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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과 나들이

<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18세기 독특한 건축법, 광채를 이렇게 멋지게 지을 수 있을까요?

by 한빛(hanbit) 202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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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미촌 마을에는 아주 보기 드문 옛집이 있다 해서 찾아갔어요. 바로 <영동 성장환 고택>입니다. <성위제 가옥>이라고도 한답니다. 미촌 마을인데, 옛 이름은 안산기미, 또는 안산구미라고 하는 마을이지요.

 

성장환 고택이 처음 지어진 때는 숙종 6년(1680) 쯤이라고 합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거의 20세기 초에 새로 지은 것들이고요. 다만 몇몇 부속 건물들은 20세기 때 건축기법이 아니라 그 옛날 처음 지었을 때 모습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성장환 고택 마굿간(외양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섰을 때 어떤 어르신이 옛집 구경 왔냐고 묻더니, 며칠 앞서 지붕을 새로 올렸다고 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초가지붕 위 짚들이 모두 새 것이네요. 꼬박꼬박 한 해에 한 번씩 지붕을 새로 올린다고 합니다.

마구간(외양간) 안에 말이나 소는 없었지만, 지붕을 올리고 남은 짚단들이 많이 있었어요.

지붕을 이을 때 쓰고 남은 새 짚과 헌 짚이 같이 있네요. 짚으로 지붕을 잇는 솜씨들이 정말 예술입니다.

사랑채입니다.

사랑채는 주로 바깥주인이 지내는 곳이면서 손님을 대접하기도 하지요.

사랑채 옆으로 대문이 있는데, 안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장환 고택 광채와 안채

사랑채 옆으로 난 대문을 따라 들어오니 이런 모습이 펼쳐지네요.

오른쪽 초가는 광채이고요. 왼쪽은 바로 안채랍니다.

먼저 안채부터 볼까요?

우와~! 안채가 무척이나 정겹게 보입니다. 고택이라고 해서 으리으리하고 높다랗게 치켜 올려다보는 집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굉장히 소박합니다. 보통 못해도 저 마루턱까지 단을 쌓고 그 위에다가 주춧돌을 놓아 올리기 마련인데 이 집은 야트막하고 낮게 지은 집입니다. 그래서인지 여기 들어오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치 고향집에 온듯한 생각이 들만큼 푸근하게 느껴지더군요.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짓는 담벼락

 

여기는 안채와 마주보고있는 사랑채의 뒤편입니다.

그런데 굉장히 남다른 게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고택들을 보았지만 이런 구조는 처음 봤습니다.

사랑채 뒤쪽에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그 통로를 사이에 두고 담장을 세웠고요. 참 신기합니다.

사랑채 아궁이
사랑채 뒤편 통로와 담은 안채와 사랑채를 구분짓는 가림막이기도 하다!

자세히 볼까요? 이렇게 좁은 통로를 사이로 두고 담장을 쌓았네요.

아마도 사랑채 뒷문으로 음식을 해서 나르기도 했겠지요? 그리고 이 담장은 자연스레 사랑방에 온 손님들이 안채를 들여다볼 수 없도록 했을 거고요. 참으로 슬기롭네요. 역시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장독대

그 집을 보면 집주인의 성품을 안다!

 

안채 마당에는 아직도 초가지붕을 올리고 남은 헌 짚들이 많네요.

안채 아궁이입니다.

참 정겹지 않나요?

우리 어릴 때에도 날마다 불 때는 일이 그야말로 일이었지요. 

안채에 딸린 툇마루와 쪽마루입니다.

기둥 안에 있는 마루를 툇마루라 하고 아궁이 위에 기둥 없이 놓은 좁은 마루를 쪽마루라고 합니다.

마루는 아주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군요.

성장환 고택 안채입니다. 

마루 끝에 걸린 글자들도 인상 깊습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과 보시천추(寶侍千穐)

가정이 잘 되어야 모든 일을 잘 이룰 수 있다는 것과 이 가옥을 보물로 여기고 천년을 보존하라!는 말입니다.

'보시천추'는 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었을 때에 누군가 축하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하네요.

마루에 걸린 이 액자는 이 집안사람이겠지요?

이 마을에 이 고택 이름인 '성장환' 님의 손자이고 이 고택의 또 다른 이름인 '성위제(성위제 가옥)'씨의 동생인 성택제 씨라고 하는군요.

사진에 ‘퇴직 교원 정부 포상 전수식(07.2.27)’ 이라고 쓰여있는데 아마도 오랫동안 교직생활을 하셨나 봅니다. 

