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묻고 제방을 쌓았다는 슬픈 전설의 '공갈못',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천년 역사가 깃든 숨결이었습니다."
경북 상주의 조용한 마을 한구석에는 남한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자 조선시대 3대 저수지로 이름을 떨쳤던 '공검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둑이 허물어지고 옛 규모를 잃은 채 작은 연못으로 남아있지만, 얼마 앞서 다녀온 [공검지 역사관]에서 마주한 이 땅의 이야기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4세기 자연의 역사부터 시작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땀방울로 다져진 공검지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농경문화의 발상지 '공검면'
앞서 소개한 맛있는 집밥 같은 <공검한식뷔페> 바로 앞에 오늘 제가 소개할 공갈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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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공검면 양정리 마을에 있는 공검지는 신라에 병합되기 전, 삼한시대였던 고녕가야국(신라 때 고동람군, 경덕왕 때 고녕군, 고려 때는 함녕)에 속했던 지역이랍니다. 1018년 함녕이 상주에 속하여 함창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14년에 공검면 양정리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지역이랍니다.



공검지와 함께 우리나라 4대 저수지가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검지에는 아주 남다른 이야기가 있는데요. 둑을 쌓을 때, 자꾸만 둑이 허물어지는 바람에 '공갈'이란 아이를 묻고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옵니다.
헉~! 어마무시한 이야기네요. 예전에 '에밀레종'을 만들 때 이야기와 많이 닮았군요. 구전으로 내려온 이야기이지만 아무튼 그 바람에 이 저수지 이름을 '공갈못'이라고 한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여기 공검지를 공갈못이라고 알고 있었답니다.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공검지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공검지 역사관

공검지 바로 앞에는 <공검지 역사관>이 있는데요. 여기를 지금까지 네 번이나 와서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답니다.

왜냐고요? 여긴 희한하게도 일요일에는 문을 닫더군요. 얼마 앞서 상주 쾌재정 뒤쪽에 커다란 바위에서 바위에 새긴 글씨를 찾아내고 그걸 제대로 촬영해 보겠다고 세 번이나 다녀왔거든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들려드리기로 하고요.
아무튼 주로 제가 촬영하러 가는 날이 늘 일요일인데, 쾌재정 덕분에 며칠 앞서 평일인 지난 금요일(7월 10일)에 또 갔답니다. 그러면서 역사관에 들어가서 둘러볼 수 있었던 거랍니다. 애고...........
보통 박물관이나 전시관은 월요일이 휴관일인데,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건 뭔가 이상하네요. 상주시에서도 관광객 유치에 무척이나 마음 쓰고 있는 듯한데, 이런 행정은 좀 아쉽습니다. 아무튼 저는 여기에 네 번째 찾아온 끝에 둘러볼 수 있었네요.

게다가 이번에는 전시관 안을 둘러보고 있는데, 아마도 관리하는 분이신 듯한데 오셔서 이것저것 공검지 역사를 자세하게 들려주셨답니다. 굉장히 자세하게 알고 계셨고요. 또 하나 더 놀라운 건, 이분도 쾌재정을 짓고 <설공찬전>을 쓴 채수 선생의 후손이시더라고요.

이 채 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가운데 보이는 곳이 지금 현재 공검지 모습인데 실제로 그 옛날에는 왼쪽에 집들이 있는 저 마을까지도 모두 저수지였다고 합니다.
공검지의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오는데, <고려사> 권 2 지리 2에 "상주목에 큰 못이 있으니 이름을 공검(恭儉)이라 한다. 고려 명종 25년(1195)에 사록(司錄) 최정빈이 옛터를 따라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공갈'이란 아이를 묻고 둑을 쌓았기에 공갈못이란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라고 했다네요.
공검지의 옛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신 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둑의 길이는 860 보이며, 둘레는 16.647척으로서 현재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길이는 430m가 되고 둘레는 8.56km였다고 합니다.



