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느티나무가 반겨주는 후평리 마을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마을을 찾아왔는데, 우리를 가장 처음으로 반기는 200년 된 느티나무입니다. 두 그루가 나란히 서서 가운데 쉼터에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네요. 한낮 굉장히 뜨거운 날이었는데도 이 아래 있으니 정말 시원하더군요.

시원한 나무그늘이 드리운 들판에는 모심기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보이네요.

마을 쉼터 바로 앞에 있는 <뒤뜰장터>가 눈길을 끕니다.


얼마 앞서 후평마을 공동식사 행사를 했나 봅니다. 이 마을에는 세대도 다르고, 또 이주여성들과 함께 마을을 가꾸며 살아가는 곳이더군요. 이렇게 함께 모인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이 마을 음식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더군요. 날을 정하여 서로 음식을 만들어 마을 분들께 정성껏 대접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더군요. '밥값은 성의껏 후원함에 쏙!' 문구가 아주 재밌습니다. 또 로컬푸드 장터로 '뒤뜰장터'를 꾸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후평리(뒤뜰마을)'은 단촌면사무소가 있는 들판 뒤쪽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뒤뜰장터 담벼락그림이 정겹습니다.

후평리 복지회관

오오~! 이 마을에는 리훈(里訓)도 있습니다.
◎ 웃어른을 공경하자
◎ 멀리 보고 살아가자
◎ 남의 말을 좋게 하자
제정일자 2000. 12. 1
참 멋집니다. ^^
안타까운 화마 속 피어난 옛이야기, 의성김동주씨가옥 (사익재)

오늘 이 마을에 온 까닭은 마을 안에 옛집이 하나 있어 보러 온 거랍니다.

어느 집 담장 위로 환하게 피어있는 빨간 접시꽃이 무척 예쁘네요.

꽤 높다란 흙돌담장이 길게 늘어선 골목입니다.

그 끝에 굉장히 키가 큰 나무가 눈에 들어섭니다.

앗~! 담장 사이에도 똑같은 나무가 서 있네요. 바로 회화나무입니다.

네. 여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찾아온 옛집입니다.
'의성 김동주씨 가옥'입니다.

끝쪽에는 담장이 끊어져 있어 너른 터 안으로 들어설 수가 있네요.

여기가 바로 의성 김동주씨 가옥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채인 '사익재(四益齋)' 건물입니다.

지금 이 가옥은 대문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당만 남아 있답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9대에 걸쳐 천 석을 누리던 지주 집안으로 99칸이나 되는 큰 집이었다고 합니다.

이 가옥은 1686년에 이 참봉이란 분이 지었다고 합니다. 부족한 것 없이 살다가 구한말에 가세가 기울었고, 그 뒤 30여 년 동안 집이 비어 있었는데요. 1932년에 김동주라는 분이 이 집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사랑채, 중사랑채, 그리고 안채와 행랑채, 또 사당을 비롯해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저택이었고. 그래서 국가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는데요.
그만 1995년에 큰 불이 나서 안채를 비롯해 여러 건물이 모두 타 버렸답니다. 지금은 국가유산 지정이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랑채 건물이 바로 사익재인데요.
지금은 불행 중 다행으로 살아남은 사랑채(사익재) 건물만 '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랑채 지붕은 팔작지붕을 얹었고 앞면 3칸, 옆면 2칸입니다. 왼쪽에 온돌방 2칸이고 마루를 1칸 두었네요.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놓았습니다.

또 사랑채 뒤쪽으로는 사당이 따로 있습니다.