마을 앞에 있는 공적비에 이분의 공적비가 있다고 합니다. 이 미촌 마을에 다리를 놓고 마을 발전에도 힘쓴 분이라고 하네요.

성장환 고택 안채 뒷모습

처음에 여기 안채를 보고 옛집에서 흔히 보던 위엄이나 높은 권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지요. 오히려 낮고 소박한 모습에 더욱 친근하여 고향집 같은 풍경이었지요. 이 집 안채 뒤쪽으로 돌아가니 역시 이 뒷모습 만으로도 그 맘씨가 느껴지네요. 옛집에 가서 굴뚝의 높이만 봐도 잘 알 수 있답니다. 밥 짓는 연기가 높이 담장 너머 나가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만든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댁 사람들은 이웃들한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왠지 집이 편안하게 느껴진 게 다 까닭이 있었네요. 

 

성장환 고택 안채 뒤쪽으로 가면 이렇게 우물이 나옵니다.

우물과 뒤주가 보이네요. 뒤주가 집 뒤쪽에 있는 것도 남다르다 하더군요.

성모사(성장환 고택 사당)

그리고 뒤꼍에 담장을 쌓고 그 사이 좁은 문인 '일각문'으로 나가면 이 집안의 사당이 있답니다. 한 칸짜리 건물인데 편액에 '성모사(聖慕祠)라고 쓰여 있습니다.  ‘성현의 반열에 오른 조상을 흠모하는 사당’이라 풀이하더군요.

18세기에 지어진 광채에 남다른 건축기법이?

 

성장환 고택의 광채

오늘 이 댁에서 가장 눈여겨봤던 건물인데요. 바로 '광채'입니다. 우리가 아는 '광'을 말하는 거랍니다. 곡식을 보관하는 곳 말이지요.

이 고택의 다른 건물들은 거의 20세기 초에 만들어졌답니다. 이 댁 안채 상량문에는 1927년에 고쳐지었다는 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광채' 만큼은 18세기에 지은 그대로라고 합니다. 그 모양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정면 4칸 건물인데 3칸은 막혀있고 끝에 한 칸은 열려 있습니다.

 

한 번 보실래요?

이 댁 광채는 못 하나 없이 오로지 나무와 나무를 깎고 파내어서 끼워 맞춰 넣는 방식으로만 만들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래 위쪽을 나무판으로 끼워 맞춰서 만들었답니다. 납작하게 자른 나무를 양쪽 모두 한쪽으로 어슷 깎아서 하나하나 끼워 넣은 기법이지요. 이런 건축 기법은 아주 남다른 것이라고 하네요.

 

광채 뒷면

 앞면과 마찬가지로 뒷면, 옆면 모두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두 주춧돌을 놓고 바닥에서 띄워놓았습니다. 곡식을 저장하려면 통기성도 좋아야겠지요? 정말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는... 언제나 놀랍습니다. 

 그리고 광채의 창살 또한 매우 남다릅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각 기둥마다 네 개의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다가 작고 좁은 나뭇가지를 끼워 넣었답니다. 손으로 만지면 단단하게 끼워진 게 아니라 구멍이 헐거워서 그냥 손쉽게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멋스러우면서도 환기가 잘 되도록 한 듯합니다.

 

안채에서 바라보는 풍경인데요.

광채 저 앞쪽에 문간채가 있습니다. 행랑채라고도 하고요. 왼쪽 끝에는 대문도 있습니다.

어쩌면 예전에는 저기를 대문으로 썼을 듯합니다. 이 댁에 식구들이 많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아까 들어왔던 오른쪽 대문은 아마도 중문으로 쓰였지 싶습니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성장환 고택의 '광채'는 오늘날에도 '빛'이 납니다.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을까요?

집 앞 너른 마당에 굉장히 큰 연자방아 맷돌이 있네요.

이 댁의 규모를 알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 영동 학산면 봉림리 미촌마을, 성장환 고택을 둘러봤습니다. 

남달리 마음 편하게 느껴지는 집, 부잣집 큰집이었지만 아름답고 자랑거리가 많은 집, 구석구석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는 집이었어요.

모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옛집에서 한참 동안 머물다가 왔답니다.

 

아, 이 옛집 너머로 뒷산을 '황새산'이라고 했다네요. 여기는 봄철에 백로가 찾아오는 백로 서식지라고 합니다. 마을 들머리에 있는 큰 왕버들나무도 매우 인상 깊은 곳이랍니다.

https://youtu.be/uwGgjF_1r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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