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영남 지역을 덮친 큰 산불 소식을 모두 기억하시나요? 그 거센 불길이 신라 시대에 지어져 천 년의 역사를 품어온 의성의 아름다운 절, 고운사마저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산불이 고운사까지 덮칠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던 그때가 떠오르네요. 바람과는 달리 그 많던 전각들이 모두 불탔다는 뉴스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랜만에 의성 고운사를 다시 찾았습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운사 절집 들머리에는 천년고찰 고운사를 다시 세우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양 조용한 음악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네요.

고운사 안내판에는 예전과 똑같이 여러 전각들의 위치와 이름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내도에서 왼쪽 부분에 있는 19번부터 저 위쪽으로는 거의 불에 타 없어진 전각이더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일주문과 천왕문은 그래도 살아남았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고불전도 온전하네요.

그리고 여기 구름 위의 누각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아름답고 위세 당당했던 '가운루'가 있던 자리입니다. 여기부터 왼쪽으로는 거의 싹 다 타버리고 말았네요.


위 사진은 지난 2007년에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때 가서 촬영한 가운루 사진입니다.
고운사는 의상(義湘)이 창건한 절로,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입산하여 여지(如智) · 여사(如事) 두 대사(大師)와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세웠다고 합니다.


가운루는 아래로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이 있는데 그 위에다가 기둥을 세우고 지은 누각이랍니다. 그 오랜 역사와 멋들어진 풍광은 온데간데없고 빈 터만 남았네요. 옛 기둥을 천으로 칭칭 감아놓은 모습이 안타깝고 쓸쓸합니다.

가운루가 있던 자리 너머로 보이는 옛 전각들도 모두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저쪽이 임금의 어첩을 봉안했던 연수전이 있던 자리입니다.

벌써 일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아직도 그때 그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저렇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운루가 있던 자리에 쓸쓸하게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문화유산 안내판을 보고 다녔지만 오늘처럼 안쓰럽게 보이는 건 난생처음입니다.ㅠㅠ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그저 '나, 여기 있었노라!' 하는 듯, 무너진 돌더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옛날의 고즈넉하고 아름답던 풍경은 어디로 가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빈터만 우리를 맞이하고 있네요.

앗~! 저기는 범종각이 있던 자리입니다. 전각은 사라지고 범종만 남았습니다.

가까이에 가서 보니, 깨진 범종입니다. 그러고 보니, 뉴스에서 많이 보던 모습입니다. 깨진 범종...
이 범종(梵鐘)은 1859년(철종 10)에 만든 거랍니다. 너무 안타깝네요.

저 큰 범종이 불에 타면서 쿵 떨어지며 저렇게 깨졌겠지요? 그 곁에는 그때 타고 남은 시커먼 대형 숯이 그대로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는데 참으로 마음이 아프더군요.
2007년 자전거 여행 때 둘러본 아름다운 의성 고운사

문득 그리운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옛 기록들을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8년에 고운사를 찾아 정성스레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나한전과 고운사 삼층석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옛 범종각 모습입니다. 그 아래로 가운루가 있고 그 뒤로는 우화루 지붕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다른 전각들도 보이는데, 지금은 터만 남겨두고 영원히 사라지고 만 전각들이랍니다.

그때는 참 아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당당하고 고결하게 서 있던 연수전과 만세문의 모습, 그리고 맑은 계곡과 어우러진 옛 전각들의 정취가 사진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고운사 연수전이 있던 자리도 이렇게 담장만 남았고 주춧돌과 빈 터만 남았습니다.

국가 보물인 연수전(延壽殿)은 영조(1694~1776)와 고종(1852~1919)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고운사 경내의 유일한 왕실 건물이다. 건물 내에는 조선시대 기로소에 입소한 4명의 왕인 태조(1335~1408), 숙종(1661~1720), 영조, 고종의 묘호(廟號)와 시호(諡號), 휘(諱) 등을 적은 어첩을 보관하고 있던 전각이었지요.



옛 사진을 들춰보는데, 더더욱 가슴이 아프네요. 연수전을 처음 볼 때 느꼈던 감정도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굉장히 오래된 건물인데도 화려한 단청이 마치 살아있는 듯 힘차게 보였으니까요.

이밖에도 보물인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이 있던 약사전도 불타버렸고요.

큰 수조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도 쓸쓸합니다.

고맙게도 대웅보전은 살아남았습니다.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우리가 찾아간 날(6월 21일)에는 특별한 법회를 하고 있더군요. 저는 불자가 아니라서 들어도 잘 모르겠는데, '지장제'를 지낸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고운사는 지장보살이 영험한 곳이라서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고 한다더군요.









우리가 미처 지키지 못한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되새기며, 2007년의 푸르던 고운사와 오늘날의 아픈 현장을 견줘보니, 더더욱 안타깝고 아프네요.





다시 천년! 고운사 불사(극락전, 약사전, 녹야원, 범종)
천년고찰 고운사가 다시 일어서기를 저도 손 모아 기도합니다.
또 뉴스에서 봤는데, 화마가 휩쓸고 간 자연들은 일부러 인의적인 복원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맡겨둔다고 하더군요.
고운사와 환경단체·연구진은 산불로 피해가 큰 사찰림을 대상으로 현장 생태조사(식생, 토양, 야생동물 등)를 진행하며 자연복원의 과학적 검증을 추진해 왔는데, 실제로 의성 산불 일 년이 지난 지금 이런 기사가 나와 있더군요.
“지난해 의성 대형 산불 이후 1년, 자연 복원에 들어간 고운사 사찰림유역이 빠르게 회복하며 산불뿐 아니라 산사태에도 강한 숲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에 취약한 소나무림 비중은 기존 100분의 1로 줄었고, 토양 침식 위험 구간 또한 4.7배 줄었다.” 출처 : 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걸 보면, 자연의 힘이 또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또 깨닫습니다.

천년 고찰, 의성 고운사!
비록 지금은 까맣게 타버린 상처만 가득하지만, 이 아픔을 딛고 일어나 고운사가 하루빨리 예전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잿더미 속에서 피어날 새로운 희망을 품고, 다시 천 년을 기리며 이 글과 영상을 남깁니다.
★ 한빛이 꾸리는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아래 영상을 통해 아름다웠던 고운사의 옛 모습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오늘날의 기록을 함께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KICjAImW_Sw
★ 그러고 보니, 2007년에 고운사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실은 적이 있었네요. 함께 덧붙입니다. ★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있는 그대로가 더 아름답다
아! 드디어 우리가 바라던 옛 모습을 지닌 전각을 찾았어요. 계단 아래로 보이는 '대웅보전'처럼 화려하고 크지는 않지만 빛깔이 바랜 예스런 모습이 더욱 정겹고, 오랜 세월을 견디어낸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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