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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과 나들이

<논산 개태사> 태조 왕건의 호국사찰 개태사와 개태사 큰 가마솥(철확)

by 한빛(hanbit) 2021.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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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개태사

절집에 갔을 때 참 편안하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지요. 절집 처마 끝에 달려 은은하게 소리 내는 풍경처럼 아주 평안한 느낌을 받고 온 논산 개태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논산 개태사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을 하고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호국사찰이랍니다.

여기엔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 <어진각>도 있답니다.

개태사 들머리 양쪽에 연못이 있답니다.

수련이 수줍게 피어있더군요.

개태사에 가서 가장 처음 만나는 전각은 바로 신종루(神鐘樓)입니다.

신종루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개태사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안쪽으로 들어와서 보는 신종루입니다.

큰 종과 큰 법고, 그리고 목어도 보이네요.

개태사는 굉장히 크고 너릅니다.

개태사 오층석탑(충남 문화재자료 제274호)

개태사 너른 마당 한가운데에는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석탑이고요. 원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던 게 아니고요. 처음 개태사지로 있던 곳이 여기보다 북쪽에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 개태사는 1900년대에 새롭게 중창을 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오층석탑도 1층 탑신 위쪽과 5층의 지붕돌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걸 맨 아래쪽 기단과 5층 지붕 위에 있는 보주(탑 맨 꼭대기에 있는 구슬 같은 모양) 등을 복원했다고 합니다.

각 층마다 있는 옥개석 네 귀퉁이가 살짝 들린 모양과 선이 참 아름답지요?

저기 보이는 전각이 바로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 <어진각>이랍니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그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절집이 바로 <개태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만큼 그 옛날 고려 때에는 굉장히 큰 절집이었겠지요?

개태사 대웅전인데요. 보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새롭게 지은 것인지 아주 깨끗합니다.

그리고 아직 편액을 가려놓았네요.

나중에 둘러보면서 알았는데 개태사 대웅전을 중창했다는 걸 알았네요. <개태사 대웅전 중창불사 조감도>가 따로 있었답니다. 

마당 한쪽에는 제법 자란 반송이 푸르고 싱싱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어머나~! 이건 또 무슨 일?

 

삼성 미술관 Leeum 홍라희 관장은
개태사 금동대탑을 반환하라!

삼성문화재단은 개태사 금동대탑 국보213호를 반환하라!

-개태사 금동대탑반환 추진위원회-

 

쌍둥이처럼 똑같이 지은 전각도 보이네요.

저건 따로 안내글이 없어서 어떤 건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요사채나 스님들이 공부하는 선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대웅전을 새롭게 중창하면서 다른 전각들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은 게 많은가 봅니다.

이렇게 큰 가마솥이? 가마솥에 얽힌 이야기도 가지가지!

개태사 한쪽에는 아주 남다른 게 있답니다.

바로 <개태사 철확>인데요. 충남 민속자료 제1호입니다.

개태사 철확

바로 이건데요.

이게 뭘까요?

'개태사 철확'이라고 했는데, 철확이란 쇠로 만든 솥을 말하는 거랍니다.

 

처음 개태사를 세웠을 때부터 부엌에서 쓰던 무쇠솥이라고 하는데요.

솥의 직경이 289cm, 높이는 96cm, 둘레는 910cm나 된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큰 무쇠솥입니다. 

무려 3m나 되는 이 큰 솥에다가 그 옛날 스님들이 먹을 국을 끓였다고 하는데 무려 50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하니 당시에 이 절집의 규모가 너끈히 짐작이 되네요.

이후 개태사가 폐허가 되는 바람에 벌판에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887년에는 큰 물난리가 나서 약 4km쯤 하류로 떠내려 가면서 일제 때 경성 박람회에 출품되기도 했다네요.

그런데 이 가마솥은 마을의 풍년과 흉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경성박람회 뒤에 마을에 흉년이 들자 연산 사람들이 총독부에 진정서를 내고 솥을 되찾아오려고 많이 애를 썼다고 하네요.

끝내 되찾아와서 연산 공원에 전시를 했다가 1981년에 지금의 개태사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가뭄 때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내리고, 수해를 막기도 하고 풍년이 들게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하니, 참 신기하지요? 게다가 또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요.

 

일제강점기인 1935년에는 일본 사람이 이 솥을 탐내서 부산항까지 가져갔는데 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겁에 질린 인부들이 말리는데도 그걸 배에 실으던 일본사람이 그만 번개를 맞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또 1944년에는 고철로 쓰려고 솥을 부수려고 하자 갑자기 천둥벼락이 쳐서 그대로 두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크기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깃들어있네요. 참으로 영험하고 신비로운 가마솥이네요.

 

태조 왕건의 영정을 모신 어진각

 

개태사 어진각

처음에 개태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그것을 기념하려고 세운 사찰이라고 했지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우게 된 것이 모두 부처님의 은공이라 여겨 개태사 낙성식에 친히 발원문을 지어 부처님께 올리고 통일된 고려의 국태민안을 기원하기도 했답니다.

어진각은 문이 열려있어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촬영 금지 안내판도 따로 없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안쪽을 찍을 수 있었답니다.

황금빛 채색을 한 태조 왕건의 어진입니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제를 올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어진에 나아가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는데 왕건 이후로는 개경과 거리가 멀어 왕실의 관심이 차츰 멀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에 들어와서 숭유억불정책으로 점점 쇠퇴해가고 말았지요. 끝내 폐허가 되고 말았고요.

옛 고려의 영화를 누렸던 개태사!

그 옛날 그대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자리도 달라졌지만 태조 왕건의 어진과 옛 개태사의 스님들을 먹여 살린 큰 가마솥(개태사 철확)이 남아있어 조금이라도 그 영화를 느낄 수 있어 참 좋네요.

너른 터에 있는 개태사

들어서면서부터 조용한 불경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어요. 무언지 모를 편안함을 느끼면서 절집을 둘러봤답니다.

왠지 모를 평안함이 들어서 참 좋았던 곳이었어요.

개태사 화장실

참 푸근하게(?) 보이는 해우소입니다.

그 옛날 고려 때에는 개태사가 지금 자리보다 북쪽으로 위쪽에 있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저쪽이었을까요?

저 멀리 암자처럼 보이는 건물도 있더군요.

개태사 마당 오른쪽에서 보는 출입문 신종루

논산 개태사!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세운 왕건이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왕실의 사찰이자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던 절집에서 왠지 모를 평안한 마음이 들어 참 좋았습니다.

 

https://youtu.be/quGAyeH-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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