천 년 앞서 만든 저수지의 둘레가 무려 8.56km, 정말 놀랍지 않나요?
콩을 한 되 볶아서 한알 씩 먹으며 공검지를 돌면 콩이 모자란다고 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넓었던 저수지가 지금은 왜 이렇게 작아졌을까요?
고종 광무 연간(1897~1906)에 총신 이채연이 논을 만들려고 제방을 허물어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저수지의 면적이 5만여 평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때(1898년) 영친왕궁에서 저수지를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고 하고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풍파를 겪었는데, 1924년, 일제강점기 때에 경북선 철도를 놓으면서 다시 줄었고, 1964년에는 약 2,000평만 남기고 나머지는 개인한테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이런저런 수난을 겪다가 마침내 지금처럼 모습을 갖춘 건 1997~2010년인데, 139,127 m2(42,000 여평) 수심 3~4m로 복원하고 연지, 제방, 탐방로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 고대의 모습보다는 엄청나게 작은 게지요.
옛 공검지의 규모가 상상이 되지 않아 구글 제미나이에 물어봤어요. 정말 놀랍더라고요.

1. 전체 둘레를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둘레(8.56km)를 기준으로 한 면적 (최대 환산) 저수지가 가장 이상적인 원(圓) 형태였다고 가정하고,
제곱미터(m²) 환산: 약 5,829,300 m²
평수 환산: 약 176만 3,000평
2. 역사 기록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세종실록지리지 (가로 860보*세로 800보)
현대 미터법 환산(약 1,300m*1,210m)
약 47만 5,000평 (조선시대 전성기 저수지 면적)
정리하자면, 8.56km 구역 전체를 평수로 바꾸면 최대 176만 평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이며, 기록상 실제 물이 들어차 있던 조선시대 전성기 공검지의 순수 저수지 면적은 약 47만 5,000평 정도로 계산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조선시대 전성기 때의 모습 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규모네요.
공검지 발굴조사 결과 옛 수문이나 제방을 쌓을 때 썼던 목재 시설물들이 출토됨

허백당 홍귀달 선생이 쓴 <명삼정기(1490년)>에 "못이 많기로는 대개 남방이 가장 성한데 그 크기로는 공검과 견줄만한 것은 없다"라고 나와 있다고 하네요. 그만큼 그 당시로도 규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기록이 있었네요.




지난 2009년~2011년까지 발굴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공검지 제방은 자연지형을 이용해 계곡부에 일자형으로 쌓았다고 하고요. 7세기말의 제방 기저부의 목재시설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 목재 시설이 무려 1400여 년 앞서부터 있던 나무라고 생각하니 무척 놀랍네요.
뻘 속에 묻혀 있던 거라서 보존 상태도 굉장히 잘 되어 있고요. 상수리나무와 소나무라고 하네요. 저 정도 되는 크기 나무를 썼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에 다시 고쳐 만든 고대 수리시설로 확인되었고, 제방을 쌓을 때 쓴 목재시설층, 나뭇가지층, 보강층 등 부엽공법의 고대 제방 축조 기술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수문 시설에 썼던 나무 부재는 모두 14점으로 AD 655~695년에 벌채된 목재로써 우리나라 고대 저수지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오랜 역사가 깃든 수리시설의 산 증거들을 제 눈으로 살펴보는데 신기하고 놀랍네요.



또한, 이 공검지에는 연밥 따는 노래인 <채련요(採蓮謠)>가 있습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따는 저처자야
연밥줄밥 내따주께 이내품에 잠자주소~~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부터 지금까지 구전으로 전해 내려 와 부르는 노래랍니다.
예부터 연꽃이 풍성하였는데 꽃이 피었을 때 23명 시인들이 한시문 60여 편을 남겼으며, 매아설화 등 11가지 전설이 깃든 곳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공검지에 깃든 호수문화까지 엿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끝으로, 이렇게 오랜 역사와 놀라운 우리나라 제방시설 축조기술까지 한데 볼 수 있는 공검지 역사관에 많은 이들이 가서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공검지도 구경하고요. 하지만, 저처럼 몇 번이고 갔지만 일요일에는 문을 꾹 닫아놓아 허탕 치게 하는 건 좀 아니네요. 주말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텐데 이런 배려도 좀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상주시청에서 이런 행정 편의는 봐주시겠지요? 하하하!!!

아, 그리고 공검지와 공검지 역사관을 구경했으면, 배도 출출할 텐데, 바로 앞에 있는 <공검한식뷔페>에서 맛있는 집밥도 꼭 드셔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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