마을 사람들은 이 자웅석을 옮겨서 벌을 받는 거라고 수군거렸지만 민 씨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네요.
그런데 더욱 희한한 일은 이따금씩 까치와 까마귀들이 민씨집 유리창에 날아와 울부짖고, 머리를 들이받으며 죽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돌을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았고 그 뒤로 두 번이나 재혼을 했는데 새로 맞이한 부인들 둘이 모두 정신 이상으로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네요.
이런 괴상한 일이 잇다르고 민 씨도 죽고 난 뒤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서로 마주 보도록 세웠다고 합니다. 그 뒤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동제도 지내면서 마을 수호신으로 여기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질골막장소리 - 형석을 캐던 광산
이 마을에는 <질골막장소리>라는 문화행사가 이름났다고 합니다. 민속예술축제에 나가서 대상도 받고 은상도 받은 걸 기념해서 세운 빗돌이 있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질골막장소리>가 처음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동요인가? 했는데 실제로는 '형석'이라는 광물을 캐내던 '질골 형석(螢石 Fluorite)광산'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중엽에 개장됐으며 일제 강점기까지 채굴하고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인해 폐광된 형석(螢石 Fluorite) 광산으로 전국 최대였다고 하네요.
이 <질골막장소리>는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호흡을 맞춰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지루함을 달래려고 불렀던 노동요라고 합니다.
여석은 마치 아이를 업은 듯도 하고요. 또 다른 사람은 임신한 여자의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여석은 140×203cm 가량 크기입니다.
남석은 크기가 약 266cm
부상리 마을자랑비와 비문이 있어 한 번 읽어봅니다.
부상리는 대평(大平), 부상(扶桑), 도천(道川)의 3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상리의 입구에는 마을 자랑비와 함께 남근석과 여근석이 위치하고 있다.
부상리는 약 350년전 청주(淸州) 한 씨가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여흥(驪興) 민 씨, 경주(慶州) 김 씨 등 다양한 성씨가 살고 있다.
특히 여흥 민씨의 경우, 조선 말기 명성황후의 5촌 당질인 민영주(閔泳柱)가 부상리 448-2번지 일대에 99칸의 기와집을 세우고 살았었다고 한다. 부상리 주변 지역에 대한 민 씨 집안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집은 1940년경 헐리고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글 중에서...
오늘은 지난 2월에 다녀온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 마을에 있는 남근석과 여근석 이야기를 살펴보고 소개합니다. ^^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상리 6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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