사랑채에 이렇게 따로 담장을 해놓았는데요. 바깥에도 넓게 담장을 둘렀습니다. 또 안쪽은 문이 잠겨 있어 담장 너머로만 구경을 합니다.
담장 안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이 큰 ㅁ자 모양으로 배치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렇게 보면 불에 타버리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새삼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담장이 끊어지긴 했지만 이 바깥 담장을 보면 안쪽에 여러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네요. 이 터만 봐도 무척 큰 집이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오오, 담장 안쪽으로 우물이 있네요. 안을 들여다보니, 생각보다 꽤 깊었답니다.
새로운 인연, 집을 지키는 김갑섭 선생

우물을 보고 사랑채 담장 너머로 촬영을 하고 있는데, 어떤 두 분이 트럭을 타고 오더니 어떻게 왔냐고 물으시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은 이 옛집의 현 소유주시더군요.
"김동주씨 가옥"이라는 이름만 알고 찾아간 그곳에서 현 소유주인 김갑섭 선생을 만났습니다. 김동주 씨의 후손은 아니지만, 약 15년 전 방치되어 가던 이 집을 사들여 남다른 애정으로 돌보고 계신 분입니다.
본업이 건축업인 덕분에, 김 선생은 틈날 때마다 이곳을 찾아 손수 집을 보수하고 가꾸고 있다고 하시네요.

김갑섭 선생님 덕분에 닫혀있던 사당과 사랑채 안쪽까지 둘러볼 수 있었답니다. 손수 문을 열어주시고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시더군요.

사당은 3칸짜리 건물인데 단청은 없지만 나무로 꽤 꼼꼼하게 지은 건물이었답니다.
사당은 격식 있게 잘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과거 도둑이 들어 위패를 훔쳐갔다고 합니다. 현재는 알맹이 없는 위패함과 문짝, 받침목 등만 따로 보관 중이라 씁쓸함을 안겼습니다.

세상에나!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다 보면, 도둑이 들어 옛 선조들의 유물들을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데, 위패나 위패함, 문짝 이런 것들을 훔쳐가는 도둑이 있다는 게 참 기가 막히네요.

이 뒤쪽은 1995년, 큰 불이 나기 전에는 안채가 있던 공간이랍니다.


안채가 있던 자리로 들어서니, 온통 옛 건물의 주춧돌만 남아 있어 무척 안쓰럽네요.

안채가 있던 자리인데, 주춧돌만 남았습니다. 주춧돌 개수를 세어보니, 앞면 다섯 칸, 옆면 세 칸짜리 건물이더군요.


불에 타서 무너진 옛 안채 자리에 서서 보니, 온통 개망초꽃이 마당을 다 뒤덮었네요.
아, 그리고 저기 앞에 들어올 때 보았던 회화나무 두 그루가 보입니다. 모두 세 그루가 있는데 가장 왼쪽에도 똑같이 키 큰 회화나무 한 그루가 더 있습니다.


현 소유주인 김갑섭 선생은 사당 천정을 부분 수리하고 손봤다는 얘기를 해주시더군요. 굉장히 잘 지은 사당이라며 큰 자부심을 가지고 돌보고 있었습니다. 사당 안쪽의 배롱나무 두 그루 중 한 나무는 몇 해 앞서 강추위로 죽었다가 옆에서 새 가지가 나와 다시 자란 것이라 합니다.

주춧돌만 남아 있는 안채 건물 터를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운 건 우리보다 김 선생께서 더 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돌보고 계신 걸 보니 참 대단하시더군요.

이곳 전체 땅이 871평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넓은 공간을 개인의 힘으로 지켜내며 가꾸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사랑채인 사익재로! 그리고 9대째 이어온 이름 삼괴헌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다시 사랑채로 왔습니다. 안쪽에 들어오니 마당에 곱게 깔린 자갈들이 눈에 띕니다. 요즘 같은 철에는 2~3주만 그냥 두어도 잡풀이 무릎높이만큼은 자랄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잡풀 하나 보이지 않네요. 우리가 사랑채를 꼼꼼하게 둘러보는 동안에도 연신 쉬지 않고 마당에서 풀을 뽑고 계시더군요. 집을 지키며 가꾸는 그 손길이 무척 부지런하고 세심하더군요.
뜰안에 있는 나무는 회양목이라고 합니다. 바깥에 있는 회화나무와도 무척 잘 어우러지네요.

김동주씨 가옥의 사랑채에는 '사익재(四益齋)'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또 기문을 쓴 현판도 하나 걸려 있네요.
이 기문에는 전주 이씨 참봉이 처음 짓고 이후 의성 김씨 김동주 선생이 매입한 기록과 더불어, 이 기문을 작성한 인물의 가문(전의 이씨 등) 혹은 이 고택의 내력과 얽힌 인물들의 성씨와 선조들의 이야기가 서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옛집은 전주 이씨 이참봉이 1686년에 처음 세우고 1932년에 김동주 씨가 매입한 기록까지 나와 있다고 하네요.
己卯重陽節後學姜周 記 (기묘중양절후학강주 기) 기묘년 가을날에 후학 '강주(姜周)'라는 인물이 이 기문을 짓고(혹은 쓰고) 기록을 마무리했다는 내용이 잘 담겨 있다고 합니다.
기묘년은 아마도 1932년 김동주 씨가 사들이고난 7년 뒤인 1939년에 집을 중수하며 기록한 게 아닐까 한다네요.

'사익재(四益齋)'는 주역에 나오는 사익(四益)에서 따온 말인데, 자신을 낮추고 남을 이롭게 하는 네 가지 덕목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는 거라 볼 수 있겠네요.
옛 유학자들은 주로 학문, 벗(교우), 자연(산수),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을 선비의 '네 가지 즐거움이자 유익함'으로 삼곤 했다고 하지요. 아마도 그런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사랑채 앞쪽에는 삼괴헌(三槐軒)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김갑섭 선생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이 집의 옛 이름이 바로 '삼괴헌(三槐軒)'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주 이씨가 9대에 걸쳐 살아왔던 바로 그때의 이름이라는 게지요. 이 집의 이름의 뜻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나요? 눈치채셨나요?

네. 맞습니다.
바로 이 집 앞에 나란히 거리를 두고 우뚝 서 있는 회화나무가 세 그루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1686년에 처음 이 집을 지었으니, 아마도 그때부터 이 회화나무가 있었다고 한다면, 거의 350살 가까이 된 회화나무네요.

이 집의 옛 이름인 삼괴헌 이야기도 대청에 걸려있던 현판에 그 내용이 잘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문 중간 부분에는 이 가옥의 사랑채 옛 이름인 '삼괴(三槐)'와 관련된 표현들이 있는데,
- 三槐(삼괴): 집 앞에 서 있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뜻하는 글자가 본문 중에 있고, 옛 선조들이 이 자리에 회화나무를 심고 '삼괴헌'이라 이름 붙인 까닭과, 대를 이어 가옥을 보수하고 지켜온 과정이 잘 서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큰 불로 안채와 다른 건물들을 잃고 국가유산 지정까지 해제된 아픔이 있는 곳이라, 사랑채 대들보 위에 묵묵히 살아남은 이 현판들의 값어치가 더욱더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소유주가 바뀐 흔적만 남은 게 아니라, 옛날 전주 이씨 집안이 대를 이어 살며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삼괴헌'이라 부르던 그 시절의 자부심과 기억이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으니까요.

김갑섭 선생 같은 분이 이 집을 사들여 사랑채 문을 열고 마당을 쓸어내리며 따뜻한 숨을 불어넣어 주셨기에, 우리가 오늘날 이 현판에 얽힌 숨은 이야기까지 마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갑섭 선생께서 틈틈이 와서 쓸고 닦은 흔적이 또렷합니다. 보통 이 계절에 옛집에 가면 여러 해 동안 쌓인 굳은 먼지와 쥐똥같은 게 엄청 많은데 이곳에는 구경도 못했답니다. 어찌나 깨끗하던지 마루턱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데 시원하고 좋아서 일어나기가 싫더군요. 하하하~!

오오~! 여기도 영쌍창이 남아 있네요. 대청 뒤쪽으로 난 문인데, 가운데 문설주가 따로 있는 창입니다.

동쪽으로 난 창 두 개는 설주가 없이 여닫을 수 있는 문이고요.
조금 더 알차고 적절한 행정지원이 된다면...

무려 871평이나 되는 이 넓은 곳을 개인의 힘으로 돌보고 오롯이 지켜내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몇 해 앞서 큰비가 오고 물난리가 났을 때, 이 집의 바깥 담장도 함께 허물어졌다고 합니다.

본디 이 회화나무를 사이에 두고 담장이 무너진 곳이 보입니다.

무너진 담장 사이로 들여다보는 사익재(삼괴헌)

사익재가 군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금 더 현실적이고 알차게 행정지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개인이 이 많은 걸 다 하기에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겠지요?


'김동주씨 가옥', 불에 타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웅장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남지만, 김갑섭 선생 같은 숨은 손길이 있기에 '사익재(삼괴헌)'의 이야기는 오늘도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틈틈이 와서 건물 안팎을 돌봐주신 손길이 그저 한 번 다녀가는 나그네이지만 우리 문화유산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크기때문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또 친절하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김갑섭 선생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 이제는 '김갑섭씨 가옥'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드네요. ^^
※ 한빛이 꾸리는 유튜브 채널인 한빛국가유산TV에서 만든 영상도 함께 보세요.
https://youtu.be/5LjaFzTCPZk?si=aGrfmoMHVZM4e2P5
https://sunnyhanbit.tistory.com/463
해발 450m 높은 산속에 초가집이? 여기에 숨어든 까닭은?<대구 달성 조길방 가옥>
"아니, 어쩜 이렇게 깊은 산에다가 터를 잡았을까?""어떤 화를 당하고 여기로 왔다고 하네.""그게 뭔데?""글쎄......" 해발 450m 높이에 초가집이?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청도 각북면 헐티재로 넘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434
여기가 정말 성삼문 선생이 태어난 집일까? [홍성 노은리 고택 옛 엄찬고택]
성삼문 선생 유허지에서 멀잖은 곳에 아주 멋진 고택이 있어 둘러봅니다. 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앞서 홍성 쪽에 가볼 만한 문화유산이 어디 있을까? 하고 찾아봤던 집이 바로 이 집이었어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250
[의령 백산 안희제 생가] 글 읽는 선비가 실행하지 않는다면?
앞서 소개한 '의령 탐진 안씨 종택'이 있는 마을에는 마을을 빛낸 분들이 무척 많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늘은 선생의 생가와 함께 선생의 삶을 돌아봅니다. 의령군 부리면 입산리 마을
sunnyhanbit.tistory.com
https://sunnyhanbit.tistory.com/166
<영동 성장환 고택(성위제 가옥)> 18세기 독특한 건축법, 광채를 이렇게 멋지게 지을 수 있을까요?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미촌 마을에는 아주 보기 드문 옛집이 있다 해서 찾아갔어요. 바로 입니다. 이라고도 한답니다. 미촌 마을인데, 옛 이름은 안산기미, 또는 안산구미라고 하는 마을이지요.
sunnyhanbit.tistory.com
'한빛이 들려주는 국가유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상주 쾌재정, 뒤편 바위 꼭대기에 새긴 바위글씨를 찾아낸 이야기를 되짚어보다! 숨겨진 바위글씨 [나재 채선생 장구지소] (18) | 2026.07.20 |
|---|---|
| 아이를 묻어 만든 못? 상주 공갈못에 숨겨진 천사백 년의 비밀[상주 공검지와 공검지역사관] (19) | 2026.07.14 |
| 화마가 삼킨 천년고찰 의성 고운사, 2007년의 추억과 오늘날의 아픈 기록[의성 고운사 산불 비극 1년] (18) | 2026.06.24 |
| 예천 사부리 소나무, 임진왜란 전설을 품은 200년 당산나무의 안타까운 위험신호 (16) | 2026.06.19 |
| 5년 만에 다시 상주 쾌재정, 안내판에도 없는 조선 시대 숨겨진 바위 글씨(각자)를 최초(?) 발견하다! (15) | 2026.06.18 |